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 신청표가 공중으로 날려 올랐다가 비틀비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라보던 내 눈에 전투 의지가 가득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작성해 와~" "다시 해도 마찬가집니다."
지도 교수의 눈빛과 내 눈빛이 만나는 중간 지점에 불길이 일었다.
"너 정말 이럴래?" "저는 꼭 들어야겠습니다." "그 과목이 네 인생에 왜 필요한데?" "교수님께 설명드리긴 어렵지만... 저한테는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니는 니 인생에 그 과목이 기계수학보다 정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예."
한참을 노려보시던 교수님이 먼저 시선을 거두셨다. "이리 내." 마음 바뀌시기 전에 얼른 주워서 교수님 책상 위에 올렸다. 휘리릭 갈기듯 사인을 하시고는 의자를 돌려 앉으셨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돌려 앉으시거나 말거나 인사 꾸벅하고 방을 나왔다.
대학 3학년 때의 신학기. 지도 교수는 우리 과 선배이면서 전임강사가 되신 젊은 분. 나보다 6년 선배이셨다. 지방대학 출신이란 설움을 떨쳐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셨고 마침내는 카이스트에 들어가 석사학위를 받으신 분. 받자마자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하시고 후배들을 가르치러 모교로 돌아오셨다. 학생인지 교수인지 앳띈 모습이었지만 그 열의는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선배인 데다가 열의도 대단하시다 보니 따르는 후배들도 많았다.
2학년 지도교수에 이어 3학년때도 우리의 지도교수가 되었는데... 수강 신청을 하는 시점에서 나에게 높은 벽이 되셨다.
나는 기계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전공 필수만 듣고 전공 선택은 가능하면 안 듣고 내가 듣고 싶은 과목들을 인문이나 경영과목 쪽에서 골라 들을 작정이었다. 근데 하필이면 그분이 기계과의 선택과목인 기계수학을 맡으셨는데... 그 과목을 내가 다른 과목으로 바꿔 신청했던 것이다.
물론 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다닌 대학에는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부타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이란 시를 쓰신 김춘수 시인님이 교수로 계셨다.
<꽃>이란 시로 더 유명하신 교수님. 예술가들이 쓰는 빵모자를 쓰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시는 분.
나는 그분을 가까이서 뵙고 싶었다. 그분의 강의를 듣고 싶었다. 시에 대해서야 내가 무엇을 알까만... 그래도 존경하는 시인의 강의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서였다.
그분이 강의하시는 과목이 바로 '시학개론'이었다. 개론이니만큼 내가 듣기에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런 마음으로 수강신청에 기계수학을 시학개론으로 대체해 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세 번의 싸움 끝에 간신히 허락을 받아낸 것이었다.
첫날 첫 수업. 당신의 시를 직접 낭송하시고는 그 내용을 가지고 학생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식의 강의. 여전히 모자를 쓰고 계셨고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열의에 가득 차 보이셨다.
국문과 학생들이 주가 되다 보니 나에겐 난해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오고 갔다.
나는 그 수업시간이 되면 늘 몽롱한 듯 취해있었다. 난해한 이야기였지만 노교수이자 시인의 강의실 분위기에 취해서 그렇게 그 수업시간을 즐겼었다.
시국이 어수선하던 시절이라 시험은 한 번만 쳤던 기억이 난다. 흰 백지 큰 시험지를 주시더니 칠판에 '시의 운율'이라고 적으시더니 그것이 시험 제목이라 하셨다. 책에는 사전처럼 시위 운율에 대해 두 줄인가 세 줄 정도밖에 설명되지 않았는데 백지를 다 채우라니... 국민학교 시절 백일장처럼 난감하기만 했다. 일단 책에 있는 그대로 두어 줄 적어놓고 멍청히 앉자 있다가 백지를 채워가는 국문과 학생들을 보니 무엇이 그리 쓸 게 많은지 대부분 바삐 써 내려가고 있었고, 심지어 앞뒤를 다 채우고도 모자랐는지 시험지를 한 장 더 달라는 학생까지 있었다. 기계과 시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인간들의 이상한 시험 풍경이었다. 주절주절, 시험지 반장도 채 못 채우고 내 시험지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학기가 끝나고 받은 성적표에 시학개론 란에 선명하게 찍힌 학점은 D+. D학점을 받고 그렇게 기뻤던 날은 다시없었다.
4학년 때 그간의 나쁜 학점은 포기를 하고 다른 과목으로 재신청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는 그 시학개론만큼은 그대로 두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왠지 그대로 두고 싶었다. 그냥 훈장 같았다.
기술입국 시대에 그나마 공과 공부를 한 덕에 이만큼이라도 살아냈다 생각은 합니다만, 살면서 마흔 넘어 글이 쓰고 싶어졌고 쓰다보니 그런 공부를 했더라면 싶기도 합니다. ㅎㅎ 지금 돌아보면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는 역사였던 것 같고, 시골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가 적성에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ㅎㅎ 잔 문제와 큰 문제로 나누어진 공대 시험지만 보다가 흰 백지 시험지가 주는 공포를 그때 처음 느껴보았지요. 그 백지를 열심히 메워나가는 문과학생들을 기이하게 바라보던 그때의 심정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남동이님은 문과가 더 적성이 맞으셨던가 봅니다.
첫댓글 애초에 전공을 잘못 선택한 모양입니다.
마음자리님의 글을 보면 정말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하신 것 같은데요.
그러니 얼마나 갈등이 있었을까요.
훌륭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는것 만으로도 만족하였다니 그것으로 된거죠.
기술입국 시대에 그나마 공과 공부를 한 덕에 이만큼이라도 살아냈다 생각은 합니다만, 살면서 마흔 넘어 글이 쓰고 싶어졌고 쓰다보니 그런 공부를 했더라면 싶기도 합니다. ㅎㅎ
지금 돌아보면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는 역사였던 것 같고, 시골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가 적성에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선배이면서 유망하신 전임강사의
전공선택을 물리치고,
인문,경영 과목을 듣고자 하시는 조짐에서
혹시라도 전공을 다른 길로 택하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김춘수님의 강의를 받고 싶어하셨고,
시학개론을 D학점을 받고도 기쁘셨다 하시니
마음자리님은 문학이 제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꿈이 많았던 시절, 선택을 해야 했던 시절이
엊그제인가 싶은데
어느 길이 내 길이었을지는 그 때로서는
망서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무튼, 지나간 시절은 아름답던 시절입니다.
저도 김 춘수님의 시, '꽃'을 좋아합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니 어떤 선택이 옳았구나 한 순간만 떼내어 가름할 순 없지만 그 길도 좋았을 것 같긴 합니다.
삼형제가 적성은 다 문과 같은데 전공은 다 이과 계통을 했네요. ㅎㅎ
저하고 비슷한 경우네요..
공대 다니면서 경영학과나 문과대 과목을 수강신청을 많이 했는데..성적도 곧 잘 받았습니다..
'(공자)유교와 현대사회' 라는 과목에서는 발표도 잘해서 전공자들을 제치고 A학점을 받았답니다..
반면 공학전공은 주로 시들시들(CD)했구요..
그나마 제때 졸업했으니 다행이었답니다..ㅎ
아, 그러셨군요. ㅎㅎ
잔 문제와 큰 문제로 나누어진 공대 시험지만 보다가 흰 백지 시험지가 주는 공포를 그때 처음 느껴보았지요. 그 백지를 열심히 메워나가는 문과학생들을 기이하게 바라보던 그때의 심정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남동이님은 문과가 더 적성이 맞으셨던가 봅니다.
젊은 시절의 문학쪽 관심
그동안 쓰신 글로 비추어 보니 이해가 되군요
김춘수 시인은 제 고향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정계진출 이후의 행적을 안타깝게 여기지요
관심만 있었지 소양은 전혀 없다보니 강의 분위기가 낯설었지만, 느낌을 강조하시며 학생들 사이를 오가시며 강의하시던 그 분위기가 낭만적인 기억으로 아주 오래 남았습니다.
같은 고향 출신이군요.
정계 진출하셨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 때의 미련이라기 보다
원래 글쓰기를 좋아 하셨나 봅니다.
전공을 바꾸겠다 했으면 부모님께서 반대 하셨을 것 같아요.
당시의 부모님들은 다 거기 나오면 뭐 하는데?
이러셨잖아요.
글쓰기는 정년이 없잖아요.
그리고 잘 쓰시고요.
응원 하겠습니다.^^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다보니 책 읽기와 영화보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글 쓰기는 마흔 넘어 475란 커뮤니티에서 시작했는데, 그때야 제가 글 쓰기도 좋아하는구나 알았습니다.
계속 쓰고 싶고, 제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그 감정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다른 이들의 진심을 존중하시는
마음자리님의 글들이
김춘수 시인과 함께한 그 시간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장이 화려한 글보다 그 속에 품어져 있는
글쓴이의 진실한 뜻이 잘 전해지는 글이 좋습니다.
그 때 그리하시길 잘했습니다.
여행과 글쓰기 - 행복이 넝쿨째 굴러오겠습니다. ^^
여행과 글쓰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이런 행복이 굴러올 줄은 몰랐어요.
안전운전하며 건강 잘 유지해서
오래 이 소소한 행복들 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