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왜 전작권을 돌려받으려고 했는가?
[기획분석기사]
전시작전권 조직 전환 추진의 교훈과 과제
ㆍ 노무현 대통령은 왜 전시작전지휘권 환수에 목을 맸는가? ㆍ 속 빈 강정으로 변질한 전작권 전환
ㆍ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미루려는 미국의 흉계
ㆍ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없이 자주국방은 없다.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화제로 되고 있다. 10월 14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52차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한미불협화음이 컸다. 집권 여당 중진 의원조차 조속한 전작권 전환에 머뭇거리는 미국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현 정권은 전작권 조기 전환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미국제 무기 구매에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차일피일 전작권 전환을 미루고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임기 내 전작권 환수’는 물 건너갔다. 전작권 조기 전환을 미루고 있는 미국의 행태에 대한 전국민적 분노가 솟구치고 있다. 분명 전작권 조기 전환을 미루고 있는 미국의 행태는 규탄받아야 한다. 하지만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전작권 전환’은 군사주권 확립이라는 전 국민적 요구와는 거리가 먼 ‘기만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전작권 전환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해 보고자 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 21일 민주펴오하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전시작전권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전시작전지휘권 환수에 목을 맸는가?
전작권 전환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소신이고 철학이었다. 그는 “자주독립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독자적인 작전 수행의 능력과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2003년 8.15 경축사)”라고 군사주권 부재 현실을 개탄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2006년 8.15 경축사)”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을 군사주권의 핵심으로 보고, 전작권 환수에 매달렸던 것은 미국이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북한과 전쟁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실제로 1994년 한반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미국은 1994년 5월 18일 전직 고위장성들을 국방부로 불러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을 논의한 데 이어, 6월 14일 회의에서 영변에 대한 폭격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병력 증강 배치를 결정했다.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회고록에서 당시 증원전력을 한반도 주변에 대기시켰고, 추가 전력이 미 본토에서 한반도에 도착하면 이북을 공격한다는 계획을 수립했었다고 밝혔다. 6월 16일 당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미국 시민들을 한국에서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 그때까지 한국 정부는 워싱턴에서 북폭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도 못했다. 한반도에 전쟁 발발 직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당사자인 한국정부는 그 사실 자체를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전쟁발발 위기는 카터의 평양방문을 통한 중재로 제네바 회담이 개최됨으로서 해소되었지만, 정말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까지 갔었다.
2001년 대통령에 취임한 조지 워커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강경대결노선을 선택했다. 2002년 9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은 북을 선제공격대상국가로,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는 핵무기를 이용한 선제공격 대상국가로 분류해 놓았다. 2002년 여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조선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방안’을 보고 받았다. 여기에는 제거 행동에 나설 때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한반도에는 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2003년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할 때 우리 정부와 협의와 동의를 생략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졌고, 이것은 1994년도의 경우에 비추어 전혀 기우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작권을 환수하게 되면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벌일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작권 환수를 통해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전쟁이든 평화든 우리의 손으로 결정하자는 것, 이것이 군사주권의 핵심이자, 전작권 환수의 목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연합사가 갖고 있던 전작권을 한국군으로 이관하면, 미국의 일방적 대북 군사행동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는 미국과의 협력적 방식으로 전작권을 회수할 수 있었다고 믿고, 이를 위해 이라크 파병 동의, 전략적 유연성 동의 등 수없이 많은 양보를 거듭했다. 하지만 전작권 환수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무현 방식 전작권 환수노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속 빈 강정으로 변질한 전작권 전환
노무현의 유지를 계승한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식 전작권 환수 노선(미국에 수많은 양보를 하면서 미국의 동의와 협력하에서 굴욕적 방식으로 전작권을 환수하는 것)에 대한 평가와 교훈을 찾지 않은 채, 노무현 방식의 전작권 조기 전환을 추진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이를 추진했다. 2017년 6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조건에 기초한 한국군으로의 전작권 조기 전환이 조속히 가능하도록 동맹 차원의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대로 하면 전작권이 전환되면 주한미군이 갖고 있던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이전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미국의 횡포로 전작권 전환이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그러자 미국의 횡포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전작권 조기전환을 강력히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작권 조기 전환을 둘러싼 이러한 논란과 갈등은 전작권 전환이 무슨 큰 의미라도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작권 조기 전환이 이루어지면 주한미군이 장악하고 있었던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넘어오고, 한미 군사 관계에서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와 언론에서도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전작권 전환을 전작권 환수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전작권 환수’는 없다. 왜 그러한가? 미국은 이미 전작권 전환을 속 빈 강정으로 만들어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전작권 환수’란 한미연합사령부가 갖고 있던 전작권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로 이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전작권 전환은 그게 아니다. ‘현재의 한미연합사령부’로부터 ‘미래의 한미연합사령부’로 이관된다. 현재의 자기가 미래의 자기에게 전작권을 이관하는 것을 전작권 전환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자기가 자기에서 전작권을 넘기는 것을 왜 전작권 환수라고 얘기할까? 그것은 한미연합사령관을 한국군 출신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군 출신이 한미연합사령관을 맡으면 한국군으로 전작권이 전환되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다음의 이유로 ‘한국군으로 전작권 전환’은 기만이다.
첫째는 미국은 유엔사를 통해 우리나라 군사주권을 틀어쥐고 있다.
전작권의 핵심은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반도 정전체제 유지관리권을 가져야만 가능해진다. 그러려면 유엔군 사령부를 해체하고, 한국군이 그 책임과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2018년 10월 31일에 합의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지침에 따르면 ‘유엔군사령부를 지속 유지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2020년 10월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도 ‘유엔사의 정전협정 준수와 집행역할’을 재확인하였다.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전쟁 개시권, 정전협정 체제 유지관리권, 종전권, 평화협정체결권)은 정전체제 유지관리라는 명분 아래 유엔사가 장악하고 있다. 유엔사를 해체하지 않는 한 군사주권의 핵심이자, 전작권 환수의 목적인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여전히 미국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게 된다. 이러한 권한이 빠져버린 전작권 환수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정전체제의 한 축이었던 이북이 군사정전위를 폐쇄(1994년 5월 24일)하고,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2013년 3월 5일)을 함으로써 정전체제는 실질적으로 무너졌다. 정전체제가 무너짐으로써 유엔사도 존재 명분이 사라졌다. 그런데 미국은 유엔사를 해체하기는커녕 그 기능과 역할, 권한을 더욱 확대 강화해 나가고 있다. 왜 그럴까?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아니다.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군사적으로 장악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은 2014년부터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유엔사 강화조치(조직, 회원국, 인력확대)를 추진해 왔다. 이것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사의 지위와 역할을 강화해 한국군 출신이 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사령부를 지휘 감독하려는 포석의 일환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둘째 전작권 전환의 구체적 실행 과정을 통해 2017년 한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인 ‘한국군으로의 전작권 전환’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고 있다. 사실 한미연합사는 군사주권의 핵인 개전권과 종전권을 유엔사에 넘겨주고, 전쟁 과정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기능만을 맡은 형편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한국군에게 돌려주지 않으려 온갖 잔꾀를 다 부리고 있다. 그러한 잔꾀들로 인해 ‘한국군으로 전작권 전환’은 속 빈 강정으로 되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9년 6월 3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국방장관 회담에서 ‘미래 한미연합군 사령관은 합참의장을 겸직하지 않은 별도의 한국군 4성 장성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 결정에 주목한 언론과 연구자들은 많지 않은데, 그것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눈을 감는 것일까?
이 방안에 숨겨진 미국의 흉계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한미연합군 사령관(한국군 출신)을 한국의 군사 지휘 명령체계(대통령→ 국방장관 → 합참의장 → 각군사령관)에서 벗어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를 통해 한국의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일상적 지휘명령을 받지 않도록 구조화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군 출신 사령관에 불과하지, 한국군에 속해 있는 사령관이라고 볼 수 없다. 당연히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부여되어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이관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의 군사 지휘체계로부터는 아무런 지휘나 명령을 받지 않고 오로지 한미양국의 군사협의기구로부터 전략지시와 작전지침을 받을 뿐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군 소속이 아니라 별을 단 카츄사병에 불과하다. 이로써 한국군은 전작권 행사에 직접 개입할 수 없도록 구조화되어 버렸다. 오로지 한미양국의 군사협의기구를 통해서만 개입할 수 있다.
이날 열린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는 또한 미래의 한미연합사 본부를 한국 국방부 청사 내가 아니라, 미국 땅인 평택 험프리스 미군기지 내에 두기로 합의했다. 이것 또한 미래의 한미연합사령관을 한국군으로부터 격리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미국 땅(평택 미군기지)에서 미군에 둘러싸여, 미국의 정보와 가치판단에 둘러싸여 자주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오직 미국의 정보판단과 정책을 무조건 추종하는 바지사장에 불과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한국군을 대표하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한미연합사 지휘부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합참의장은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으로서 한미연합사 의사결정과정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미래 한미연합사에서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지휘부에서 배제됨으로써 한미연합사 의사결정과정에 한국군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할 수단이 없게 되어 버렸다.
한국군으로 전작권 전환은 기만이고 사기이며,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