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파리
부리나케 북한응원단을 쫓았다.
위아래로 북한 국기가 그려진 운동복을 맞춰 입은 중년 남성 5명은 2024파리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리정식-김금영이 점수를 낼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공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세계 최강 중국을 상대로 분전한 북한 대표팀을 바라보며 그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다.
가장 앞서 걷던 남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고 뒤따르던 일행도 '할 말 없다'며 회피했다.
선수 인터뷰 구역에서 서성이던 북한의 한 미디어 관계자도 '말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 취재진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리정식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짧은 대답만 몇 마디 남겼고 김금영도 한국 관련 질문이 나오면
눈치를 살피다 입을 다물었다.
반면 러시아와 2년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거침없었다.
이어 자국 취재진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한 번, 그외 미디어를 위해 경어로 다시 인터뷰했다.
질문을 경청하면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힘줘 말하는 하를란의 모습에서 말 이상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말 그대로 멋있었다.
우크라이나 기자도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너무나 소중한 메달'이라며 눈물로 감격의 순간을 쏟아냈다.
그들의 메시지는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말'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로 화해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의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을 멈추고 폭력을 시작할 때 인간적 해결 방법인 정치가 맘추고
동물적 해결로 넘어간다'고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치 발언을 금지하고 있지만 평화와 화합의 언어까지 틀어막는 건 아니다.
하를란은 IOC로부터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
물론 올림픽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다.
다만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자신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북한 선수에게 존경을 표했던 한국 역도 국가대표
김수현의 용기처럼 스포츠는 떄론 적은 말 한마디를 큰 울림으로 바꾸는 마법을 선사했다. 서진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