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는 합리적인 시민사회의 기본 범주의 하나이다. 합리적인 시민 사회의 법은 공공적인 정치경제 질서를 규정하고 지배적인 도덕감정을 규정한다. 나아가서 그 법은 그 국가와 사회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와 이상을 실천하는 하부구조를 형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법치’가 시민사회의 기본 범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그 시민사회 구성원의 풍습과 도덕, 지리, 기후와 풍토의 조건, 구성원들의 인생관과 역사관, 미래의식과 이상 등의 문화전반을 반영하는 법철학의 토대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법은 이러한 법철학의 기초위에서 만들어지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식민통치를 위한 법, 해방이후 미군정 당국이 만든 법이 토대가 되어 현대적으로 가공한 것이 현재 우리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법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 총독부’나 ‘미군정’이 우리나라에 적용한 법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에 맞게 한국의 모든 자연과 자원, 한국인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공급자 중심의 법 가운데서도 최악의 경우에 해당한다. 여기서 공급자란 국가 또는 정부를 말한다. 이 경우에는 권력자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그 보다 나은 것은 권력자가 그 국가의 이상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경제 체제를 구성하는 경우다. 민족주의 정부들의 법체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공급자를 중심으로 하는 세 가지 단계를 보여준다.
이들 세 가지의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이러한 법은 개인의 생존권이나 인권, 자기 정체성의 실현 같은 문제는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개인의 정체성을 위한 가치 실현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자나 공무원들의 관리에 편리한 장치를 만든다. 그리고 법의 해석도 관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집중된다. 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시대까지는 공급자 중심의 법이 대세를 이루었다.
우리 사회는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 즉 문화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문화자본주의 사회란 의식주(衣食住)의 물질적 욕구와 함께 진선미(眞善美)의 정신적 욕구를 동시에 실현하려는 사회를 말한다. 모든 상품과 사물, 정치경제의 모든 행위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완전히 공개된 상태에서 소비하고 생산하는 것은 진(眞)의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인 생산과 소비, 감성적인 생산과 소비가 진선미의 정신적 욕구를 실현하는 현실적 행위이다.
‘의식주’의 생산과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정부나 대기업 등의 공급자 위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진선미’의 정신적 욕구를 실현하려면 개인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체제가 뒤바뀌어 진다. 개인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수요자, 소비자 중심의 사회가 된다는 말이다. 이를 반영하려면 소비자 중심의 법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은 아직도 공급자 중심 삼 단계 중에서도 최악 단계의 법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역동적이고 비약적인 사회발전을 시도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쉽게 말하여 우리나라 법은 규제 중심의 법인 것이다.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로 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 까지 역대 정부가 규제철폐를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공급자를 위한 규제 철폐이지, 수요자, 소비자인 국민 개개인의 활동을 도와주는 철폐는 아니었다. 소비자에게는 오히려 규제가 강화된 셈이었다. 생산과 소비 주권자인 개인들의 욕구는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법은 아직도 공급자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법의 본래 취지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지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설사 금지를 하더라도 더 많은 국민의 보호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나라의 역동성을 살리고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비약을 이루려면 근본적인 법철학의 투쟁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법이 ‘장애물’이 아니라 ‘은혜’가 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김도종 원광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