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 그는 친일인명 사전에서 친일파로 분류된 인물이다. 왜 저자 조성기님은 국민의 감정에 반하는 친일파 윤치호를 평전과 소설을 겸한 방식으로 글을 썼을까? 그를 옹호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함일까? 저자는 작가 후기에 다음과 같이 글을 쓴 이유를 밝힌다.
"윤치호는 독립운동파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닌 중도파 내지는 경계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일제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우리 세대가 그 시대의 미묘한 굴곡과 숨결들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끝으로 이 작품이 소설임을 양지해 달라고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윤치호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장장 60년간 대부분 영어로 일기를 썼다고 한다. 갑신정변이 발발하기 직전부터 조선 학도병으로 징병되던 때까지 근 60년간 공책으로 하면 30권 분량이라고 한다. 그의 일기장들이 분실되지 않도록 자녀들이 보관해 오던 것들이 충남 천안 출생으로 국사학을 전공한 김상태님이 일기 대부분을 꼼꼼하게 번역하였고 지금 우리가 윤치호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로 쓰이고 있다. 영어로 일기를 쓴 이유는 자신의 사생활과 속마음까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게다. 그 정도로 윤치호의 영어 일기는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소상히 기록했다. 사료적 가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윤치호를 작품 속에서 '좌옹'으로 부른다. '도와주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서북파와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기호파의 팽팽한 대립 분위기 속에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 지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파도가 휘몰아치는 격랑의 시대를 살아온 윤치호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와주고 싶어했다. 경고망동하지 말라고. 해외에 나가 독립운동하는 길만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고. 국내에서 일본의 눈치를 살치며 가족을 돌보며 열강의 침략 속에서 지혜롭게 나라를 위하는 일들을 찾아내는 길도 꼭 필요했던 일이라고 항변하는 듯 하다.
윤치호는 부패한 조선 관료만으로는 새 시대를 개혁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윤치호가 바라본 조선 관료들은 오직 자기 탐욕만을 채우기에 급급한 족속들이었고 각성하기 보다는 도리어 파멸로 이끄는 짐승들이었으며 주도적으로 독립을 위해 나설 용기나 정력이 결여된 무기력한 지식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조선 5백년 동안 정치적인 반대와 모욕적인 차별을 받아온 서북인들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했던 기호인들을 증오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단결된 힘을 발휘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윤치호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될 바에 차라리 같은 동양인인 일본의 힘을 빌려 자강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기에서 보이듯이 자신의 친일적인 태도는 다른 무리들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조선 백성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친일보다는 용일, 일본을 이용해서라도 조선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치호를 친일파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관련 단체들 내에서도 얼마간의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윤치호 일기'를 바탕으로 소설 형식이나마 용기를 내어 글을 쓴 저자 조성기님의 도전에 큰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그가 평전으로 쓴 '한경직 평전', '유일한 평전'을 구할 수 있는 대로 읽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