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이 여전히 독자들 감동시키고 사랑받는 이유
| 크리스천투데이 : 2025.03.27 12:05
[조덕영의 신앙시, 기독 시인 16]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
▲소강석 목사 북콘서트에 참석한 정호승 시인. ⓒ크투 DB
서울의 예수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_鄭浩承 시선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정호승 시선 <서울의 예수>.
정호승 시인(1950-)은 경북 대구 태생, 경희대 국문과 출신으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에서 기도, 부활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시인 예수, 서울 복음, 공동 기도 등 기독교적 모티브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다비는 정호승 시집 <서울의 예수> 해설에서 정호승 시인의 시를 “민중적 감성의 부드러운 일깨움”이라 했다.
민중적 정서와 아픔은 무엇일까? 정호승 시인은 이 ‘민중적 상실감과 헤맴’을 의도적인 평이한 언어로 서술한다.
이것이 지속적인 정호승 시인의 특징이요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 우리네 정서를 통해 정 시인이 대중들의 사랑 받는 시인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다비는 정호승에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살아감의 슬픔보다는 살아감의 방식·양상·힘에, 경험의 정서적 구체성보다 생존의 논리적 구체성에 더욱 관심을 가지기를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정호승 시인은 늘 자신의 중심에 스스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것이 꾸준히 정호승 시인이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사랑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변덕많은 이 세상에서 정호승 시인의 이런 한결같은 모습이 때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앞으로도 더욱 좋은 시를 많이 내는 정호승 시인 되셨으면!
필자는 <서울의 예수>의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이 마지막 구절의 패러독스가 늘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슬퍼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라는 윤동주 시인의 팔복(八福)처럼.
▲조덕영 박사. ⓒ크투 DB
조덕영 박사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신학자, 시인
‘풀꽃’ 나태주 시인의 ‘기도 1’…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 크리스천투데이 : 2025.03.19 05:56
[조덕영의 신앙시, 기독 시인 15] ‘풀꽃’의 시인
▲출판기념회에서 차미연 아나운서의 질문에 답하는 나태주 시인(오른쪽). ⓒ크투 DB
기도 1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_나태주
대한민국 대중의 사랑받는 시인 중 한 사람인 나태주 시인(1945. 3.16- )은 효동교회 장로였던 박목월 시인의 제자로 공주중앙장로교회 교인이다.
나태주 시인은 공주사범(現 공주교대) 졸업 후 1964년 경기 연천 군남국민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충남 청양 문성국민학교 교감, 충남 도교육청 장학사, 충남 논산 호암국민학교 교감, 공주 왕흥초등학교 교장, 공주 상서초등학교 교장 등을 지냈고,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정년퇴임했다.
교사 재직 중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대숲 아래서’로 등단했고, 1년간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기도 했다.
나태주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 문학상, 박용래 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고, 공주문화원장과 충남문화원연합회장을 지냈다.
‘순국 80주기’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十字架)’
| 크리스천투데이 : 2025.03.12 06:47
[조덕영의 신앙시, 기독 시인 14] 요절한 국민 시인
ⓒ다음세대학부모연합
조덕영 박사님의 연재 ‘신앙시, 기독 시인’ 이번 연재는 지난 2월 16일 순국 80주기를 맞은 ‘국민 시인’ 윤동주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十字架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敎會堂 꼭대기
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걸리었읍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을까요(있을가요).
鍾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휫)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괴로왓든) 사나이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조용이) 흘리겠습니다(흘리겠읍니다)。
※괄호는 원문.
▲시인 윤동주.
윤동주 시인(1917-1945)은 북간도 용정(龍井) 출생. 연희전문학교 문과 졸. 도시샤대 재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1943년 고종사촌형으로 교토 제국대 재학 중이던 수필가 송몽규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일제시대 광복을 앞둔 1945년 초 일본 규슈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안타깝게도 함께 옥사했다. 짧은 생을 마쳤으나 대중들 사랑받는 국민 시인인 윤동주 시인은 유고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년)를 남겼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4살 많았던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1913-1975)과 닮았다. 하지만 茶兄과 달리 요절해 시재(詩才)가 멈춘 것은 온 국민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참고로 윤 시인은 포크 가수이자 작곡가요 작사가인 윤형주 장로의 6촌 형이다.
[크리스천투데이 카드뉴스] 성화와 함께하는 #가상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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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화와 함께하는 #가상칠언|작성자 크리스천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