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1811년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정약용(丁若鏞=1762-1836)저서(著書)
권7 졸본고(卒本考)에 보면.“졸본은 4개의 부여(夫餘) 가운데 하나로
<1>북부여(北夫餘),
<2>동부여(東夫餘),
<3>졸본부여(卒本夫餘),
<4>사비부여(泗沘夫餘), 중에
졸본부여 가 고구려(高句麗) 건국(建國)의 첫 터전이다. {변역본 P194}
졸본의 옛 땅은 지금의 흥경(興京) 지경(地境) 안에 있다.
1814년 에 쓴 <대동수경(大東水經)>
제4 패수(浿水)3, 강선수(降仙水=속칭 沸流水비류수) {변역본 P347, 348} 에 보면,
이중환(李重煥)이 말하기를 “성천부(成川府)는 강(江)가에 있다. 선조왕(宣祖王) 임진(壬辰=1592년)에 광해군(光海君)이 사당(祠堂) 신주(神主)을 모시고 성천부(成川府)로 피난했는데 즉위(卽位)함에 미쳐 박엽(朴燁) 부사(府使)를 시켜 강선루(降仙樓)를 대보수(大補修)하여 300 여 간(間=칸,--1칸이 房이 3칸이고 마루가 1칸이다=6尺을 기본으로 한 건물)으로 굉장(宏莊)하게 지었다. 그앞에 흘골산(紇骨山)이 12봉(峰)이 있다, 내가 승람(勝覽)을 상고(上考)해 보건대, 성천부(成川府)를 송양(松讓)의 옛 도읍(都邑)이라 하였고,강선수(降仙水)는 비류강(沸流江) 또는 촐본천(卒本川)이라고 하였으며, 무산(巫山)은 흘골산(紇骨山)이라고 하였으나,-----” 선생(정약용)이 말하기를 “졸본의 옛 땅은 지금 개원현(開原縣) 동남쪽인데 2강(江)을 건너는곳에 있다 <開原은 옛 夫餘땅이다> 지금 상고(上考)하면 개원현 남쪽 10 여리에 있는 청하(淸河)는 곧 점니하(占泥河)의 하류(下流)이다. 주몽이 처음 도망할 때 추격하는 군대(軍隊)가 뒤에 있었다 하였으니 고기와 자라 들이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물은 지금의 청하(淸河=淸水河)이다. 또 이른바 보술수(普述水)라는 것은, 청하를 건넜다는 것으로 보아 동남으로 근 200리를 가서 첨정산(尖頂山) 북쪽에 이르면 강 하나가 가로 놓였는데 지금 혼하(渾河)의 상류로서 록하(綠河)로 들어오는 하류이다,그러므로 비류수(沸流水)라는 것은 지금 흥경(興京==漢 원토군{元菟郡}. 唐 연주{燕州}. 渤海 대씨{大氏}. 遼 金 심주{瀋州}. 明 건주위{建州衛}. ”지명대사전 P1235 참조“ ) 북쪽 다섯(5) 물이 합류하여 흥경(興京)을 감돌아 서남으로 흐르며 또 북으로 흘려 소자하(蘇子河==漢志, 고구려현 남소수{南蘇水}.”지명대사전 P1370참조“)를 이루어 서쪽으로 흘러 혼하(渾河)로 들어가는 것이 이것이다” 라고 하엿다.
<아방강역고> 권6 ‘발해고(渤海考)’에 [변역판 P176참조] “흥경(興京)은 본래 당(唐)나라의 연주(燕州)이다. 뒤에 발해(渤海)에 점령되었다가 정리부(定理府)에 고쳐 딸렷고, 요(遼=AD,907-1123년)나라와 금(金=AD,1115-1234년)나라에서는 심주(瀋州)에 딸렸으며 명(明=1368-1662년)때는 건주위(建州衛) 지역이다.”
<대동수경(大同水經)> 패수(浿水)편에서 {변역본 P349}. 고구려(高句麗)가 (1)부여(扶餘=지금의 開原)에서 일어나 남쪽으로 나와. (2)졸본(卒本=흥경{興京} 연주{燕州} 地境)에 도읍(都邑)하고 또 남쪽으로, (3)국내(國內=초산부{楚山府}와 강을 사이에 둔 땅), (4)환도(丸都=만포보{滿浦堡 강을 사이에 둔 땅)에 도읍(都邑)하고 또 남하하여, (5)평양(平壤)에 도읍(都邑)하였다. 상고(上考)하건데 졸본은 또 흘승골(紇升骨)이라 하고 비류수(沸流水)는 또 졸본천이라 하엿다. 송양(松襄)의 나라가 졸본천과 가까이 있어 졸본이 서로 접한 곳에 있었으니 졸본의 땅은 분명 지금의 흥경(興京=연주燕州)경계에 있다. 그러면 비류수 역시 흥경(興京)과 서로 연달아 있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