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아들을 둔 어느 엄마와 아들 이야기입니다.
“유치원 재밌어?”
“응, 재밌어.”
“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으응, 선생님도 예쁘고 친구들도 좋고 다 재밌어.”
너무나 흐뭇했습니다. 적응을 잘못하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후유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2주가 지났을 때입니다. 느닷없이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그러니 엄마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혹시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것은 아닌지?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선생님한테 꾸중을 듣고 저러는 것은 아닌지?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온갖 상상을 하면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 유치원을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더니 왜 안간다고 그래? 누가 괴롭혀? 누가 때리는 거야? 선생님한테 혼냈어?”
그런데 아들의 대답은 영 딴판이었습니다. “아니, 유치원은 너무 재밌어.”
“그런데 왜 안간다고 하는 거야.”
“으응, 내가 유치원 가면 동생 태혁이가 너무 심심하잖아. 혼자 놀아야 하잖아.”
하, 이럴 수가, 내가 유치원가면 동생이 심심하니까,
나는 유치원이 너무 재미있지만 동생을 위해서 내 재미를 포기하겠다는 아들의 의젓한 모습에 그만 가슴이 콱 매여 왔습니다.
언젠가 형아가 유치원 가고 나면 동생이 심심해 한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는데 그게 마음에 남았던 모양입니다.
정말 형은 형인가 봅니다. 한번은 동생이 말을 듣지 않아서 꾸중을 주는 데 큰 아들이 이러는 겁니다.
“엄마, 아직 아기잖아요. 말도 잘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데, 혼내지 말고 잘 좀 돌봐 주세요.”
엄마보다 더 어른같은 아들에게, 유치원 가서 재미있는 거 배워 와서 동생에게 가르쳐 주면 더 좋아 할 거라고 하니까 해해 웃으면서 유치원 가방을 맵니다.
그리고 9개월 된 동생에게 인사합니다.
“형아 간다. 빠이 빠이.”
형과 동생이 이렇게 우애가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태너 최승원씨는 4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가 불편합니다. 어린 시절 참 우울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비로서 음악 대학에 다니면서 자신의 소질을 깨달았고, 노래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한 쪽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노래하는데 늘 힘이 딸렸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중얼거리면서 다짐했습니다.
“사람은 100번 넘어져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절망하다가, 다시 일어나고, 100번은 일어 나자!
드디어 그는 미국 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글라츠라는 선생님을 만났고 각종 콩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드디어 그는 꿈에 그리던 세계 최정상의 무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주최로 열리는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 가지 낙망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한 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장애와 함께, 콩쿠르가 열리는 날 그만 설사가 나고 말았습니다.
노래하는 태너가 설사를 했으니, 힘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틀렸구나. 그저 마음 비우고 편안하게 노래하자.’
그런데 웬일입니까? 심사위원들은 그를 우승자로 뽑았습니다. 그는 우승 소감을 말하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저 같은 사람을 뽑았습니까?”
심사위원들이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몸을 보러 오는 게 아니고 당신의 노래를 들으러 오는 겁니다.”
최승원 테너는 지금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힘을 쓰고 있는 분입니다.
그의 고백을 읽으면서 남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사람은 100번 넘어져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100번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어나라! 일어나라!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