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의 시작을 증거는 유럽 이곳저곳에서 시작되었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외친 시민혁명들, 세계관을 확장 시킨 대항해시대,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예술을 재생하고자 나타난 르네상스 운동 그리고 그를 강력히 뒷받침하는 가문들까지.
그렇게 중세는 유럽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베이컨, 데카르트, 홉스가 열어젖힌 근대의 장막 그 뒤에는 기존 봉건제와는 완전히 다른 자본주의가 놓여있었다.
노동과 자본, 그리고 그를 이용한 가치 창출이 기존에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신분 혹은 교리보다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되면서 그 기원과 특성, 향후 방향에 대한 논쟁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청교도적 윤리관이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베버의 저명한 논저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핵심을 그 외관에서 찾지 않았다. 그는 근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근대적인 노동 윤리’와 ‘물질적 성공에 대한 지향’이 다른 것이 아닌 종교적 영역에서 출발한 자본주의 ‘정신’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시장의 확대나 기술 혁신은 ethos의 결과이지, 자본주의적 특성의 핵심 원천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대 거의 모든 독일 학자들은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로서의 형태에 집중하며 그 기원을 어떤 지배적인 집단적 사고 체계의 문화적 변화에서 찾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근대 자본주의의 도래를 설명할 때 사고방식의 변화를 언급한 학자들이 있긴 했으나, 베버는 그들마저도 기존 자본주의의 정신과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강화된 富는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설명 중 하나이다.
18, 19세기에 강화된 이윤 추구에 대한 욕망이 자본주의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주장이다.
베버는 인류사를 통틀어 富에 대한 욕망은 어느 시대나 존재해 왔음을 들어 해당 주장을 거부한다.
특정 세력이 자본주의를 중세로부터 끌어올렸다는 생각도 당대 학계에 만연했다.
그 세력으로는 근대 이전 모험 자본주의, 정치 자본주의로 부를 축적한 선도적 기업가들, 금융업, 대금업으로 영리활동을 해 온 유대인들, 봉건제가 뒤흔들리며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부르주아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선도적 기업가들이나 유대인, 부르주아들에게 사회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경제 윤리와 삶의 태도를 권면할 만큼의 권위와 침투력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도적 기업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 사회의 동반자였으나, 중세 시대 상업을 천시하고 불경시하던 가톨릭 윤리에 의해 그들의 권위는 바닥이었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도 금융업과 대금업에 종사하는 만큼 중세 시대 그들에 대한 혐오감은 뿌리 깊었다.
당시 주님의 형제 자매들로부터 이윤을 착취해낸다고 생각되던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은 일상이었다. 이러한 유대인 집단이 근대인들의 생활 양식에 깊숙이 침투한 합리적 경제 윤리의 모체라고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들의 사회적 평판을 제쳐두더라도, 근대에 유대인들이 부를 쓸어담을 수 있었던 것은 베버가 말한 종교적 연원이 자본주의 정신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조건들에 의해 그들에게 마련된 투기적 자본주의적 경제관이었다. 칼 맑스의 갈등론적, 유물론적 시각에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지배계급,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구성된 체제였다.
맑스가 위대한 현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지금의 관점에서 이는 논리적 모순으로 보인다.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도래한 이후에, 그 자본주의에서 중요시되는 생산수단(노동과 자본)을 장악한 계급이 부르주아인 만큼, 부르주아가 자본주의 정신을 양산하여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지배구조를 공고히 했다는 해석은 갈등론적 왜곡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베버가 제시한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은 ‘청교도 윤리‘이다.
베버가 자본주의를 논하기 위해 종교로 눈을 돌린 것은 자본주의 정신이 광범위한 집단에 공유되는 엄격하고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지속적 생활 양식이라는 점에서 특정 집단 혹은 단순한 풍조로는 그 혁명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 청교도 경제 윤리는 가톨릭교나 루터교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중세 시대 교황들의 눈에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은 인간들로 하여금 신으로의 귀의를 막고 물질이라는 우상을 섬기게 하는 세속적이고 불결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에 따라 상인들은 자연스레 저속한 자들로 여겨졌다.
마틴 루터가 1517년 가톨릭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일으킨 종교개혁은 교황청의 권위주의에서 기독교를 해방시켰다.
그러나 이후 형성된 루터 교파에서도 형제애, 결정론을 기반으로 한 전통주의적 경제 윤리는 유지되었다.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 부여해주신 소명과 직업 그 이상의 활동을 하며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행위는 불경스러운 죄악으로 여겨졌다.
막스 베버가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시작시켰다고 본 기독교 윤리는 16세기 칼뱅주의와 17세기 청교도에서 나타난다.
칼뱅주의는 기존의 기독교 전통주의를 깨부수고 새로운 초석에서 기독교를 다시 세운다.
그 초석에는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그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완전히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인식과, 그 분께서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할 자를 영원 이전에 정해놓으셨다는 이중 예정론이 포함된다.
칼뱅주의의 대두로
“기독교 신자들은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신도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이 불안감과 혼란을 잠재운 것은 영국에서 등장한 청교도였다.
직업노동을 신앙의 핵심으로 본 청교도인들은 구원이 징표들을 몇 가지 제시했다.
’조직적인 노동‘, ’부의 축적과 성공적인 이윤 획득‘, ’성화된 삶과 덕 있는 행실‘, ’느낌‘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유럽의 청교도 신도들은 구원의 확실성(certitudo salutis)을 얻고자 직업노동과 부의 축적에 몰두하게 되었다.
주의할 점은 그들의 부에 대한 추구가 부 그 자체에 대한 추구가 아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즉 청교도적 경제 윤리는 노동 및 부의 추구가 현세적 금욕주의 및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직된 생활 양식과 결합된 형태였던 것이다.
청교도의 자본주의적 경제 윤리는 다양한 분파를 타고 미국 등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원형에 담겨 있던 종교적 색채는 약화되고 공리주의적 색채가 강화되었으며, 해당 정신은 내세의 구원을 위한 것에서 현세 지향적인 사고관으로 변모하며 자본주의의 확산을 촉진했다.
사실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베버의 청교도적 해석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정답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장 본인도 베버가 제시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만큼이나 베이컨이 열었던 이해타산적, 정보지향적, 실용적 자연관, 그리고 데카르트에 의해 강화된 인간중심주의가 자본주의의 등장과 성장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하나의 사상적 요인이 독립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촉발한 것이라고 보기보다 다양한 사상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설명일 것이다.
나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에 대해 독자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베버를 접하기 전 자본주의는 나의 인식 속에서 ’승자독식의, 교활한, 물질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차가운, 냉혈한, 잔인한‘ 체제였다.
자본주의의 동인은 오로지 이해타산이라고 생각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라면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또 현재 자본주의는 실제로 그러하다.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베버의 철학은 자본주의가 어떤 보편적인, 신성한 가치를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처음의 청교도적 윤리는 완전히 잊은 자본주의. 그것이 가하는 폭압에 억눌려온 신음이 이제야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인간 소외, 환경 문제 등 수많은 신음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지금의 자본주의에게 필요한 것은 르네상스이다.
근대에 자본주의가 청교도 윤리와 결합해 새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처럼, 현재 자본주의에게는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
그 새로운 윤리는 자본주의의 고인 물을 비우고 그곳에 신선하고 상쾌한 사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 윤리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를 진정 희구하며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자본주의의 르네상스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