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8시 SBS 뉴스토리에 ‘홍도장, 도쿄에 우뚝서다’ 라
는 제목으로 방영됐다.
16세에,
연구생을 나온 홍맑은샘 프로(현재, 일본프로)는 아마추어
전국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우승 18회, 준우승 9회
등의 업적을 쌓으면서 아마 바둑계 부동의 1위를 차지
한다.
필자가,
맑은샘 군과 아버지 홍시범(바둑행사업체 대표) 씨를 처음
만난 것도 2000년 그 시기, 부산 롯데배 전국대회 현장
에서였으니까.
결국,
아마 바둑계를 평정한 홍맑은샘 군은 2004년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한다.
“저는 일본 올 때 여기에서 죽으려고 왔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오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가,
뉴스토리 기자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하긴,
내 나라도 아닌 타국에서 저런 비장함이 아니라면 버텨
내지도 못했을 터.
비장한 각오로,
일본으로 건너간 홍맑은샘 사범은 관서기원 프로기사로
입단하면서 자기 이름을 딴 홍도장(洪道場)을 도쿄에 연다.
한국식,
바둑도장 시스템을 접목하여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
면서 일본기원 프로 입단자에 홍도장 출신의 이름을 올
리기 시작했다.
일본,
남자 프로 랭킹 1위 기성 이치리키 료 9단과 여자 프로
랭킹 1위 후지사와 리나 6단(여류명인, 여류본인방)이 홍도장
출신이다.
홍도장 출신이,
19년 동안 일본기원 프로기사에 입단 시킨 수가 29명
이라는 것은, 홍사범이 일본 바둑계에 끼친 영향은 지
대하다 하겠다.
그건,
홍맑은샘 사범의 성실함에 더해 신뢰를 바탕으로 하
고 있다는 소리다.
믿음이 없는,
사범에게 자식을 맡길 부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8살 때 처음 봤었거든요.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그때도 유명 했어요”
장수영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병규9단의 어린
날 회고다.
홍맑은샘 프로와 박병규 프로는 연구생도 같이 지내고
나이도 같은 또래니 너무나 잘 알 터이다.
필자도,
홍맑은샘 프로가 초등학교 때 부산 이붕배에서 우승한
직후, 당시 고 전영선 사범님과 양덕주 사범님이 지도
하고 있던 영등포 영기원에서 호선으로 2번 두어 1승1
패한 적이 있으니까.
바둑과 사람,
A7 바둑행사 디자이너 홍시범 대표가, 아들이 태어나
기도 전부터 바둑을 가르치려고 했다는 아버지다.
어쩌면,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아버지의 열정이 오늘날의 홍맑은
샘 사범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홍사범이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뭐가,
어찌됐건 원초적인 힘은 그이 아버지였으니까.
홍시범 대표가,
운영하는 응암동 지하 회관에는 매년 아들 이름을 건 ‘맑
은샘배 어린이 최강전’이 열린다.
벌써, 9회째다.
바둑계에,
이름 넉자를 내놓았으면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가슴에
있다할 지라도, 한두 번도 아니고 9번이나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홍맑은샘 프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둑과 사람, 회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그의 이름이 빛나길.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홍맑은샘 도장에서(앞줄 3번째가 필자고, 맨뒤 홍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