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하느님 체험 교회는 모임이다. 나 홀로 교회는 없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성전 건물에 비유한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에페 2,20-21).”
성전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다. 교회는, 우리는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이다. 그런데 건물은 자라지 않으니까 사도는 다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비유한다(에페 4,15-16). 연약한 어린이가 힘센 어른으로 성장하는 거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자란다. 세례성사로 새롭게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성숙한 그리스도인, 하느님 자녀가 되어간다.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에게서 참 좋은 하느님이 점점 더 잘 드러난다. 신앙이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부분에서 내 삶 전체가 되어간다.
건물이나 몸이나 그 안에서 모든 부분이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처럼 교회 구성원도 그렇게 연결된다. 건물의 기초나 모퉁잇돌은 땅속에 박혀 있어 드러나지 않지만 그것이 없어지거나 망가지면 그 건물은 무너진다. 우리 모임도 마찬가지다. 각 개인이 하느님을 향한 마음, 곧 믿음이 없으면 그 모임은 사교모임이나 친목 단체로 전락한다. 그러면 온갖 더러운 것들이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다. 회비 문제, 뒷담화, 끼리끼리, 분열과 대립, 말다툼과 암투 등이 그런 것이다. 단지 그 모임이 성당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고, 시작과 끝으로 기도문을 외울 뿐이다. 그것은 무늬만 교회다.
사랑은 함께 한곳을 바라보는 것이고, 그들은 그 한곳, 즉 하느님 안에서 성장하고 하나가 되어 간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4,22).” 하느님이 우리 모임의 중심이란 말은 각 개인이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각 개인의 하느님 체험이 정말 중요하다. 체험이 없다면 하느님을 체험하려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 그 작은 체험들과 바람들이 모여 공동체적인 체험이 될 때 참으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게 된다. 모임 안에서 나의 하느님 체험이 너의 하느님 체험을 공동체 안으로 불러 내온다. 이를 두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이 너 안에 계신 하느님께 인사하고 또 섬기는 것이라 말해지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신앙 나눔이다. 이렇게 신앙은 자란다. 신앙은 현실적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마취제나 환각제가 아니다. 교회가 쉼터는 될지언정 도피처는 아니다. 신앙은 더 높은 곳에서 내 삶을 바라보게 하고, 그것의 깊은 곳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다. 신앙이 현실을 바꾸지 않지만 그것을 대하는 나를 바꾼다.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고, 하느님을 알게 해주셔서 더욱 감사한다.
예수님, 또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께로 한 발 더 가까이 가는 시간, 회개하는 날이 되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름으로 어머니를 부르는 모든 이를 아드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