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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사카사건’ 무죄판결일
준엄한 ‘제자의 투쟁’에서 배운다
‘오사카사건(大阪事件)’의 무죄판결(無罪判決)로부터, 오늘로 62년. 1957년 7월 3일, 사실무근(事實無根)의 선거위반용의(選擧違反容疑)로 체포(逮捕)·구류(拘留)된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 4년이 넘는 법정투쟁(法廷鬪爭) 끝에 1962년 1월 25일, 정의(正義)는 엄연(嚴然)히 증명(證明)됐다. 이케다문하생(池田門下生)이 새롭게 출발한 올해, 이 날의 의의(意義)를 재차 확인하고 싶다.
우선, 자신이 (화살이 날아오는) 정면에 서서, 은사(恩師)를 끝까지 지켜낸, 준엄한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제자(弟子)의 투쟁(鬪爭)’이다.
오사카(大阪)에서의 구류 중, 취조(取調)하는 장소에서 검사는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도다(戶田) 회장을 체포하겠다.”라고 협박적(脅迫的) 언사(言辭)로 강요했다. 몸의 쇠약(衰弱)이 극심했던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을 생각해 이케다 선생님은 일단 죄를 인정하고 재판(裁判)에서 진실(眞實)을 밝히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 애제자(愛弟子)에게 도다 선생님은 “자네는 죄를 한 몸에 짊어지려고 했다. 정말 사람 좋은 남자로구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심(安心)이다, 학회(學會)도.”라고.
변호사는 “유죄(有罪)의 각오(覺悟)를”이라며 소극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이케다 선생님은 은사와 학회에 상처를 입힐까봐, 날카로운 진실의 언론(言論)으로 검찰(檢察)의 주장(主張)을 뒤집었던 것이다.
‘1·25’는 민중(民衆)이 각인(刻印)한 창가(創價)의 인권투쟁(人權鬪爭)의 황금사(黃金史)다.
당시, 검찰이 학회를 향한 적의(敵意)는 “오래된 종교의 상식을 넘은 창가학회(創價學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소설 『인간혁명(人間革命)』 제11권 ‘평화재판(裁判)’ 장(章)에서>에 기인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무사(無私)의 행동에 힘쓰는 학회원(學會員)의 모습은 이해(利害)나 득실(得失)을 가치(價値)의 기준으로 삼는 눈에는 이단(異端)으로 비친다. 역사상(歷史上) 민중을 가볍게 억압(抑壓)하려는 권력(權力)의 오만(傲慢)이 얼마나 비극(悲劇)을 낳았는가. 그러나 불굴(不屈)의 사자(師子)와 거기에 이어진 동지(同志)의 싸움은, 서민(庶民)이 단결(團結)하면 권력의 마성(魔性)도 타파(打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25’는 지금, ‘민중(民衆) 승리(勝利)의 날’이라고 불리며, 스승의 무죄(無罪)를 기원하며, 스승과 함께 끝까지 싸운 ‘상승(常勝[죠쇼])의 어머니’의 지지 않는 혼(魂)이 맥박(脈搏)치는 ‘간사이(關西) 여성부(女性部)의 날’로서 벗을 분기(奮起)시킨다.
오사카(大阪)에서는, 영시라유리세대(Young白百合世代)의 여성부원(女性部員)이 남편에게 홍교(弘敎). 더욱이 “남편을 광포(廣布)의 인재(人材)로”라고 기원하며, 부부가 함께 대화에 힘쓰는 가운데, 1월 2일, 남편의 우인 세 사람이 입회(入會)했다.
회사원이었던 남자부(男子部)의 부장(=지부남자부장)은, “약한 입장의 사람에게 힘이”라고 사법시험(司法試驗)을 목표로 맹공부. 지난해 36세에 합격해 사명(使命)의 길을 걷고 있다.
선생님은 출옥(出獄) 직후의 오사카대회(大阪大會)에서 “신심(信心)을 끝까지 관철(貫徹)한 사람이 반드시 승리(勝利)한다.”라고 선언(宣言)했다. 그 외침은 은사가 서거(逝去) 후, 무죄판결(無罪判決)에 의해서 현실이 되었다. 생사(生死)를 초월한 사제(師弟)의 유대(絆)가 빛나는 이 날에, 우리의 맹세를 깊게 하고 싶다.
〈사설(社說)〉
2024년 1월 25일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항상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