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50cm. 경북 청도 태광농장에 자리한 사과나무의 평균 키다. 일부러 나무를 5m 이상 키우는 농가들도 있지만, 태광농장 변규곤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키가 낮으면 따기 쉽고, 따기 쉬우면 노동력도 줄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인건비를 아낄 수 있게 된다. 2만㎡(6000평) 규모의 과수원을 혼자서 관리하는 변규곤 대표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키낮은 나무, 혼자서도 밭 관리 가능해
농업고등학교와 농업대학교를 졸업한 변규곤 대표는 농사 지식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해박하다.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자랐기 때문에 실전경험에 대한 자신감도 뛰어났다. 그러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신경북형'이라 불리는 '키낮은 사과나무 재배 시스템'! 으레 5m이상 높이 키웠던 기존의 사과나무 재배방식과 달리 최고 수고가 2.5m를 넘지 않는 재배방식이었다. 적뢰, 적화, 적과, 전정과 수확까지 혼자 다 한다는 변 대표는 키낮은 나무 덕에 사다리를 쓸 필요도 없으니 자연히 농작업에 속도가 난다고 말했다.
키낮은 사과, 여름 전정에 달렸다
노동력을 줄이는 작업을 전문용어로 ‘생력화’라고 한다. 키낮은 사과 시스템은 말하자면 과수 생력화 방식의 일환이다. 키낮은 사과 작업할 때 힘도 덜 들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는데 전국에 널리 보급돼 있지 않은 이유는 뭘까? “두려움 때문에 시도를 못 하는 거죠. 괜히 했다가 망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좋은 기술이라면 과감히 시도해 ‘내것’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 대표가 전하는 ‘키낮은 사과나무’ 만들기 노하우는 어려운 게 아니다. 끊임없이 자라려는 나무의 성질을 인력으로 막는 것. 바로 전정이다. 대개 사과 전정은 겨울에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키낮은 사과나무 만들기의 열쇠는 여름 전정에 있다. 여름 전정은 특히 수세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키를 낮출 수 있다.
“가장 좋은 양분은 햇볕”
변 대표가 혼자 과수원을 운영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퇴비를 최소한만 주는 것이다. 시중에서 파는 유박비료(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 등을 활용한 친환경 비료)와 일부 화학 비료가 태광농장에서 쓰는 퇴비의 전부다. 비록 올해 저농약 인증제가 폐지됐지만, 저농약 재배법을 고수하고 있다. “사과를 무조건 많이, 크게 달아 판매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서울 강남 손님들에게 주먹만 한 ‘미니 사과’를 보여주면 얼마나 인기가 있는 줄 아십니까? 답은 이미 나와 있어요.” 착색제와 비대제를 쓰지 않아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이지만, 평균 당도는 17brix다. 전국 각지의 손님들에게 100% 직거래로 판매하는데,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까다로운 여성 고객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건 그만큼 품질이 좋다는 뜻. 태광농장에서는 그 흔한 ‘반사 필름’도 쓰지 않는다. 어린 가지를 유인할 때는 값싼 노끈을 묶어 해결한다. 과수원 덕트 시설도 수십년 전에 설치한 그대로다.
“안 써도 되는 농자재 구입은 하지 않아요. 농가들이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시설 투자에 ‘올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부채에 시달리게 되는 거지요.” 학업과 경험으로 얻은 기술을 최대한 실전에 적용하되, 부자재의 구입은 신중히 한다는 변규곤 대표. 남 보기에 그럴듯한 과수원을 꾸미는 것보단, 경영비를 아껴 순소득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철학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사과 1kg당 생산비=180원
태광농장에서 이처럼 경영비를 철저히 계산해 운영한 결과, 사과 1kg당 생산비는 180~200원이다. 이는 사과농가 평균 생산비의 5분의 1 수준이다. 농촌진흥청의 사과 생산 단가조사에 따르면, 사과 1kg당 평균 생산비는 1000원. 키낮은 사과 재배로 인건비를 줄이고 각종 농자재 구입비를 아끼니 생산 단가는 절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청도 최초로 사과 초생재배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가지가 처진 건 햇볕이 잘 들게 하기 위해서고요.” 과수원의 나무 아래마다 수북이 돋은 풀은 잡풀이 아니라 초생 재배를 위한 야생초다. 구태여 심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놔뒀다. 초생재배의 장점은 땅심(지력)을 높여주고 토양 침식을 방지해 준다는 점이다. 태광농장의 또 한가지 특징은 가지들이 아래로 처져 있다는 것이다. 정식 명칭으로는 ‘솔렉스 수형’이다. 이곳에는 18년생 나무부터 새로 심은 2~3년생 나무까지 나무 수령이 다양한데, 오래된 나무들의 경우 하나같이 아래로 처져 있다. 변 대표는 전국에 널리 보급된 ‘세장방추형’ 유인 기술에 ‘솔렉스 수형’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나란히 마주보고 심은 나무 사이의 수폭이 넓어져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하게 된다. 결국 비오고 습한 날씨에도 갈반병이 들지 않고 건강한 상태로 유지된다. “지금 우리나라엔 수입 과일이 대량 수입되고 있어요. 값싼 외국 과일과 경쟁하려면, 가격을 낮춰야 하죠. 그러려면 결국 생산비 절감이 답입니다.” 변규곤 대표의 농사 철학에는 개별 농가의 소득 증대라는 목표를 넘어, 국내 과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염원하는 혜안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