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9월 25일)
<시편 10편>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여호와께서는 영원 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10:1-18)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6:9-11)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출22:22-23)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68:5)
『시편 9편과 10편은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인 동시에 의로운 재판장이시라는 동일한 주제로 다윗인 쓴 시입니다. 그러나 9편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판단을 하심으로써 자신을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감사시인 데 반해서, 10편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즉각 실행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공의로운 심판을 호소하는 탄원시입니다.
시인인 다윗은 자신의 환난과 곤궁한 처지를 돌아보지 않으시는 것 같은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어찌하여’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마치 불만을 토로하는 듯한 어조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만이 아니라 악인들이 기고만장하여 날뛰고 반면에 의인들은 고난을 당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깊은 고뇌와 탄식을 토로한 것입니다(합1:2-3 참고).
시인은 악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들은 인간적인 힘과 궈력을 자랑하는 자들로서 자신들이 의인들을 핍박하며 거짓과 궤휼과 강포로 악한 일을 도모해도 즉각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지 않음을 보면서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보지도 않으신다고 교만히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악인들은 설혹 그들이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상 속에는 하나님이 없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자들인 것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악인들의 실상을 고발한 후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외로운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여기서 외로운 자와 가난한 자들이란 시인 자신을 비롯하여 악인들에게 핍박을 당하는 의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는 의인들이 때때로 외로운 처지에 처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외로운 의인들을 고아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 없는 고아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악인의 팔을 꺾으시며 악인들을 세상에서 다 멸해 주실 것은 간구하는데, 이런 악인들에 대한 저주의 요청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복수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온전히 실현되기를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계6: ). 그리고 ‘어찌하여’하며 부르짖는 탄식으로 시작한 이 시는 결론에서는 여호와께서는 겸손한 의인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신 후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고백하는 확신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간구는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드려야 할 탄식과 간구로서, 때로는 그런 기도의 응답으로 현재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됨으로써 악인들이 엄중한 심판을 받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완벽하게 실현이 될 것이기에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할 영원한 메시아 왕국에 대한 예언적 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악인들이 득세하고 그들이 하는 일마다 형통한 불의한 현실 속에서 의로운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을 간구하되, 주님이 오시는 날 그 완전한 심판이 성취될 것을 바라보면서 낙심치 않고 인내로써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을 멸하시고 고아와 외로운 의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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