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와 쾌적한 코스, 프렌들리한 길벗님 등 도보의 3대 요건이 완벽하게 부합된 덕분에 발걸음도 가볍게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벗삼아 즐겁고 유익한 도보였습니다. 특히 아카시아와 오동나무꽃 절정의 향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다음 달 3코스를 고대하며 아래와 같이 오늘 후기를 올립니다.
아래
1. 일시: 2026년 5월 9일 10시
2. 코스: 강남 고속터미널역 3번 출구를 출발하여 - 사평대로 육교 - 서리풀공원(일명 서리골) 진입 - 반포대로, 누에다리 - 몽마르뜨 공원 - 서리풀다리 - 지그재그 데크길(구 정보사령부 Exit) 서리풀근린공원 - 淸權祠 영역 - 13:00 방배역 먹자 골목 뒷풀이 - 방배역 해산 귀가
3. 참석회원 37명(裕南 기준 16,104보)
4. 5월 버스도보
- 5/23(토) 옥천 부소담악(芙沼潭岳)
- 신청은 5/13(수) 08시 28명 선착순 마감.
5. 6월 정기도보
- 6/13(토) 10:00 백의종군길 3코스 우면산길
6. 보충설명
(1) 서리풀공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북쪽으로 반포동, 동쪽으로 서초동, 남서쪽으로 방배동에 걸쳐있는 초대형 녹지공간이다. 센트럴육교로 연결된 서리골공원에서 누에다리, 몽마르뜨공원과 기존 서리풀근린공원을 거쳐 淸權祠 영역의 孝寧大君墓, 祠堂까지 이어진다. 서리풀은 瑞草의 우리말로 상서로운 풀이라 하여 벼를 뜻한다. 평야 지대가 많은 서초구의 이름은 바로 서리풀에서 따온 것이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겸손함을 가슴에 담아본다. 서리골공원은 나무가 워낙 울창해 한여름에도 서늘함이 느껴져 서리가 내릴 정도라 하니, 더위를 피하기에도 제격이다. 휠체어나 유모차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무장애 데크길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도 잘 조성되어 있다.
*구 정보사령부 터를 지나며 네 분의 전쟁 영웅을 소환하다 - 미국 측에서 평가한 한국전쟁의 영웅적 인물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매튜 리지웨이 장군, 백선엽 장군, 전설적 특수공작 지휘관 김동석 예비역대령(가수 진미령 아버지) 등 네 분의 영웅담을 나누었다.
(2) 누에다리 - 서리풀공원 內 누에다리 코스의 매력은 반포대로 때문에 나뉘어 있던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이어주는 누에다리를 건너는 특별한 체험이다. 서리풀이라는 이름은 여름에도 서리가 내릴 만큼 시원하다고 해서 서리골로 불린 데에서 유래했고, 몽마르뜨는 근처 서래마을에 프랑스인이 많이 사는 점을 고려해 파리의 유명한 언덕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누에다리는 옛날 이곳에 양잠 기관이 있던 것을 착안해 원통형 누에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특히 길이 80m, 폭 3.5m의 누에다리는 N서울타워와 예술의전당을 양방향으로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로도 유명하다. 밤이 되면 다리 전체에 조명이 켜져 화려한 야경을 선보이니, 저녁 시간대 방문도 고려해볼 만하다. 누에다리 구간은 반포대로 위를 가로지르는 만큼 생각보다 높이감이 상당해서,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다리 중간에는 아래 도로를 내려다보는 투명창이 있어 짜릿함을 더해준다.
*소원을 들어주는 누에 - 누에는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천충(天蟲) 즉 하늘이 내린 곤충으로 불렸다. 알에서 깬 누에는 뽕만을 먹고 4번의 허물을 벗으면서 25여 일을 자라면 1200~1500m의 실을 토해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된다. 이 고치에서 켜 낸 명주실(SiiK)로 짜낸 비단이 인류 최고급의 웃감이 되는 것이다. 누에의 유일한 먹이인 뽕나무의 뿌리, 줄기, 잎과 오디도 당뇨병, 간질환, 치매 등 성인병 질환의 효능이 좋아 현대적 연구로도 입증되고 있다. 이렇듯 인간에게 의류와 건강의 상징이 된 누에는 서초구와 깊은 인연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누에를 친 것은 기원전 3,000년경 부터이다. 조선시대 초 백성들이 양잠법을 보고 배우도록 국립 양잠소인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지금의 잠원동 지역에 설치하였다. 20세기 초까지 이 지역에는 누에를 치고 뽕나무 묘목과 잠종(蠶種)을 생산 보급하고 잠업을 가르치는 강습소가 있었다. 누에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서초구는 구민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염원하는 마음으로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이곳에 누에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두 마리의 누에가 사랑을 나누는 조각 예술품 잠몽(蠶夢)을 설치해 여기를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멋진 추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누구라도 누에 입술에 손을 대고 간절히 자기의 소원을 빌어보라, 아이를 원하는 부부는 아들과 딸을 얻고, 연인은 사랑이 이루워지며, 병약한 사람을 건강하게 될 것이다. 바라는 소들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다.
(3) 몽마르뜨공원 - 프랑스 詩 조형물이 있어 마치 유럽 공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르누아르 작품을 모티브로 한 조각상과 시계탑은 인증샷 명소로 알려져 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방문객이 많고, 특별히 오늘은 서양 어린 자녀들이 많이 나와 공놀이를 하며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입구엔 해충 기피제 분사기도 비치되어 있다.
(4) 鄭谷마을과 정곡빌딩 이야기
500년의 문중 터와 법조타운의 조우, 서초동 법조타운을 걷다보면 유리 벽으로 치장한 신축빌딩들 사이에서 유독 묵직하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鄭谷빌딩이다. 이 건물의 기초 아래에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 가문의 영욕과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정한 단면이 층층이 쌓여 있다. 본래 이 일대는 정곡마을이라 불리던 곳이다. 조선초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鄭易 선생의 묘역과 사당이 자리 잡은 이래, 海州鄭氏 문중이 500년 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집성촌이었다. 지금의 서울고등학교부터 법조단지, 서리풀공원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이 모두 그들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말, 국가의 강제 수용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500년의 시간은 무력하게 해체되었다. 사법 정의의 실현이라는 명분 아래 문중의 땅 위로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섰다. 재미있는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가문의 터전을 내어준 보상금으로 세워진 것이 바로 지금의 정곡빌딩이다. 동관과 서관을 중심으로 여전히 문중의 자부심을 지탱하고 있는 이 건물은 단순한 업무 공간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물론 그 과정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한국 사회를 뒤흔든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몰락은 이 건물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당시 문중의 어른이었던 그가 사업 확장을 위해 정곡빌딩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IMF 외환위기의 파도속에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가문의 자산이자 역사의 증거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그 순간은, 우리 현대사가 겪은 격량의 축소판이다. 정곡빌딩은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벽면 위로 수많은 법률가가 오가고,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사건들이 이곳에서 준비된다. 서초동 1572번지, 이곳은 단순한 주소지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 공익과 사익, 그리고 한 개인의 초심이 엉켜 흐르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5) 청권사(淸權祠) - 조선 3대 임금 태종의 차남이자 4대 임금 세종의 둘째형 孝寧大君 李補의 묘소 및 사당이다. 사당 이름 청권(淸權)은 깨끗하고(淸) 권도(權, 사리에 맞는 처신)를 안다는 뜻이다. 주나라의 고공단보가 삼남 계력을 후계자로 삼을 때 차남 우중이 아버지의 뜻을 안 후 삭발하고 숨어살았던 일화가 있다. 후일 공자가 우중을 평가하면서 숨어살며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렸으니 깨끗하며(淸) 사리에 맞는 처신(權)을 했다고 칭송했는데, 거기서 유래한 명칭이다.
숙종 시기 국가에서 효령대군의 맏형 양녕대군의 사당(至德祠)을 건립했다. 주나라의 고공단보가 3남 계력을 후계자로 삼을 때 장남 태백이 아버지의 뜻을 안 후 삭발하고 숨어살았던 일을 두고 공자가 태백은 지덕이라고 칭송한 데에서 유래한다. *동작구 상도동에 讓寧대군의 至德祠가 있다.
이에 효령대군의 후손들도 국가에서 공인하는 효령대군의 사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에 1736년(영조 12년) 2월에 서울, 지방 각지의 문중 대표들에게 통문을 보내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이때 효령대군의 외손들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4월에 후손 447명과 외손 50여 명이 사당을 세울 것을 청하는 상소를 정식으로 올렸다. 이후 조정에서도 관련 문제가 언급되었다. 같은 해 6월에 좌의정 김재로와 우의정 송인명 등 효령대군의 외손인 중신들이 사당 건립 및 위전과 복호를 마련하여 떼어줄 것을 건의했다. 그러자 드디어 영조가 이를 받아들여 경기감영에서 사당을 짓도록 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완공한 것은 1746년(영조 22년)인 듯 하다. 이후 역대 임금들이 신하를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 1789년(정조 13년)에 정조는 효령대군의 후손을 골라 등용시키게 하고 제를 올리게 했다. 1972년 8월 3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받았다. 첫 등재명칭은 淸權祠附墓所였고 2008년 10월 30일에 孝寧大君 李補 묘역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효령대군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以上,
2026년 5월 9일
裕南 李 相 萬
(010-5395-8373)
첫댓글 거뜬하게 완주하신 여러 회원님들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간식준비회원님들, 봉사하신 호호, 바이칼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좋은걷기였습니다
코스,날씨,회윈들 컨디선
삼위일체의 퍼펙트!
아침에 눈을뜨니 잠자리 날개를 장착한 것같은 이 가벼움은 오월의 푸르름을 온몸으로 받은 어제의 여운인듯 하네요
2코스를 준비해주신 "유남" 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우울하면 걸어라 그래도 여전히 우울하면 더 걸어라 - 장폴 사르트르 -
몸과 마음과 눈도 건강해지는 좋은 길 감사합니다.
이번 서리풀공원 걷기 함께하고 싶었는데 가족모임으로 참석을 못해 아쉬운 마음에 걷기 후기 자세히 읽다보니 '정곡마을과 정곡빌딩'에 그런 역사적인 사연들이 있었군요? 정곡빌딩 동관에서 시동생이 변호사 사무실을 30년가까이 (97년부터) 하고 있어서 아주 가끔 들러는 잘 아는 빌딩입니다. 상쾌하고 푸르른 오월 건강하고 즐거운 모습들 보기 너무 좋습니다!
빌딩의 앞마당에 정태수회장 대형 송덕비도 있습니다. 남다른 인연에 새로운 느낌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남님의 수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깊은 산속에 온것 같은 걷기를 즐겼어요
도심 속 이런 장소가 많은 서울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망아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