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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 서기]주령구 | ||||||||||||
박종희 수필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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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40여 년이 훌쩍 넘어 다시 찾은 포석정은 전복껍데기 모양의 이미지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차를 돌려 안압지로 오니 입구 연못에 핀 연꽃이 한창이라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 가족도 연꽃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안압지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신기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모여 맛있게 빵을 먹고 있는데 바로 주령구 빵이었다. 대체로 빵은 둥근 모양인데 주령구 빵은 주사위처럼 각이 져 참, 독특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안압지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바로 입구에서 먹었던 빵의 모습인 ‘주령구’였다. 이제껏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주령구는 통일신라 시대 귀족들의 놀이기구로 참나무로 만들어진 14면체의 목각 주사위였다. 주령구는 1975년에 안압지 연못 바닥의 갯벌 속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나는 왜 한 번도 주령구를 못 봤던 것일까? 이리저리 주령구의 모습을 살펴보니 어릴 때 친정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던 주사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령구의 육각면에 적혀있는 벌칙을 읽는 사이 추억은 나를 40여 년 전의 친정집으로 데려다 놓았다. 꽃을 좋아하는 부모님 때문에 꽃집이라 불리던 친정집은 삼남 삼녀 육남매였다. 어렸을 때 기억 속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누워있던 모습이 더 많이 떠오른다. 친정어머니는 손이 귀했던 집에 시집와 아이를 많이 낳으면서 병치레를 많이 하셨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육 남매한테 집안일을 한 가지씩 분담하게 했다. 어머니는 육 남매한테 집안일을 시킬 때마다 종이쪽지와 정사각형의 하얀색 주사위를 주셨다.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와 종이쪽지의 숫자가 같으면 그 종이에 적혀있는 집안일을 맡게 되는 것이었다. 딸 셋 아들 셋이었던 친정에는 위로 오빠가 둘이고 아래로 남동생 한 명과 여동생 두 명이 있었다. 그때 오빠들은 사춘기였는지 남자가 집안일 하는 것을 무척 창피하다고 여겼다. 그 날도 육 남매는 엄마가 적어준 종이쪽지와 주사위를 가지고 마루에 모였다. 오빠들은 남자가 왜 집안일을 해야 하느냐고 입이 나왔지만, 어머니는 아들이나 딸이나 똑같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제일 먼저 큰오빠가 주사위를 던졌다. 오빠가 던진 주사위는 까만 점이 두 개 찍힌 면이 나왔다. 그러면 2번의 종이쪽지에 적힌 집안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큰오빠는 엄마가 건네주는 2번이 적힌 종이쪽지를 받았다. 순간 다섯 명의 동생들의 눈이 모두 큰오빠한테로 쏠렸다.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싶어 궁금해하는데 갑자기 큰오빠가 큰소리로 웃었다. 입이 귀에 가 걸리며 기분 좋아하던 큰오빠의 쪽지에는 ‘동생들 잘 돌보기와 마당 쓸기’였다. 다음은 작은 오빠 차례였다. 키가 작고 피부가 하얗던 작은 오빠는 친척들 사이에서도 가장 순둥이로 통하는 심성 좋은 아들이었다. 작은 오빠는 얼굴만 봐도 인심이 뚝뚝 떨어져 보이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작은 오빠가 던진 주사위는 점이 5개 찍힌 5번이었다. 엄마한테 5번의 숫자가 적힌 종이쪽지를 받아 들은 작은 오빠는 얼굴이 벌게지더니 씩씩거렸다. 작은 오빠가 할 일은 바로 요강을 비우고 닦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 방이 3개였는데 요강이 4개나 되었다. 작은 오빠의 심통에 어머니와 육 남매는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뒤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마치 엄마가 마술을 부린 것처럼 나는 설거지, 바로 밑에 동생은 연탄재 버리기, 연탄 불구멍 닫기 등 모두가 적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걸렸다. 그중 가장 어려운 일을 맡았던 작은 오빠는 요강 청소를 맡은 지 한 달 만에 사기요강 한 개를 던져 깨뜨려버렸다. 오빠가 요강을 깨버리는 것을 본 사람은 나뿐이었고 오빠와 나는 그날 아침의 일을 비밀에 부쳤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침마다 철철 넘쳐흐르는 요강을 비우고 씻던 작은 오빠의 순진한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시킬 때 주사위를 던지게 했지만, 만화책을 빌려다 주거나 찐빵을 사주는 기분 좋은 일에도 주사위를 던지게 했다. 장난감이 없던 시절 주사위는 육 남매가 놀 때도 심심찮게 놀이도구가 되어주곤 했다. 가끔 딸애한테 무리한 일을 부탁할 때면 친정어머니의 지혜로웠던 육아법이 생각나 어머니가 존경스러웠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주사위를 던져 나온 결과에 대해서는 떼를 쓰거나 거부할 수가 없었던 것도 육 남매나 되는 자식을 소리 안 나게 키울 수 있었던 어머니의 현명함 때문이었으리라. 다시 주령구에 적힌 글귀를 들여다본다. 금방이라도 연못에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신라 시대의 귀족들이 주령구를 던지고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육각형과 정사각형의 주령구에 적힌 음주문화의 벌칙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주령구에 나오는 벌칙을 보면 신라 시대 귀족들이 그리 과하지 않게 함께 즐기며 놀던 멋과 풍류가 느껴진다. 벌칙 중 “곡비즉진 (曲臂則盡) -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는 요즘의 ‘러브샷’과 같고 “삼잔 일거 (三盞一去) - 술 석 잔을 한 번에 마시기”는 ‘원샷’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양잔즉방 (兩盞則放) - 두 잔이 있으면 즉시 비우기’와 ‘추물막방 (醜物莫放) - 더러운 것 버리지 않기’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어떻게 그런 벌칙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1200~1300년 전에는 장인들이 사용하는 공구도 열악했을 텐데 정육면체가 아닌 육팔면체에 확률이 비슷한 주사위를 생각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안압지를 거닐며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정교한 주사위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기계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어쩌면 우리는 옛날 선인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안압지에서 주령구를 만나는 동안 1년 전 안타깝게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딸 부잣집의 맏이로 태어난 어머니는 주위에서 인정할 만큼 매사에 지혜롭고 현명하게 자식들을 키우셨다. 어릴 때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주사위 놀이는 성취감, 문제의 해결력, 소통, 집중력, 자존감까지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만약 어머니가 주사위 놀이를 시키지 않고 무조건 집안일을 하게 했다면 자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힘든 일은 서로 하지 않으려고 싸우거나 떼를 썼을 것이다. 안압지에서 만났던 주령구를 떠올리면서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생각해본다. 우스갯말로 요즘 아기들은 ‘엄마’라는 말보다 ‘태블릿’이라는 말을 먼저 한다고 한다. 바로 인터넷의 발달로 스마트폰에 중독되어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기저귀를 차고 가장 처음 하는 말이 ‘태블릿’이라는 웃지 못 할 유행어가 떠돌까?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훗날 딸애가 결혼하여 손자가 생기면 나도 친정어머니가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주령구 놀이를 가르쳐주며 우리 조상들의 지혜롭고 소박했던 삶을 이야기해줘야겠다. |
첫댓글 박종희 선생님! 얼굴이 벌개져 씩씩대던 작은 오빠의 요강부시기 대목에서 웃음이 퍽 터졌어요. 새벽 3시 반에 컴퓨터 보고 낄낄 대다가는 정신나간 여자 소리 듣기 십상인지라 입을 틀어 막고 웃었지요 잘 보고 갑니다. ㅎㅎ
김윤희 선생님, 저도 아직 작은오빠를 만날 때면 그날 아침에 일이 생각납니다. 작은오빠는 나이 60 살이 다되었어도 여전히 심덕좋은 소년같답니다. 감사합니다.
박종희 선생님!
전국수필대전 수상작품이군요.
다시 읽으니 더 새롭습니다.
박순철 선생님, 부끄럽네요. 문화체험 수필 쓰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더군요. 감사합니다.
박종희 선생님, 수필은 이렇게 문화유산과 현대 생활문화를 연계하는데 가장적합한 문학 장르이군요. 수필의 문학성 제고에 한몫하는 작품 회원님들 공유하니 참 좋으네요.
이방주 회장님, 회원들 작품 올리시느라 노고가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문화유산을 수필로 쓰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머니의 지혜로 온 가족이 제몫을 잘 할 수 있었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의 지혜로움과 현명함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저는 도저히 못따라가죠. 이제야 답글을 달아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