<본 문> 쉬운 성경 전도서 3장 12 - 22절
12 내가 알기에, 살아생전에 행복하고 선을 행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13 이처럼 하나님의 선물은 사람마다 먹고, 마시고, 자기의 수고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14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그것은 영원하다. 그것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분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15 지금 있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고, 장차 있게 될 것도 이미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신다.
<묵 상>
본문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에만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3.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삶의 유익(12-15절)
"내가 알기에, 살아생전에 행복하고 선을 행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12절) 설교자는 사람들이 사는 날 동안에 더 나은 것, 즉 최선이 무엇인지를 얘기합니다. 진정한 최선은 ‘행복과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행복하다’는 ‘함께해서 기쁘다'는 뜻입니다. '선을 행하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하였다'라고 합니다(창 39:2, 23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했는데 노예로 팔려 가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는데 감옥에 가냐? 형통은 무슨 형통?'이라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이나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내가 사는 삶이 비록 힘들고, 지치고 비참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진정한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사는 날 동안에 사람들과 함께 하므로 기쁘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에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이 평온하거나, 혹은 힘들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순간이 형통한 기쁨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물은 사람마다 먹고, 마시고, 자기의 수고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13절) 잘 먹고, 잘 마시고, 수고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제 딴에는 밥 세끼 못 먹고 살랴라고 하지만 못 먹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체하기만 해도 세끼, 맘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건강을 하나님이 주셔야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수고 한 만큼 먹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세상은 수고 한 만큼 주지 않습니다. 수고한 만큼만 얻어도 좋은데 그 이상의 것을 욕심 냅니다. 그런데 세상은 수고한 만큼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 인생들 가운데 주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것, 그리고 잘 먹고 잘 마시는 것, 열심히 일하는 수고가 의미 있게 되는 것이 인생의 참된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내가 손해 보는 것을 진정한 즐거움으로 느끼게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잘 먹고 마시는 것을 기쁨으로 깨닫는 것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식이 전제되는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영역입니다. 수고하는 일이 의미 있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그것은 영원하다. 그것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분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금 있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고, 장차 있게 될 것도 이미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신다."(14-15절) 설교자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을 하면서 하나님 없이도 인생 가운데 의미 있는 일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해 아래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 안에서만 영원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기에 인간이 임의로 더하거나 빼거나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인생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삶의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이전에 있었던 것들을 버리고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의식은 과거와 결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상처와 기억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삶 속에서 이어나가야 합니다. 단순한 과거와의 단절의 의미를 넘어, 과거의 아픔과 고통과 기쁨과 성공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 것을 넘어, 그 기억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것인가에 깊은 통찰력과 고민을 안겨줍니다.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며, 그 속에서 장차 있게 될 내일의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자의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역사만이 처음부터 나중까지 완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만 언제나 영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해서 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한 이해를 날마다 더 넓혀 가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 유한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므로 언제나, 어디서나 형통하였더라는 신앙의 내용을 지니고 살게 하옵소서. 성공과 위치가 아니라 주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살게 하옵소서. 주님과 의논하는 나의 삶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일을 행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일구어가시는 역사로 믿고, 수용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감수하고, 감내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께 반응하며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