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8.2)
원래 이번 여름휴가는 8월 1일까지 순천시티투어를 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으나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 더 자고 다음날 송광사를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송광사를 가보는 것은 불교에 조그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바이다.
우리가 보통 절에 가면 절의 맞배지붕의 옆에 보면 원이 세 개가 있다.
그것은 불교에서 세가지 보배인 삼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처님(佛), 부처님 말씀(法),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僧)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이 삼보를 상징하는 삼보사찰이 있으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양산 통도사(불보사찰),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모시는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스님을 양성하는 순천 송광사(승보사찰)이 있다.
그래서 송광사는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절이었다.
순천시티투어를 하면서 얻은 관광지도에 따르면 남해고속도로 주암인터체인지에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숙소인 팔마체육관 근처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순천인터체인지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니 30내지 40분이면 도착한 것같다.
절 입구에 가니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 연혁이 간판으로 되어 있다.
요약하면 신라말 혜린선사가 송광산 길상사를 창건하여 화엄종지를 선양하였다.
고려때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의 도량으로 정하고 크게 중창하여 조계산 수선사라 칭하였다.
그후 16국사가 배출되고 고려말에 절이름을 송광사로 바뀌고 승보사찰로서 조계종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1969년 구산선사가 조계총림으로 발족시켰고 이후 더욱 중창시키고 국사전 등 국보 3점, 하사당, 약사전 등 보물 12점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그래서 들어올 때 문화재 관람료도 받게 되었다. 그런 요지가 쓰여 있었다.
송광사 들어오는 입구에 살펴보니 배롱나무가 붉은 색, 분홍색, 흰색이 있는 것이다.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이 있는데 청량각이다.
그 지붕 밑에는 용이 두 마리 있는데 들어갈 때는 용 입에 아무것도 없는데 나올 때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은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는데 우리는 넓은 차도로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니 큰 돌에 조계총림 대도량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지막 자는 장(場)자인데 량으로 읽는다는 것이다.
송광사 올라가는 길도 쭉쭉 벋은 나무로 뒤덮여 있어 대사찰이라는 이미지에 걸맞는 것같았다.
조금더 올라가니 법정스님이 쓰셨다는 무소유 뭐라던가 그 비석이 크게 있었다.
길가에 찻집이 있었는데 앞에 풍접초, 꽃기린, 도마토, 벌개미취등 여러가지 꽃이 심어져있었다.
절 가까이 가니 돌에 하마비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는데 작년 진주성에서도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절에 들어올 때 말에서 내려라 이런 뜻일 것이다.
절 가까이 가니 좌측에 많은 비석들이 쭉 도열하고 있었고 불일서적이란 간판을 단 서점도 있었다.
드디어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란 간판을 단 일주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간판뒤에 승보종찰 조계총림이란 간판도 같이 붙어 있었다.
냇물위에 설치된 누각인 우화각 앞에는 고향수라고 해서 죽은 나무가 서 있는데 그 나무는 지눌스님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지눌스님께서 생전에 나와 함께 운명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시어 정말로 열반하신 뒤에 나무가 죽었는데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나무가 살아날 기운이 있는데 그것을 두고 어떤 좋은 일이 생기나 하는 말들이 있다는 이종희 해설사님께서 말해 주셨다.
그리고 고향수 뒤에 보면 작은 집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세월각, 하나는 척주당이다.
천도제를 지낼 때 절에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절 밖에서 하루 자는데 바로 영혼들이 이 집에서 하루를 지낸다는 것이다.
세월각은 월(月)자가 여성을 상징하므로 여성 영가가 척주당은 남성을 상징하므로 남성 영가가 지낸다는 것이다.
우화각에서 계곡을 처다보면 경치가 그야말로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시객들이 시를 써서 우화각 안에 전시시켜 놓았다고 한다.
우화각을 지나면 사천왕상이 있는데 보물이라고 한다.
절안에 들어가니 배롱나무, 산수국과 삼잎국화, 그리고 능소화가 눈에 보인다.
그리고 정면에는 종고루가 있는데 종로구에서 나와서 대웅보전 사진을 찍는데 웬 처사인가 스님인가 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억.. 사진 찍으러 서울서 왔는데 사진을 찍지 말라니 이후 몰래 몇장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마구 찍기도 했다.
송광사의 대웅보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亞)자형 건물이다.
송광사의 지형은 연꽃 지형이라서 건물 안에서는 탑을 세우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 담 뒤에 가면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이 있다.
이 감로탑은 지눌이 열반하자 고려 의종이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려 1213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경내 여기 저기 옮겨다니다가 지금 이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송광사에는 3대 명물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 성보각에 전시되어 있는 능견난사란 법당에서 부처님전에 공양을 올릴 때 사용하던 용기이고 또하나는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수령 800년된 천지암에 있는 2개의 향나무인 쌍향수이다.
이 쌍향수는 보조국사와 다른 스님이 지팡이 하나씩을 박았다고 하는데 그게 자랐다고 한다.
다음 명물은 비사리구시라고 절에서 국재를 모실 때 사찰로 모여든 대중들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목조용기이다.
절을 우리끼리 대강 구경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로 내려오는데 차도로 이종희 해설사님이 올라가는 것이다.
불러서 다시 같이 올라가면서 해설을 들었다.
종고루 설명을 들었는데 범종, 물고기형 나무조각, 북, 구름무늬 철판이 있는데 이것들은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고 하고 보통 아침, 저녁 예불 전에 울린다고 한다.
북은 땅위에 사는 네발 짐승, 범종은 땅속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 목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 운판은 창공을 나는 날개달린 짐승들을 위해 각각 울린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점심 공양시간이 11시여서 빨리 점심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하여 우리도 따라갔다.
점심은 짜장에 비빔밥이었는데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우리가 가니 많은 분들이 먼저 와서 점심을 드시고 계셨다.
우리는 이종희 해설사님 덕분에 점심까지 절에서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간 곳은 관음전인데 관음전은 명성황후가 기도하던 곳으로 관음전 벽에는 정1품 등 벼슬이름이 적힌 벽화가 있었다.
절에서 내려오면서 우화각 밑의 아치형 다리 밑에도 용머리가 있다는 말이 나왔는데 거기 용 머리에는 엽전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그 다리 공사를 하면서 남은 돈을 거기에 놓아두어 공사를 투명하게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리 보수 등을 할 때 그 돈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이종희해설사님이 말해 주었다.
내려오면서 찻집에서 빙수를 시켜 먹으면서 나중에 시간이 되면 또 순천을 방문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다.
송광사의 여러 가지를 이종희 해설사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가는 귀중한 기회가 된 것같아 뿌듯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해설해 주시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