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맷 퓨리라는 작가가 그린 만화 캐릭터 개구리 '페페'의 이미지가 문화적·정치적 사건들과 마주치며 변천하는 모습을 추적해 나가는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오프라인의 여러 사건으로 확장되는 역사를 추적해 나가는 영화의 전개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개구리 캐릭터 '페페'는 만화의 서사에서 탈맥락화해 밈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일을 겪게 됩니다. 페페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야말로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가 됩니다. 이 밈 이미지가 뿜어내는 역량을 자세히 느낄 수 있도록 영화는 밈의 계보학적 작업을 착수합니다.
개구리 페페의 이미지는 평범한 일상물 성격의 만화에서 벗어나 점차 만화의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상징을 갖기 시작합니다. 페페의 얼굴은 본래 화장실에서 바지를 다 내리고 오줌을 싸는 페페를 친구가 놀리자 "기분 좋다(feels good man)"라고 말하는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자신의 우스꽝스러움을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페페의 표정과 대사는 온라인상에서 컬트적 인기를 끌다가 '니트족(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소위 '아싸'들이 자신을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하게 됩니다. 캐릭터가 가진 독특성으로 슬픈 표정을 묘사해 내기 쉽다는 점, 자신의 찌질함을 스스로 긍정하는 맥락 등은 니트족이 페페를 자신들과 동일시하게 되는 문화적 코드로 작용합니다.
영화는 개구리 페페가 기존 맥락에서 이탈해 어떻게 재맥락화하는지 보여 줍니다. 이 재맥락화 과정은 약자 혐오적이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페페 밈이 온라인상에서 퍼져 나가 '인싸'들과 셀럽 여성들까지 사용하기 시작하자, 니트족은 인싸들이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페페 밈에 새로운 상징을 더합니다. 이를테면 9·11 테러의 항공기 조종석에 앉은 페페를 그리고, 나치 문양을 배경으로 유대인을 학살하는 페페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페페는 밈을 '혐오의 기호'로 적극 활용하는 이들의 관습에 따라, 루저 남성들의 '폭력적 남성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변합니다. 이 남성성은 억압이 있는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기 보다는 모욕적·폭력적 언사를 통해 자신을 인싸들과 구별 짓고, 여성을 자신의 패배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로 도상화해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말을 내뱉음으써 자기 집단을 게토화하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으려 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인터넷 '밈'으로 사용되는 슬픈 개구리 페페.
니트족이 아싸·찌질함의 기호로 지켜 낸 페페 이미지는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와 만나면서 '우익 포퓰리즘'의 기호가 됩니다. 유색인종·이민자·성소수자 및 여성에 대한 혐오의 기호가 된 페페는 더 이상 만화 캐릭터로 읽힐 수 없는, 약자 혐오의 상징을 넘어선 '트럼피즘(미국 대중이 트럼프에게 열광한 현상 - 편집자 주)'의 도상 기호로 변합니다. 본래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니트족은 트럼프가 페페 밈을 이용해 트위터를 하는 데 열광적으로 환호했고,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해 사이버 운동을 전개하기도 합니다. 니트족은 이제 단순히 사이버 오락 공간의 도구로 밈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소외됐던 자신들이 중심부에 서서 인싸들을 몰아내고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로서의 밈 이미지를 만드는 데 열광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과 결부된 우익 포퓰리즘의 부상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의 보수화, '이대남' 현상, 능력주의 공정 담론과도 공명합니다. 포퓰리즘은 한편 '인민의 자기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모든 인민이 아닌 엘리트와 기성 정치인 등이 주변화한 인민을 상정합니다. 따라서 피해당하고 밀려난 이들끼리 연합해 엘리트와 기성 정치인을 내쫒고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를 갖습니다. 우익 포퓰리즘은 진보주의자들의 논리가 아주 평범한 인민들의 권리를 빼앗고, 공정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영화 속에는 자국민들이 이민자들에 의해, 백인들이 유색인종에 의해 차별받고 있다는 논리를 강하게 믿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원칙인 인민의 자기 지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궐위'의 징후들을 나타냅니다. 소수자를 혐오하는 배타적 내집단의 통치가 아니라 전체 인민의 자기 통치를 가능하게 하려면 개구리 페페가 아닌 새로운 밈 기호가 필요한 것일까요?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원작자 맷 퓨리를 비롯한 그 지인들과의 인터뷰들을 통해 '페페가 원래 어떤 이야기를 담은 캐릭터였는지' 추적해 나가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아닙니다. 작가는 페페의 이미지를 혐오가 아닌 사랑으로 바꾸자는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하기도 하고, 만화에 페페의 죽음을 그려 넣음으로써 페페 밈의 우익 정치적 생명력을 끝장내려고 하며, 무단 도용 소송을 제기하고 승리하는 등 텍스트 바깥에서도 싸움을 이어 나갑니다. 그러나 작가가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세계 속 이미지일 뿐, 문화 담론과 정치 현장에서 형성된 페페의 이미지는 더 이상 원작자의 페페가 아닌 새로운 페페가 되어 여전히 우익 정치의 생명력을 떨칩니다.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 종반부에서 선명해집니다. 페페의 본래 이미지가 어떠했다고 변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가진 행위성을 인민들이 활용하는 형식에 대해 역설하는 것입니다. 페페는 우연히 미국에서 우익 정치의 상징이 된 것처럼, 지구 반대편 홍콩에서 우연히 민주화를 향한 열망의 상징이 됩니다. 루저들이 지닌 폭력적 남성성의 자기 비하적 눈물로 상징되던 페페의 얼굴은,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며 경찰에 "때리지 말라"고 저항하는 투쟁의 얼굴이 됩니다. 영화 종반부 시퀀스는 페페를 줄곧 우익적 이미지로 활용하던 백인 남성들과는 다른, 유색인종 여성들이 홍콩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의 메시지는 예술의 오리지널 이미지를 보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의 정치성을 꺼내 예술의 정치화를 넌지시 제안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홍콩 민주화 시위 현장에 나선 페페들.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