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영화 "분홍신" The Red Shoes" - 1948년-
발레라는 춤을 처음 보았을 때~
나이 따라 춤 따라 아는 듯 모르는 듯 세월이 흐르다 보니 해괴한 몸짓이 그럴사하게 보이고 민망스런 몸매조차도 당연한 아름다움으로 보여지는 세상을 살게 되는가 보다.
색동 치마 저고리 차려 입고 꽃바구니 옆에 끼고 빠른 장단에 도라지 타령 신이나게 무대를 휘어 감으면 덩달아 어깨 춤이 덩실대는 악극단 바라에디 쇼~의 어깨춤이 춤인줄 알았다. 동네 어르신네 회갑잔치에 남녀노소 가림없이 양팔 걷어 올리며 너울너울 발꿈치 장단 맞으면 잘 추는 춤으로 대접 받던 해방된 이쪽 저쪽의 시절이었다.
6 25 전후에 흘러 든 사교댄스는 춤이라기보다는 남녀간의 은밀한 애정의 수단으로 잘 못 배운 문화의 왜곡으로 제껴지던 그 무렵~ 발레라는 춤 소식을 알게 되었다.
기껏해야 삐걱대는 오르강 소리에 맞추어 추는 춤을 춤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설펐고 가을 운동회 때 포풀러 낙엽지는 운동장에서 손깃대 휘두르며 수 백명 여학생들이 행진곡에 맞추어 움직이는 마쓰게임이 무용이라는 파퍼먼스로 알던 그때가 너무 촌스런 수준인 줄 모르지만~
차이콮스키의 백조의 호수 어쩌구 할 때는 아예 춤이나 무용이라고 말하는 레벨을 훨씬 넘은 전문가라 할 지경인 어두깜깜한 암흑시대(?)인 휴전을 목전에 둔 20대 후반에 난생 처음 경험한 테크니칼라 총천연색 영화를 단체 관람했다.
발레를 배경으로 한 황홀 극한 영화였다.
영국영화 "분홍신"이었다. 발레리나가 신던 분홍신이었다.
아무나 꿈꿀 수도 없는 영국 왕립 발레단이나 귀족만의 발레학교를 테마로 엮어진 발레에 관련한 불루조아의 이야기들을 화려지극한 총천연색 영화로 볼 수 있었든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감지덕지한 시절을 살아 온 것만 해도 고마울 뿐이었다.
코로나19의 질곡에 묶이면서 몸살나게 돌린 것은 소파에 굴러 다니는 리모컨이었던가?
무심코 멈춘 프로가 교육방송의 오후 1시의 흘러 간 명화였다. 영화 제명도 소원하고 Prolog에 걸친 내용조차도 시쿵둥한 발레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 무심코 지나쳤다.
"빌리 엘리엇 (Billy Eliot)"
영국의 유명한 발레리노 필립 모슬리의 전기를 영화화 한 것이라 한다.
무릇 영웅들이나 거장들이 난관을 헤쳐나가 당대의 영웅이 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지 따져 보기 전에 그런 과정에서 나같으면 어찌했을까 하는 뒤늦은 회한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좋은 학교에 진학 시켜 좋은 대학을 졸업시켜
자리 높은 직장에 들어가 권세를 검어쥐어 흔들거나
자리 편한 직장에 몸 담고 좋은 대학 다닌 기득권에 호강하고
매사 만사형통을 기약하는 삶을 바라는 것이
봉건세습과 상반대물림에 이골이나고 사대사상에 길든 노예근성에 스스로의 재능을 멀리 했던 내 지난 나날이 오금 저리듯 후회스런 지금이 아쉬워 견딜 수 없다.
내 큰 아이가 소리꾼 소질을 타고 나 국악을 한다 할 때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 영국 광산 현장 노조간부처럼 배신자라는 비난 을 마다 않고 11살 빌리를 데리고 왕립 발레학교에 앞장 설수 있었을까?
둘째 아이의 소질을 감싸지 못하면서 이공계대학에 진학시켜 앞날을 엊나가게 한 봉건적 아비로써 때 늦게 통탄한 오류를 어쩌지 못하는 지금이 천길 단애를 구르는 심정인걸 누구에게 하소연 하리
영화 "발리 엘리엇"의 빌리가 영국 왕립 발레단의 대표로써 이 영화의 마지막 공연장면을 연출한 발레리노 애덤 쿠퍼(Adam Cooper)의 환상적인 "백조의 비상"과 70여년 전 총천연색 영화 "분황신 The Red Shoes"의 명장면을 올려 본다.
발레리노 Adam Cooper가 영화에 직접 출연한 백조의 호수
- 글 / 日 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