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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사랑하는 자로서 그분의 주제와 진심을 따르고 싶다"
〔 마가 11장 17~31 〕 / 김한중 진달래교회 목사
지금 미리 이거 헬라어로 딱 봤어야 되는데!. 한글로 개역성경을 봅니다. 뭔 소리가 있는지 알겠어요?
개혁 성경 그러면 부자 청년이 선생님이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봐요 네 이승전이지요. 제가 어찌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겠습니까?. 내가 여기서 이제 실수를 하나 햐요. 헬라어 성경을 봤어야 합니다. 영생과 하나의 나라 그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예수께서 이야기하는 하나님나라, 하늘나라라고 하는 개념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는 것이고 예수만 아는 거에요. 그런데 이제 넘겨짚는 거죠. 넘겨집어서 천국이라고 번역을 해버리니까 바실레이아트페롤이에요.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늘 신의 왕국이죠. 신의 왕국인데 이게 뭐냐? 뭘 이야기하는 거야, 예를 들면 예수가 에세네파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예수님이 동방에 유학을 가서 불교를 배우고 뭐 어떤 때는 설들을 전부 고려를 한다고 하더라도에 예수님의 이제 주제, 애인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뭔 뭔 소리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지혜로 유추할 뿐이다.
그리고 그 당시 제자들도 몰랐던 것 같아요. 몰랐다. 이 양반이 이제 은밀한 것에 대해서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성서에 안 나와 있다. 그러니까 이게 밀교야. 예수님의 밀교에 해당되는 지식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예요.에 이거다. 라고 내 놓은자들이 그노시스다. 연기주의학파였었고 네 그게 아니다라고 했던 애들이 이제 로마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이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박해한다..
하여튼 이런 그 종교적인 법적 타당한 시스템들을 우리가 이해를 하더라도 이제 하더라도 후대로 내려가면 400년이 지나고 에, 천 년이 지나고 지금 이천 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이제 후대의 숱한 지혜들을 역으로 모아서 예수님의 하늘나라는 이런 게 아닐까라고 이제 내놀 때가 된 거다. 이제는 어 이제 저 같은 경우는 그 이제 죽어서 가는 아스트럴제, 이게 천국 이것도 천국인데 이걸 예수가 이야기 하신 건 아니에요. 저 예수님은 딱 한 번 언급을 했는데 그 왼쪽인가 그 저 십자가에 박힌 놈이 하나 있었죠. 그 사람이 강도라고 표현을 한 거지 강도가 뭔지를 또 사실 잘 모른다.
이게 독립 투사였다는 설도 있다. 왜냐하면 당시 십자가형에서는 정치범들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뭐 노상강도는 단순한 강도를 십자로 형으로까지 차단하지는 않는다.
보통 십자가 형이 이제 그 당시 그 사형제도다. 제도 중에서 가장 악랄하고 고통스럽다. 그러니까 살인범 이제 강도 이런 것들은 잡범들은 그냥 목 졸라 죽이든지 칼로 치든지 해서 간단히 죽여버리면 돼. 정신적인 양심수들은 정권을 위태롭게 한다.
그 뭐 찬송가 보면 저 부끄러운 십자가 이런 나무, 부끄러운 게 아니고 그것은 정치범들이 받는 로마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대한 형벌이다.
그런데 양 옆에 십자가의 강도들이 이제 강도라고 하는 저는 이제 정치범 같다. 그 친구들이 이제 같이 시작을 하신 거였는데 있다. 이제 낙원에 있으리라 이런 말을 한 번 했다. 이것은 사후세계의 이야기 그런데 이제 이 하느님의 나라 이게 번역을 천국으로 하면서 이제 불교에 어떤 힌두교의 시각을 혼동하기 쉽게 돼가지고 아 그것은 이제 죽어서 가는 아름다운 곳인데 이 부분을 예수님이 하느님의 나라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너희 안에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사막의 교부들이 이제 깊은 명상과 기도 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는데 네 그것이 이제 하늘나라, 어 하나님와 분리를 해서 하늘나라는 말하자면 아, 그 아파테이아, 그 아파테이아가 하늘나라고 야파테이아가 뭐냐면 아! 파토스. 파토스트가 파토스라는 게 열정 이런 거다.
욕망, 열정, 까마, 이런 거야. 돈 벌려는 거, 연애하고 싶은 이런 그 지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욕망들 이걸 파토스라고 하고 이게 없다. 파토스가 없으면 어떻게 되지 어떤 사람은 시체처럼 뭐 마른 막대기처럼 될 것이다 이렇게 했는데 그게 아니다.
파토스가 있다가 파토스가 없어지면 어 파토스가 없는 인류로 진화한다. 어 이것을 이제 힌두교에서는 이것을 이제 목샤, 해탈 그니까 우리 동양에서 불교나 힌두교, 도교에서 해탈 해탈 했던 그 해탈이 바로 온갖 아스트랄적 번뇌로부터 해방한다. 이것이 아파테이아하고 같다. 이것을 에바그리우스는 그것을 하나님나라라고 한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그보다는 좀 더 높은 편이다.
하늘나라가 이루어진다. 예 우리 영혼에서 하늘나라가 이루어진 다음 코스, 하나님 그 본인, 하나님 그 자체에 대한 지식 또 하나님께서 창조한 우주에 대한 영적 지식, 이 지식을 갖는 것 이게 이제 하느님의 나라다 이렇게 표현을 했다. 이것은 또한 그 불교나 힌두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다. 이렇게 깨달음의 단계와 같다. 불교는 이게 에바그리우스는 무슨의 깨달음의 단계를 하나님의 나라를 두 개를 받았다. 하나는 약간 아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에 대한 영적 이해에 대한 이야기 이것이 고타마 싯달타가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그다음에 그 윗 단계에 에 깨달음은 하나님에 대한 대답 이것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왔다. 이 하나님의 대한 깨달음 페얼로스케, 그래서 이게 궁극적인 지식이 되고 가장 높은 깨달음이다. 이렇게 에바그리우스가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이게 에바그리우스 폰테쿠스의 해석이다.
그래도 그 사람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하나의 훌륭한 해석 중의 하나다. 그 다음에 우리가 죽어서 입체와 에펠체를 받고 가는 그 사후 세계 이것도 천국이라고 했다. 거기에서는 이제 이제 말하자면 라카룸 같은 거야.
그래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지만 아시죠 그 땀 흘려서 뭐 열심히 하지만 이 게임은 게임이죠 이 라카룸에서는 쉰다. 이런 개념이죠 그래서 우리 저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라카룸으로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슬퍼할 것이 아니야. 그 다음 문제는 이제 윤회를 하게 되죠. 이렇게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거다.근데 이 이 오늘의 부자가 운이 없는 것 같은데 어 그걸 물어보는 것 같다.
예수님에게 선생님 어떻게 하면 내가 당신이 설교하고 다니는 그 경지 하나님의 나라 또는 영생을 내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 양반이 친절하신 분이었으면 돌 닦아라. 아 뭐 육체 진화부터 시작해라 뭐 이렇게 했을 텐데 이 양반이 무자비한 양반이라?
이 부분까지는 이 부자가 자신이 있을 때가 돼 십계명 십계냐 근데 십계명을 지키기도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나도 못지키는 십계명, 지키기 어려운데 근데 십계명을 지킬 정도로 그 청년은 신앙심 깊다. 상당히 신실한 청년이다.
보낼려고 작정을 했는지!. 그런데 이 양반께서 보내불라고 작정을 했는지 좀 어려운 부탁을 질문을 한다. 어려운 이야기를 해버린다.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받게 될 것이다. 뭔 보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뒤에 와서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옛날에 그 물고기 잡던 제자들은 이 일도 힘들고 고기도 잘 안 잡히고 그러니까 에이 따라가는 게 낫겠다. 확 버릴 때 다 아버지 것이고 왜 이렇게 다 버리고 떠나가지고 쉽게 제자가 됐어. 근데 이 부자는 운이 없어가지고, 돈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근심하면서 나는 생명이라는 것은 이제 생명체의 그 주 특징이 두 가지지 않는가?
나는 생식을 한다.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에너지가 필요하죠 지구에서 정물 동물의 몸을 가지고 이렇게 생명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라고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가 요즘에 이제 에너지는 돈이지 돈이 에너지잖아요. 그래서 돈은 제 2의 생명이다, 그니깐 돈도 한다 이러지만 돈 자체가 에너지야 그 에너지가 좀 살 수가 없어 그러니까 돈은 더 생명이 돼.
그래서 구약은 되게 부유하는 것을 찬양한다. 잘 먹고 자잖아 이런 식으로 하고 부자가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돈 걱정 않고 사는 방법도 이야기해 준다. 돈걱정 없이 잘 해주겠다고 하나의 약속을 한다.
이걸 악용 해 가지고 교회가 왕창 뜯어가는데 그런 이제 그건 전말이야. 돈걱정이 없어져요, 많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적당히 이렇게 안 굶어 죽을 정도의 시스템이 만들어 준다. 그래, 나도 십일조 한다. 아직도 안 굶고 있어요?
네 근데 신약은 어 그 단계에서 이렇게 생물체로 어물 저물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예수는 어 이렇게 지구인들이 지구상에서 생명력을 구가하면서 행복하게 이렇게 살고 이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고타마 싯달타도 거기에 관심이 없다, 뭐에 관심 있냐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일반 생명체들이나 일반 지구인들의 관심과 행복과 뭐 이런 것을 위해서 온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걸 보았다. 그것을 이제 이해를 하지 못하면 일반 기독교인이 된다. 그죠 예 그 신약은 이런 현실적인 행복, 소위 말해서 또 안전 이런 것을 초월하려고 해요,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가 예수의 믿음안에서 부닥치는 모순과 고통스러운 현실이 뭐냐면 우리 에고는 영생을 얻어서 이 지구상에서 행복하고 즐겁고 오래 살면서 이렇게 잘 살고 싶어.
우리 에고는 근데 하느님이 보내는 자들은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우리에 신앙인으로서의 고통이 생긴다. 이것을 복음으로 받아들일 거냐 어 이것을 저주로 받아들일 건가. 어 이것은에 우리가 얼마나 세속에 집착하고 있느냐로 결정이 난다. 그럼 여기에서 무슨 현상이 일어나냐 살기가 생긴다, 뭐냐면 세속에서도 잘 되게 해줘. 영적으로도 잘 돼야지, 이렇게 타협이 들어오지, 이거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 아니야 근데 그렇게 해 하면 이제 지구인들이 엄청 장단점이에요.
그래서 지금 뭐 수도 하는 자들이나 영성적인 장사는 안 되지만 3박자는 아 이게 물질과 영성 그 가짜 영상이지만 이걸 다 주겠다라고 하는 그 종교는 살아남는다. 이게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것을 그 거는 세속적 집착이나 욕망 정도도 아니고 그냥 세속해서 행복하려고 하는 단순한 그냥 소박, 단순 소박한 희망 이것에 대한 금액 제가 볼 때 어 뭐 목사님처럼 생겨 갖고 누가 가겄어요? 장사가 되겠어요라고 이야기 하고 싶으니까 다들 그런데 이게 그분들의 주제다.
왜 나는 그 가짜 제왕은 예수를 사랑하는 자로서 그분의 주제와 진심을 따르고 싶지 그냥 내가 잘 살고 잘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가 원하는 바다라는 것에 대해서 눈치를 챘다. 그런데 이것을 교우들이나 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솔직함이 깔 거냐 이것에 대해서 나는 망설였다.
그러니까 불재에서나 까는 거지. 다른 데서는 말도 못한다. 이 말 말 해봤자 복음이 아니야. 그런데 예수의 말씀을 우리가 복음이라고 한다.
그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 뭐 그림자 복음을 위해서도 그런데 여러분은 어때요? 복음입니까 지금 예수예요? 이런 요구 사항들이 뭐 하여튼 하영이는 복음이야. 그지 그러니까 하영이는 구원을 받을 거예요.
하여튼 오늘 농담을 펼쳐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하는 이유는 이게 너무 심각한 그 요구사항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피해갈 필요가 있다. 아, 그래서 이천년 전에 이거 예수 시대에는 막 가난해 막 사람이 굶어 죽는 시대니까 그랬어. 이렇게 우리는 막 우리 에고는 피해서 살아서 도망가려고 그죠?
그래도 될 것 같애 그런다고해서 어 낙타가 바늘귀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그 하느님의 은총은 예수 시대보다 지금부터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에 어 적당히 이렇게 살아도 천국을 하느님 나라를 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막 진짜 막 지금 아파트 막 차 다 팔아가지고 가난한 자에게 주고 이렇게 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죠. 다만 여기서 우리가 적당히 타협을 봐야 한다. 하느님하고 여기까지는 뭐 제가 가질게요.
아 죽음은 놓고 갈게요. 이렇게 타협을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너무 또 이 도그마가 돼버리면 막 빠개진다.
아 정말 예수의 말씀 그대로 잡으면 아 그냥 머리 깎고 사막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이 시대에. 그래서 적당히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지금. 지금은 시대가 자본주의 시대로 찾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근본주의적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행위 할려고 하는 게 굉장히 주변을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런다고 해서 거꾸로 또 내가 내 애고의 욕망을 앞세우면서 다른 것들을 다 이렇게 적당히 이렇게 막 적당히 해나가려고 하는 태도는 이제 더 심각하다.
우리가 여기에서 어떻게 균형감각을 익혀서 잡을 거냐 하는 것이 그게 지혜가 될 거다. 하늘나라의 지혜도 있지만 이 하늘 나라를 실천하는 지혜, 아, 이것도 우리는 끊임없이 개발해야 된다. 하는 것이다. 지금 뭐 지구에서 나는 물질로 지구인들이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그러잖아요. 이제 나누지 않아서 아까 빌게이츠 뭐 그렇게 돈을 몽땅 가져가 버리면 어떡해 하는 사람들이 가져왔다가 나가지고 이거 장난하는 거거든 여튼 그런 좋은 일들도 있고 좋습니다만 이제 정치나 우리 의식이 진화하지 않으면 지금은 항상 배고픈 옷들이 대표한테 근데 이상하게 세월이 흐를수록 정치나 의식이 진화된다고 저는 믿었는데 어쩔 때는 크게 거꾸로 가니까 상당히 실망스러움이 있다. 돈을 이렇게 많이 가지려고 하고 돈 때문에 전쟁하고 돈 때문에 마음에 안 든 놈 대통령을 뽑아야 되고 이런 것들 있다.
계속해서 이렇게 돈에 얽매이고 돈돈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뭘까?. 네 그래서 우리의 원초적이고 뿌리고 싶은 생명으로서의 두려움들 우리의 생명이 혹시 끊어질까? 근데 우리의 생명은 영원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끊어질까 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없어지자 이 생명의 두려움 생명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극복되는 이걸 뜻하는 겁니다.
이게 해탈의 마지막 편, 근데 그 생명에 대한 생명의 손상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너무 뿌리깊기 때문에 그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울타리를 치고 또 울타리 한 겹쳐지고 또 더치고 어 아니 1억 갖고는 부족하니까 10억으로 10억으로 또 불안해. 백억이 계속 울타리를 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거다. 그냥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한다.
반드시 그 내부에 두려움이 존재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소유에 대한 두려움 욕망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게 욕망과 두려움은 그러니까 이게 씻어야 한다. 음, 우리가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복음이 될라면 이런 두려움과 아 고통이 사라진 하나님 나라. 아 그 이룬다라고 하는 건데 이런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는 말씀, 이게 복음이 되는 거지.
돈을 많이 벌게 하는 말씀이 복음이 아니고 돈에서 해방될 수 있는 두려움 없는 마음 상태와 동일체, 이게 복음이 되는 거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 거냐 하는 그 방법을 예수가 말씀을 하신 거다? 다시 서로 사랑해 하는 거지 음 오늘 부자는 그 예수의 그복음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그러니까 두려워하면서 근심하면서 따라간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를 예수에 대한 복음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걸 믿음이라고 해요 어 예수를 믿는다 하는 말은 내가 교회 다닌다는 뜻이 아니고 예수의 복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어 그래서 복음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이걸 이제 예수를 믿는다는 거다는 말인데, 그런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 지구인으로서 몇억년이라는 거는 그 무의식 안에 있는 싶은 생명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생명 상실의 두려움에서 해방된다면 우리는 굳이 많이 가지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게 복음의 내용이다..
여러분들이 우리들은 저 그 복음이나 내용들을 이해를 하고 이렇게 살아가면서 지금 이순간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