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에도 조종간 놓지 않던 '행동하는 젠틀맨' 비행기 추락 사고
할리우드의 액션 스타 해리슨 포드(72)가 5일 오후 2시 30분쯤 (현지 시각) 미국 로스 앤젤레스에서 경비행기를 혼자 몰다가 추락해 크게 다쳤다고 외신이 전했다. 첫 보도 땐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으나 후속 보도들은 부상 정도가 ‘중간’이라고 전해 다소 안도하게 했다. 그래도 다친 부위가 머리 쪽이어서 우려를 금하기 어려운 상태다.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혹시나 하고 걱정하던 일이 결국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해리슨 포드는 비행기 조종에 각별한 취미가 있는 사람이며 과거에도 몇 차례 비행하다가 추락해 다친 적이 있다. ‘나이 70세을 넘겨서까지 조종간을 잡다가 큰 사고 나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을 살 만했다. 그래도 오랜 기간 비행사로도 활동해 왔던 해리슨 포드는 자가용 소형 비행기와 ‘벨 407’ 헬리콥터 등을 보유하고 계속 창공을 날았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조종간을 잡은 모습을 보도진의 카메라 앞에서 종종 보여 줬다.
-
- 머리칼 희끗해진 노년이 되어서도 중후한 남성미를 잃지 않은 해리슨 포드. 젊은날부터 그는 젠틀함과 파워를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액션 스타로 차별성을 가졌다.
해리슨 포드는 차분한 신사와 피끓는 액션 영웅의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다. 전형적 백인 미남의 핸섬한 이목구비를 가졌고 몸 전체에서 반듯한 신사의 분위기가 철철 넘친다. 나는 1997년 일본 도쿄에서 ‘에어 포스 원’ 개봉을 앞둔 해리슨 포드를 단독 인터뷰했다. 그 때도 내가 앉기 전까지 일어서 있다가 자리를 권했던 그의 반듯한 매너는 어느 할리우드 스타에게서도 보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의 카리스마는 부드러움과 남성미가 만나는 지점에서 빛났다. 할리우드 액션 히어로 가운데 화이트 칼라적 지성미를 겸비한 스타는 해리슨 포드 말고는 찾기 힘들다. 그는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검은 수트 아래 펄펄 뛰는 근육을 감춘 ‘행동하는 젠틀맨’이다. 비행기 조종을 즐기는 데서 알 수 있듯 그는 손재주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젊은날 어려웠던 시절에는 한때 목공일을 하기도 했다.
-
- 2001년 자기 소유의 벨 407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해리슨 포드.그는 오랜 기간 비행사로도 활동해왔으며 과거에도 몇 차례 추락 사고를 겪은 바 있었다. /AP
해리슨 포드는 1942년 7월 13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배우 출신, 엄마는 성우였다고 하니 연예인 피를 단단히 물려받은 셈이다. 결국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1966년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작은 ‘현금작전’이라는 영화. 그의 배역은 단 한마디 대사를 하는 호텔 벨보이였다. 그리곤 10여년 간을 해리슨 포드는 무명 배우로 전전했다. 시원찮은 단역만이 그를 기다렸다. 신세가 너무 비참해 아내 몰래 여러차례 울기도 했다.
해리슨 포드의 인생은 1977년 영화 ‘스타 워즈’의 주연에 전격 발탁됨으로써 완전히 바뀐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신인인 그를 캐스팅한 까닭은 전적으로 ‘마약 같은 나쁜 짓과는 완전히 담 쌓았을 것 같은 올바른 남자’의 이미지를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타 워즈’의 세계적 히트에 뒤이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이더스’(1981년)를 필두로 한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선풍이 이어지면서 해리슨 포드는 최고의 액션 스타가 되어 ‘모험청년’의 이미지를 굳힌다.
1997년에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 공중납치를 다룬 볼프강 피터센 감독의 액션 스릴러 ‘에어포스 원’을 통해 좀더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는 테러범에 맞서 기관단총을 직접 들고 한판 붙는 대통령이 되어 ‘위대한’ 미국적 영웅상을 빚어냈다.
-
- 2015년 7월 전세계 개봉 예정인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Star Wars Episode7)'를 촬영중인 해리슨 포드.
전세계 팬들로부터 수십년간 박수를 받아 왔어도 해리슨 포드에겐 이렇다할 연기상이 수여되지 않았다. 1985년 ‘위트니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는 아카데미나 골든 글로브의 연기상 트로피를 한 개도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해리슨 포드는 전문가들 평가를 받는 ‘연기파’ 배우라기보다는 대중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는 스타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는 칠순을 넘긴 후에도 결코 ‘흘러간 배우’가 아니었다. 근력에만 의지하는 마초적 액션 스타들은 중년을 넘기면 황혼기를 맞지만, 나이에 비해서 자유 분방한 악동 이미지의 역할을 연기해 온 해리슨 포드는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날리면서도 ‘현역’으로 뛰었다. 2013년작인 ‘엔더스 게임(Ender’s Game)’ 등 그의 근작들은 과거만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해리슨 포드가 여전히 배우로서 펄펄 뛰고 있음을 세상과 팬들에게 분명히 알렸다. 2010년엔 23세 연하의 배우 칼리스타 플록하트와 3번째 결혼까지 했다.
최근 해리슨 포드는 과거 출연한 대작들의 후속 편에 잇따라 캐스팅되어 제작이 진행중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고가 더 안타깝다. 1982년 개봉됐던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편인 ‘블레이드 러너2’의 제작은 차질이 빚어질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를 사랑하게 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SF영화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되어 버린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혼돈의 세계를 살아가는 불확실한 인간을 그려낸 이 작품은 매니아들의 재평가를 꾸준히 받아 왔다. 해리슨 포드 또한 이 작품에서 영화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한 좋은 연기를 했다.
해리슨 포드는 또 '스타 워즈' 시리즈의 신작 '스타 워즈 : 깨어난 포스 (Star Wars Episode 7, ·J.J. 에이브럼스 감독 )에 출연해 올해 7월 개봉될 예정이다. 사고 소식을 들은 일부 네티즌은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가 해리슨 포드의 유작이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해리슨 포드가 부상에서 잘 회복해 털고 일어나 다시 팬들 앞에 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