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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보다 잘 나온 사진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이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시인의 일요일, 2024)를 읽어 주셨는데 김규성 선생님이 「작가」제34호에서 읽어 주신 리뷰는 내가 마치 미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했다. 감사한 마음에 잘 간직하고자 여기에 올려 놓는다. 감사합니다. 김규성 선생님!
원죄의 ‘그림자’ 그리고 몽상과 미로의 역동적 미학
-김휼 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시인의 일요일, 2024) -김규성(시인)
1.
앞 시집과 뒤의 시집 사이에는 크고 작기가 다를 뿐 다양한 시각에서 나름의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피상적 독해의 경우, 이전 시집과의 변별성이 한 편의 시에 담긴 행과 행, 연과
연 사이보다도 모호할 수 있지만 되새겨 보면 대부분 일련의 가시적 거리를 발견하게 된
다.(그 오독의 책임은 시인이 아닌 독자의 몫이다.) 여기에서 거리는 차이와 동의어다. 그 차
이는 크게 형식과 언어의 발전이 도드라진 외형적 변화와, 기존의 시 세계에 깊이와 두터움
이 가세한 내면적 변화로 나눌 수 있다.
김휼의 제2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는 후자에 속한다. 시인은 첫 시집 『그곳엔 두 개
의 달이 있었다』에서 정제되고 세련된 언어 감각과 밀도 깊은 사유를 결합, 참신한 면모를
선보인 바 있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그 내공을 한층 강화해 정결하고 튼실한 자신의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늦은 출발을 상쇄하는 열정과 그에 걸맞은 질적 성취를 거듭 담보하
게 된 것이다.
‘퇴행성 슬픔’이라는 제목의 시에는 김휼이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근간을 이룬다. "바
람이 멈추면 내 슬픔은 구체적으로 됩니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 대구(對句)로 "가끔 은
닉하기 좋은 새의 울음을 걸어두고 몽상에 듭니다"를 들고 있다. 슬픔의 증상과 그 처방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조와 패턴은 시집 전체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바람이 멈추면 내 슬픔은 구체적이 됩니다
봄 흙에 젖살이 오를 즈음 말문이 트였죠 태생이 곰살맞아 무성한 소문을 달고 살았어요 덕분에 성장기는 푸르게 빛났습니다
귀가 깊어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여름이 다 지나던 어느 날 번쩍, 하늘을 가르는 일성에 난청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며 살았습니다 해야 할 일만 하고 가야 할 곳만 갔습니다 말할 수 없는 일에는 침묵하며 지냈습니다
참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직립은 퇴행성 슬픔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구부러지지 않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으며 뼈마디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손가락 뼈들이 뒤틀리고 있지만 경탄을 잃지 않으려 식물성 웃음만 섭취해 보는 데 오백 년이라는 치명적 무게를 가진 저로서는 피할 수 없는 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끔 은닉하기 좋은 새의 울음을 걸어두고 몽상에 듭니다
오늘은 청명, 누군가 시름 깊은 방에 들어 푸른 잎사귀 몇 장 머리맡에 두고 갑니다 시간이 갈 수록 속으로 쌓이는 회한은 나이테를 감고 도는데 움켜쥐면 구체적이 되는 슬픔, 나는 지금 옹색한 옹이를 창 삼아 세상과 단절을 면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신앙이 되는 것은 타당한 일입니다
-「퇴행성 슬픔」전문
“바람이 멈추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내 슬픔”은 “참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직립”이 앓는 “퇴행성 슬픔” 이다. 그 강도는 “구부러지지 않는 밤을 뜬눈으로 지새”
야 할 만큼 아프고 드세다. “움켜쥐어야만 구체화”되는 그 슬픔은 막연한 강박적 무의식
에 은신하고 있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집단무의식의 원형, 즉 원죄의 ‘그림자’가
발단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시는 신과의 조우를 열망하는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적 고
독을 연상케 한다.
다음의 시 「일요일엔 차를 즐겨요」는 위의 시 「퇴행성 슬픔」과는 달리 밝고 경쾌한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나 그 정조는 “기분이 가라앉을 땐 차를 즐”기며 “허기질수록 뜨
거워지는” 것으로 그 근저에는 “가라앉고” “허기진” 정서적 저기압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땐 차를 즐깁니다
미궁을 찾아가는 나만의 보법이지요
걸어서 갈 수 없는 거리를 돌아보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습니다
뿌연 길을 따라 펼쳐지는 신생의 설렘과 소멸의 아쉬움
완고한 직선의 인생을 빠르게 달리다 보면
풍경이 되어주지 못한 채 언저리로 사라진 것들이 떠오릅니다
잘 밀봉된 서류봉투 점선처럼 그어진 경계들
어떤 길은 가지 않을 때 탁월한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깜빡이도 없이 불현듯 끼어든 이들은
가볍거나 빠른 경향이 있습니다
어디에도 붙잡히기 싫어 속도를 뒤집어 위반을 무릅쓰지만
병목을 비틀 수는 없는 법이죠
존재 방식에 따라 끓는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허기질수록 뜨거워지는 이쪽의 방식과
점유할수록 서늘해지는 저쪽의 방식이 대치하고 있는 담장
넝쿨장미 발랄함만 폐쇄된 시간을 건너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딕스런 일요일 오후
그럴듯한 옷을 입고 피안과 차안을 달리다
길의 어깨에 기대어 맑은 차 한 모금 마셔봅니다
가라앉은 기분에 별 하나 띄운
연둣빛 세작 한잔, 어지러운 심사는 궁륭 속으로 흐르고
난 다시 가볍게 미로를 즐깁니다
-「일요일엔 차를 즐겨요」 전문
시인의 현실은 “참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직립”의(「퇴행성 슬픔」) 슬픔이지만 그의
신앙적 의지는 “허기질수록 뜨거워지는”(「퇴행성 슬픔」)역동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시인은 지난한 현실 타개책으로 “몽상에”(「퇴행성 슬픔」)들고 “미로를 즐”(「일요일엔
차를 마셔요」)기는 초현실적 비상수단을 차용한다. 통상적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추상적이
고 막연한 대책이다. 그러나 이에는 고차원적 우주관이 내재되어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여
기에서 “몽상”과 “미로”는 시를 상징하는 지시어로 시인이 암울한 현실에서 탈피하는
비책이다. 시를 통해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며 자아를 다스리는 수행/치유의 일환인 것이다. 시는 그에게 우주의 본질과 궁극적 실존을 표상하는 신앙과 동격의 가치재이기 때문이다. 볼수록 그가 얼마나 경건하고 진지하게 시에 천착하는가를 알 수 있다.
2.
시어의 선택 폭은 종전에 비해 현저히 넓고 자유로워졌다. 고유어에 반해 한자어나 오래
어, 혼종어, 신조어, 추상어 사용의 빈도수도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높은 추세다. 굳이 고
유어를 시어로 갈고 다듬는 수고를 빌리지 않고도, 일상어를 시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반면 시어의 배치는 낯설게 하기, 역설, 형용모순, 극적 반전 등, 다양한 실험
을 통해 파격에 가까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행과 연, 통사 구조, 운율, 문장의 전개
와 함축, 기표와 기의의 거리, 은유와 상징 등 전방위적 범위에 걸쳐 통상의 문법체계를 위
협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산문도 그렇지만 시에서도 첨단적 수사나 세련된 문장은
어휘와 구절, 문맥의 탈전통적 배치가 그 우열을 좌우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굳이 변칙과
탈문법적 실험을 동원하지 않고도 품격 있고 세련된 문장을 구사하는 시인들은 많다. 그 대표적 시인이 김휼이다. 그는 화려한 문장, 가벼운 언어유희, 눈에 띄는 기교, 표피적
감각의 언어와는 일정의 거리를 둔다. 낯선 형식이나, 산문과 운문의 경계가 모호한 탈운율
의 시도 삼간다. 그러면서도 정치하고 세련된 문장을 구사한다. 적소에 정련된 시어를 배치
하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은데도 문맥의 흐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의 도저한 시적 발화
가 주목을 끄는 요인이다.
여섯 살 심장 위에 올려진
검은 돌
식물로 분류된 이후
아이는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
힘껏 내달린 시간이 멈출 때, 그 길 끝에서 안개는 피어올랐다
여섯 살의 손과 스물세 살의 얼굴,
한 몸으로 죽은 듯이 누워 귀를 키웠다
출구 없는 침묵
희번덕 눈을 뒤집어 고요를 좇는 아이를 놓칠세라 어미는 잎사귀 같은 손을 붙잡고 시들어간다
병실 창밖의 구름을 이불로 삼고 잠든 오후
어미의 눈물이
식물을 키우고 있다
-「식물의 시간」전문
3.
시에서 사유는 함축적 의미를 창출하며 상상력은 참신한 독자성을 개척하는 핵심 요소다. 함축은 확장성과 다의성을 담고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창의성은 독창성과 결합할 때 자
신만의 독점 공간을 선보일 수 있다. 시적 사유는 사물과의 소통에 대한 열망이 그 척도다. 시적 상상력은 대상의 속성에 대한 탈시공간적 유추나 초현실적 이해가 그 소득을 좌우한
다. 한편 생명체와의 대화에는 범우주적 사유가, 무정물과의 대화에는 알레고리적 상상력이
동원된다. 물론 생명체와 무정물의 위치를 바꾸고 거기에 각각 사유와 상상력을 대입해도
그 대화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김휼의 시적 사유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 시세계의 외연을 넓히고, 절제된 창의성은 사유
의 밀도에 따라 궁극적 보편성을 확보한다. 그의 시는 꾸준한 연마로 다져진 사유와, 긍휼
에 기반한 모성적 상상력이 참신한 조화를 이룬다. 무리 없이 간택한 시어를 적재적소에 배
치, 면밀한 함축미를 빚는다. 삼라만상과의 깊고 따뜻한 대화는 인간적 성실이 돋보이는 소
통의 묘미를 일깨워 준다.
무릎이 내려앉은 차 한 대 골목에 놓여있다
한때 거친 비탈도 단숨에 오갔을 생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쪼그라진 불안만 납작 엎드렸다
빈사의 몸으로 가야 할 곳이 더 남아 있는지 부식된 방향을 끌어안은 골반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
수만 킬로의 기억을 밀어 넣은 계기판 위에 내려앉은 먼지는 지나온 행적을 지우고 누군가 긋고 간 늑골에서 붉은 녹물이 흘러내린다
길이 막혀 갇혀있던 날들
갈라진 뒤꿈치로 길을 닦던 그녀는 골 깊은 주름 속에서 토막길 하나씩 꺼내 보였으니 멈춰버린 시간을 암울이라 단정 짓지 말자
어쩌면 저 붉은 녹물은 완주자의 이름 아래 그어진 밑줄
백미러는 갈라진 시간을 움켜쥐고 있는데 바람을 실고 달리던 호시절은 여기까지라고 꺾인 무릎 을 풀고 길게 누운 그녀
두 눈에 불을 끄고 긴 잠에 든다
-「불 꺼진 얼굴」전문
4.
언어는 침묵에서 태어나 침묵을 통해 사라진다. 모든 언어는 침묵을 모태로 하는 한 편의
시다. 다만 시인이 쓰는 정제된 시와, 일상의 늪으로 사라지는 일반인들의 잡다한 시가 다
를 뿐이다. 여기서 흔히 시인이 쓰는 시만을 시라고 부르는데, 시 창작은 침묵과 의식의 교
직이다. (이 경우, 무의식은 직간접적으로 의식을 부채질해 숨은 존재감을 표출한다.)시를 쓰
기 전, 시를 쓰는 순간의 휴지기, 시를 마치고 난 뒤의 여운 역시 침묵의 영역이다.
그 문이 닫히자 난 빈들이 되었다
도무지 향방을 모르겠는 들에서
세미한 소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어둡고 거친 골짜기
협곡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계를 감싼 고요는 단단해져 있었다
언제나 있어 한 번도 없었던 대면 앞에
오래 세워둔 나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낮달 하나 덩그러니 걸린 사막이 보였다
사막의 무늬는 바람의 독백이었나,
바람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입술
한 계절 차고도 넘쳤을 무성한 말들이
입술을 건너 고요 속에 묻힌다
모래바람 지나간 길의 갈래마다
침묵의 관을 쓰고 묵상에 드는 광야
내 속의 소란을 다 비워야
담을 수 있는 말이 거기 있었다
들리지 않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두 줄기 현으로부터 흐르는 마두금 선율에
사막을 걷던 낙타 무릎은 방향을 돌리고
생각의 줄기에 매달린 음들이
헝클어진 매듭을 풀어놓는다
온음의 말씀이 빈들을 채운다
-「침묵의 음표」전문
시적 사유의 원천인 침묵의 존재와 가치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시는 시의 경제성이 요구
하는 절제와 순도를 보장하기 어렵다. 김휼은 침묵과 시의 관계에 남달리 예민한 촉수를 지
닌다.
“침묵의 관을 쓰고”(「침묵의 음표」), “출구 없는 침묵”(「식물의 시간」), “애매할 때면 침묵을
앞세우는”(「침묵의 문장들」), “차마 열지 못하는 입”(「석류」), “대꾸 없이 입을 닫았다”(설합
舌盒),“내 이름은 고요에 가까웠으니”(설합舌盒), “깊어 꺼내지 못한 말”(「머뭇거리는 침묵」), “침묵이 되어 촛농처럼 굳어갔다”(「머뭇거리는 침묵」), “ 말로써 하지 못할 말이 있어 침묵마저 머뭇거리는데”(「머뭇거리는 침묵」), “입안에 머물던 입엣말이 멈추고”(「머뭇거리는 침묵」),
시의 행간, 연과 연 사이에서도 침묵은 배경이나 여백으로 기능한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침묵의 존재감이 깃들어 있다. 단어와 단어 사이, 구와 구 사이, 절과 절 사이에도
침묵은 똬리를 튼다. 언어와 구조적 맥락을 함께하는 의식은 침묵을 다리로 각각의 분절을
이어 통일을 이룬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김휼의 시들은 오래 연마하고 숙성시켜온 침묵의
결정체다. 그 튼실한 내공은 독자적 깊이와 위의를 담보한다. 그의 시가 단아하면서도 고밀
도의 중량감을 지니는 비결이다. 이는 절제와 함축이 주축을 이룬 미학적 성취와 더불어 포
스트모더니즘 이후 한국 시문학의 건실한 방향성을 가늠케 한다.
작가 제 34호 , 서평 김규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