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
돈이란 무엇일까요?
자유이지요
미국 1달러짜리 은색 동전에 보면
‘리버티(LIBERTY)’라고 새겨져 있어요
이것이 미국 사람들의 돈에 대한 철학을 한 단어로 규정한 것이지요
자유는 2가지 측면이 있어요
하나는 구속받지 않는 자유이지요
월급 타려고 매일 출근 지하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지요
보기 싫은 상사 밑에서 듣기 싫은 소리 안 들어도 되는 자유이지요
다른 하나는 욕망의 충족이지요
돈이 있으면 생물학적 욕구(食·色)와
사회적 욕구(아파트·명품·자동차)를 충족시킬 수 있어요
욕망의 충족도 자유를 주지요
그러니 ‘돈은 자유를 준다’는 말은 심오하지요
그런데 동양에서는 돈을 분(糞)이라 했어요
전본분토(錢本糞土)라는 말이 있지요
돈은 본래 똥을 섞은 흙이라는 뜻으로,
돈은 원래 썩은 인분(人糞)처럼 천한 것이라는 의미 였어요
'인분(人糞)'은 적당한 곳에 적절하게 뿌려주면
훌륭한 비료가 되어 주변이 좋아지는데,
그저 욕심내어 쌓아두기만 하면
참기 힘들 정도의 심한 악취를 풍기게 되지요
그래서 돈은 열심히 벌어 인분을 밭에 뿌리듯 사회에 뿌리면
그 사회는 건강하고 활기차지만
벌은 돈을 쌓아 놓기만 하면
인분에서 악취가 풍기듯 돈도 썩는다고 하지요
그래서 돈은 분(糞)이라 했지요
20년도 넘은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현대 정주영 회장이 저승에 막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갑게 맞았지요
그리고는 대뜸 “잘 왔네, 정 회장. 나 저승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먹게 500원만 빌려주시게.”
그러자 정 회장이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지만
동전 한 푼 나오지 않았어요
겸연쩍어하는 후배에게 선배는 껄껄 웃으며 말했지요
“당신도 빈손으로 왔소? 나도 빈손으로 왔는데.”
대한민국 최고 부자도 세상 떠날 때는 빈손이지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직접 쓴 서예 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경매에 나왔어요
호암이 붓글씨를 배워 수련한 뒤 오랜 지음(知音)이었던
김재순 전 국회의장에게 선물한 1호 작품이라고 하지요
여기엔 사연이 있어요
김 의장이 만든 국내 최장수 교양 잡지 ‘샘터’는
올해 1월호를 끝으로 창간 56년 만에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지요
디지털의 거센 파도에 휩쓸린 종이 잡지의 가혹한 현실이랄까요?
아들인 김성구 발행인은 “오직 샘터를 살려야겠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모든 것을 내놓는다”고 했어요
얼핏 가식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돈과 권력의 정점에 섰던 ‘회장님’이
“인생은 어차피 빈손”이라 말하는 것은.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아무것도 쥐어보지 못한 사람은 손을 펼쳐도 잃을 게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을 가져본 사람이 떠날 때 더 미련이 남지 않을까요?
호암은 ‘공수래공수거’ 글씨를 여러 점 남겼는데,
아들인 이건희 선대 회장도 그룹 영빈관이자 집무실이었던
승지원에 선친 글씨를 걸어두고 가슴에 새겼다고 하지요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호령하며 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32세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으며 기이한 유언을 남겼어요
관 양쪽에 구멍을 뚫고 자신의 두 손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지요
천하를 통일한 영웅도 떠날 때는 빈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명상록’을 쓴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 역시
“알렉산더 대왕이든 일개 마부든 죽어서 돌아가는 곳은
결국 똑같다”며 권력의 무상을 토로했지요
우리 모두는 늙고 죽어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부자와 영웅의 ‘공수래공수거’는
평범한 우리를 위로하는지도 모르지요
세상 모든 것을 가졌던 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일종의 마지막 고백이기 때문이지요
생전에 쥐었던 게 무엇이든 간에,
저승길에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호암은 손 수(手) 한 글자만 1년을 고쳐 썼다고 하지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손 안에 움켜쥐고 있는 것일까요?
가져가지도 못할것에 목숨걸고 있으니
인간만치 우메한 동물도 없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一松) *-
▲ 똥장군. 옛날에는 분(糞)을 논밭에 뿌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