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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늘 하듯이 웃으면서 출근하는 나희의 인사에 대한 동료들의 반응이 낯설지 않다. 이 곳에 온 지 겨우 1 - 2 주 되었지만, 이미 나희는 받은 과제의 절반 이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본점에서라면 잡일과 업무 연결 등에 걸리는 시간으로 1달은 걸리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이 곳은 그런 문제는 없었다. 또한 규모도 작은 터라 적용 후 성공 및 실패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이 곳에 와서 처음 시도한 신상품이 벌써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나희에게 쉬울 줄 알았던 홈페이지 제작이 더 어려워 보였다. 사람을 사자니 경제적 부담이 컸고, 그렇다고 홍보와 실제 사무처리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한 홈페이지의 제작을 허술하게 아마추어에게 맡길 수도 없어 적임자를 찾지 못 하여 결국 과제의 진행은 답보상태였다. 적임자만 나타나면 일은 일사천리일텐데....
그래도 나희에게는 자유로우면서도 활기찬 이 곳이 그녀의 새로운 도전의 장이자 보람을 얻는 기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곳에 그냥 남아 볼까?'
시작은 지한에게서 멀어지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이 곳으로 올 것을 제안한 언니에게 고맙기 까지 한 나희였다. 서울에는 없는 기막힌 맛의 아이스크림 집도 알게 되었고, 직장동료들도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이방인일 수 있었을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나희의 제안을 색안경쓰지 않고 받아주는 그들.... 나희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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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할 만해?"
"응. 꽤 재미있구... 나 잘 하면 다음 달에 성과급 올라갈 지도 몰라... 흠흠...."
"대~단하구만! 조만간에 여기로 오는 거 아냐?"
"요즘은 여기 눌러 앉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 오바지? 헤헤..."
부산으로 온 후 부모님에게는 2 - 3일에 한 번씩 전화를 했지만 시집간 언니에게는 처음 하는 통화였다. 평소 자매 이상으로 가깝고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던 인생상담의 대상이었다. 그런 언니였기에 전화는 길어지고 있었다.
"이게 별 소리 다하네... 정말이야? 야. 방 나희! 너 엄마 앞에서 그랬다간 큰 일 난다. 그리구.... 너 시집 안 가?"
"흥! 유부녀면 처녀가 다 바보 같아 보여? 쳇이다. 쳇!!"
"어허...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왜 사실을 인정 안 해.."
"언니... 언니 정말 내 친 언니 맞아? 어째 아닌 것 같아..."
"나희야... 넌 아직도 내가 니 언니로 보이니? 흐흐..."
"음... 썰렁해... 언니. 지금 한 여름이라고 통할 것 같아. 하기야, 얼굴 직접 보면서 하면 좀 통할지도 모르겠다.."
"이걸.... 아, 요즘 운전 연수는 잘 되가?"
"어... 그거? 그게... 그냥 하는 거지 뭐..."
"뭐야. 아직 운전 니가 직접 안 해?"
"주말에만 연수해..."
"얘... 너 언제 니가 몰고 다니려구 그래..."
"연수해 주는 선생님은 몰고 다녀도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자신이 없네..."
사실이었다. 2주 정도 연수한 후 준휘는 나희에게 혼자 몰면서 연습해 보라는 권유를 했다.
"생각보다 운동신경이나 반사신경이 늦은 분은 아니네요? 그리고, 무었보다 운전은 겁낼 줄 아는 것이 중요한데, 그건 너무 많으셔서 문제인 것 같구... 단지 바람이 있다면 운전을 좀 즐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군요."
"즐겨요? 이 스트레스 받는 일을 즐기란 말예요?"
"그럼 좀 물어봅시다. 그 쪽은 일 하는 게 뭐 그렇게 좋다고 그렇게 웃으면서 출근하는 겁니까?"
"그거야... 어짜피 할 일인데 웃고 하는 게 낫잖아요."
"잘 아시네. 운전도 같게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왜... 사람들 사귀는 것도 그렇잖아요. 어떤 힘든 일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할 때는 웃게 되고...."
"무슨 인생 상담하시는 것 같네요."
"어짜피 그 쪽은 운전을 해야 할 상황이잖아요. 그럼... 즐겨요. 음악도 좀 듣고, 가끔 드라이브도 하면서 근처 바닷가나 관광지에도 가구요. 그러다 보면..."
'꼭 어린 애 가르치는 유치원 교사같아. 아니아니 세상 다 살고 죽기 전 노인같다.'
나희는 준휘가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언니. 나 운전은 타고난 것 같대... 역시 난 못 하는 게 뭘까?"
"으이구... 이 돌연변이야. 어째 넌 내 동생인데 누구한테서 그 공주병은 옮았니? 유전도 아닌데..."
티걱태걱하면서 언니와의 대화를 계속하던 나희는 언니 집에 누가 오는 바람에 아쉬운 통화를 마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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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큰 병원, 유명한 관광지 몇 곳을 알아 봅시다."
"저... 전 관광 가이드 배우는 거 아닌데요."
"누가 그거래요? 만일에 대비해서 알아두는 게 좋아서 그래요. 그리고, 오늘로 마지막 수업인 것도 아시죠?"
"정말이에요?"
"그래요. 대신... 음.... 저녁 좀 사줄 수 있어요?"
"예?"
"이거 원... 이런 거 내가 먼저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나희씨가 알아서 사 주는 거라구요. 물론 난 시작이 좀 달랐지만요."
언제나 황당한 제안만 하는구만. 나희는 준휘란 남자의 머리 속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도대체 엉뚱한 소리를 계속 하질 안나, 급기야 저녁을 먹자구?
"...."
"어어... 앞에 보는 거예요? 신호 바뀔려고 해요. 기어랑 사이드 브레이크 내려 놔야죠."
황당함에 잠시 정신을 딴데 팔고 있던 나희는 준휘의 말에 정신이 돌아와 급하게 기어 등을 조정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아 경적 소리는 안 들어도 되었다.
"어깨 힘 언제 뺄 거예요? 그리고... 음악 같은 거 들으면서 하랬잖아요."
마치 자기 차인양 나희가 고민하여 산 팝송 테이프를 골라 튼다.
"의외네... 이런 빠른 곡도 좋아해요?"
"...."
"삐졌어요? 나희씨 또 삐졌구만..."
"누가 삐져요? 말 안 하면 다 삐진 거예요?"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요? 아님 아닌 거지..."
"....."
"또 딴 생각하네... 앞에 차 너무 가깝죠? 그리고, 곧 회전 코스 나와요."
준휘와의 연수를 끝장내 버리리라 몇 번씩이나 다짐했지만 결국 계속 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실없는 소리를 계속 하는 듯 하다가도 준휘는 나희가 위험하거나 잘못 된 문제가 발생할 것 같으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슬쩍 잡으면서 나직하게 주의할 것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저럴 땐 진짜 무섭단 말이야. 도대체 저 속을 알 수가 없어. 게다가 내가 뭔 생각하는 지 어떻게 금방 아는지...'
무뚝뚝하게 운전대에서 손을 뗄 줄 모르는 나희에게 준휘가 한 마디 한다.
"왜요. 저 놈 속이 어떨까 궁금해요? 그럼 오늘 나한테 술사요. 대신 나 집에까지 데려다 줘야해요."
응답없이 침묵이 한 동안 흐른 후 나희는 입을 열었다.
"그 쪽에서 내 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하는 말투는 뭐예요?"
"나희씨는 얼굴에 무슨 생각하는 지가 보여요."
순간 나희는 가슴이 멎는 것 같았다. 나희의 표정이 급속히 변하는 걸 보고 준휘는 아차 싶었다.
"우리... 저기 사거리 후에 공터에서 잠시 쉬죠..."
준휘의 지시대로 나희는 아무 말 없이 차를 공터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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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운전.....4
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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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0.1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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