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알친구
죽마고우를 우리는 불알친구라 불렀다.
힘들 때 힘들다 말할 수 있는 친구는 거의가 불알친구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생각나는 친구가 내게도 있다.
우리들에게는 빈부귀천이 없고 학식도 필요 없다.
아내에게도 힘들다 못할 말도
그 친구에게는 할 수 있다.
새벽이라도 전화를 하면 투정을 부리면서도
내 말을 들어 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내게도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오늘 안양교도소 봉사를 다녀왔는데
녀석이 호출을 한다.
오늘이 월급날인데
고생했다면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나는 힘들 때 녀석을 찾는데
녀석은 좋을 때도 나를 찾는다.
아내와 아들과 친구와 내가
저녁을 먹으며
나도 모르는 행복함이 미소를 짓게 한다.
친구...
모두가 떠났어도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감사의 조건이다.
산수유도 피었겠다...
어느날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장애인 재소자로부터 편지가 왔었다. 가금씩 방문했던 가수 장춘화님과 미룡님을 꼭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두사람에게 미리 편지 내용을 전해 놓고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랬다. 이번에는 목사님들이 교회 일정 때문에 바쁘셔서 내가 예배를 인도해야 했다. 어떤 내용을 할 것인가로 고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그들에게 전해줄 메시지가 정리되고 있었다. 며칠전에 지리산 노고단을 목발 짚고 올라 갔었는데, 힘들고 어려운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올랐던 감격과, 두팔이 없이도 귀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여성 장애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전해주고 싶었다.
아내가 준비한 푸짐한 먹을거리가 우리들의 마음을 열게하는 귀한 촉매제가 된다. 일부러 점심도 먹지 않고 나왔다는 어느 재소자의 고백에서 세상에서 반입된 음식을 먹어보려는 자유의 갈증을 느낀다. 한달 내내 우리를 기다렸다는 고백에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또 다른 책임감을 갖게 된다. 힘 닫는데까지 교도소 사역을 하리라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해 본다. 정해진 프로그램은 언제나 시간을 부족하게 만든다. 그만큼 유익한 시간이라는 뜻도 되겠지만 주어진 2시간이 너무 짧다는 뜻도 되리라. 그래도 일반인들이 면회를 가더라도 5분 정도로 끝나는데 우리들은 2시간 정도를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98년에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눈빛은 살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빛은 부드럽게 변했다. 쌍욕을하던 그들의 입술에서 찬양이 흘러 나오고 있다. 변하는 그들을 보면서 교도소에서도 좋아하지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니 저절로 감사가 나온다. 한달내내 연습했다며 찬양을 부르려는 그들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기도 한다. 준비해간 아름다운 사연도 낭송해 준다. 방문자들 각 개인들에게도 무언가 동참하는 기회를 준다. 재소자들이 재범을 하지 않도록 무언가 해 냈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될 수 있으면 긍정적인 말을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포기하려는 사람에게는 독한 말을 서슴치 않는 나에게 무섭다는 말도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느새 섬김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세상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자주 접하고 있다며 다시는 푸른 죄수복을 입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지금쯤 고향에는 산수유가 피었고, 매화도 피었겠다는 어느 재소자의 넋두리에서 고향이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봄이다. 다음달에는 진달래 한아름 꺽어다 안겨 주고 싶다.
"다음달에는 많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어느 재소자의 말을 가슴으로 받으며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출발하고 있었다. 함께 해 주신 큰샘물, 제이비, 미룡, 장춘화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길가에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나리를 보면서 피부로 다가오는 봄을 맞이한다. 날씨가 포근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음력으로는 2월 초순이라 그런지 쌀쌀한 기운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늘이 춘분이라고 했다. 봄... 봄이다. 그런데 18년만에 처음이라는 황사가 짙은 안개를 연상하게 대지를 덮고 있었다. 부족한 봉사자 때문에 항상 걱정을 하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 회사에 병가를 냈다는 진달래님이 참석하기로 하고, 미룡님, 제이비님, 큰샘물, 그리고 내가 참석하니 봉사팀은 구색을 갖추게 된다.
모처럼 비빔밥을 해 주겠노라며 전날 밤 늦게까지 우거지를 삶아 잘게 찢어 놓고, 무 생채와 겉절이까지 담그고 있는 아내는 늦게 잠잘에 들었건만 아침부터 분주하다. 시금치도 삶고, 미나리도 삶고, 무, 호박, 동태까지 준비를 해 놓는다. 차에 쌀을 싣고 사랑의 집으로 가면서 콩나물이 싸다는 시장에 들려 콩나물까지 사고 있다. 오늘 사랑의 집 장애우들은 별미를 먹을 것 같다.
소사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한 차에 타고 사랑의 집으로 달려 간다.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개나리를 보면서, 하얀 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목련을 보면서 저마다 가슴속에 시 한수씩을 쓰고 있을 법도 하다. 봄이 되니 이곳 저곳에서 건축을 하려는지 건축 부지를 다듬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산기슭에 멋진 카페를 만드려는지 조감도를 세워 놓고 땅을 다듬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열심이다.
신작로를 지나 동네 길로 들어 서니 도덕산이 보인다. 도덕산에도 황사는 예외없이 덮고 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 주려는 듯 골목 담 넘어로 노란 산수유가 고개를 내밀며 반기고 있다. "저게 산수유야"라는 내 설명에 산수유를 처음 보는 일행들은 신기해 한다. 500년 된 은행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마련해 간 짐을 내린다. 짐이 많아 두번씩 나르기도 했다.
실내로 들어 서려는데 엄청 많은 신발들이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 학교에서 견학을 왔는가 보다. 짐을 들고 들어서니 방안이 가득하다. 준비해 온 과자류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주방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방과 방안을 보면서 구경꾼의 자세가 되어 본다. 쌀을 찾는단다. 분명 쌀을 싣고 왔는데 안으로 가져 왔는데 없단다. 학생들에게 물어 보니 예배당 재단에 두었다는 말이 들린다. 웃으며 가져 오라고 하니 어느 학생이 금방 가져 온다. 이번 학생들은 미션스쿨을 다니는 학생들인가 보다.
쌀을 씻어 앉히고 나물을 행궈 물기를 꼭 짜 놓고... 한번도 생선을 만져보지 않았다는 진달래님은 동태를 씻어 놓고, 달걀을 후라이팬에 한개씩 깨어 넣고 익히고 있다. 비빔밥에 한개씩 얹어질 재료이다. 나물을 준비한 미룡님은 나물을 볶기 시작한다. 아내의 지시에 따라 시키는대로 하지만 새로운 비법을 배운다며 좋아 한다. 아내는 각종 재료에 양념을 넣으며 간을 맞춘다. 젱비님도 주방에 들어와 한몫을 거들고 있다. 시금치 나물, 미나리 나물, 호박나물, 무 나물, 콩나물, 무 생채, 겉절이, 우거지 나물, 동태찌개, 달걀 부침개, 양념 장까지 우와~ 진수 성찬이다.
주발에 각종 재료가 조금씩 담겨지고, 따끈한 하얀 쌀밥이 얹어지고, 달걀 부침개와 양념장이 마지막으로 얹어 지면서, 얼큰한 동태찌개와 함께 각 개인에게 차려진다. 방안에 가득 차 있던 백영고교 학생들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장애우들이 편하게 식사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들만의 배려이다. 상 앞에 앉아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맛있게 식사를 한다. 맛있게 먹는 그 모습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우리 일행들. 참 멋지다.
우리도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 비빔밥을 한그릇씩 비벼본다. 십시일반으로 나누자며 비벼 놓은 밥을 한 숟가락씩 내게 덜어 오니 분위기가 웃음바다로 변한다. 일흔이 넘으신 권사님께 많이 잡수시라고 인사를 드리면서, 변함없이 봉사를 오시는 모습에 은혜를 받는다고 했더니 권사님의 대답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늙은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무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내게 있는 것,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모르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감사... 감사에는 조건이 없었다.
맛있는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백영고등학교 학생 세명의 지원을 받아 설거지를 한다. 열심히 봉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우왕좌왕 시끌벅적하는 실내 분위기... 학생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인도해 온 김인경 선생님게 부탁하니 흔쾌히 승락을 해 주신다.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봉사와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준다. 나누는 것은 생활이 되어야 함을 말해 준다. 그들에게 복지사회를 만들어 가는 귀한 일군들이 되라며 당부도 해 본다. 그들에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 본다. 언젠간 그들이 그 때 그 순간이 참 소중했다는 고백을 하기 바라며...
간단한 교육을 마치자 설거지도 끝났다. 백영고등학교 학생들은 레크레이션을 한다며 준비를 하고 있다.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해 놓고 우리는 사랑의 집을 떠나 오고 있었다. 여전히 하늘은 황사로 안개 가득한 세상처럼 보인다. 황사가 걷히면 다시 깨끗한 세상을 볼 수 있겠지? 우리들의 삶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모두 벗겨지고 밝은 날만 있기를 기도해 보며 차에 올랐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2. 3. 21
http://jaonanum.net 에서 나눔
모처럼 아들과
아내가 지방 출타중이라 모처럼 아들과 한 침대에서 잘 것 같다.
녀석이 신나한다.
아내는 지방을 가면서
냉장고에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갔는데
우린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 먹었다.
난...
이해하기 힘든게 있다.
왜?
아내가 있을 땐 밥을 먹으려하고...
없으면 라면 먹으려 할까나...
다른 남자들도 그런가?
멀리서 전화한 아내의 목소리가 참 반갑다.
http://jaonan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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