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사爻辭>
六四 往蹇 來連
(육사는 왕하면 건하고 내하면 연이리라)
육사六四는 가면 어렵고 오면 계속 어려우리라.
[왕필王弼의 주注]
가면 응應이 없고 오면 강剛을 타서 가고 옴이 모두 어렵다. 그러므로 “가면 어렵고 오면 계속 어렵다.”라고 한 것이다.
제자리를 얻고 정위正位를 밟고 있어서 근본이 실實한 자리를 당하였으니, 비록 어려움을 만나나 망령됨이 부른 것이 아니다.
[注]
往則無應 來則乘剛 往來皆難 故曰 往蹇來連
(왕즉무응하고 내즉승강하여 왕래개난이라 고로 왈 왕건내련이라하니라)
가면 응應이 없고 오면 강剛을 타서 가고 옴이 모두 어렵다. 그러므로 “가면 어렵고 오면 계속 어렵다.”라고 한 것이다.
得位履正 當其本實 雖遇於難 非妄所招也
(득위이정하여 당기본실하니 수우어난이나 비망소초야라)
제자리를 얻고 정위正位를 밟고 있어서 근본이 실實한 자리를 당하였으니, 비록 어려움을 만나나 망령됨이 부른 것이 아니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마융馬融은 “연連도 어려움이다.”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은 “〈연連은〉 더디고 오래하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육사六四는 가면 응應이 없고, 오면 강剛을 타고 있어서 가고 옴이 모두 어렵다. 그러므로 “가면 어렵고 오면 계속 어려우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
馬云“連亦難也” 鄭云“遲久之意.” 六四往則無應 來則乘剛 往來皆難 故曰“往蹇 來連”也.(注7)
(마운 “연역난야” 정운 “지구지의” 육사왕즉무응 내즉승강 왕래개난 고왈 “왕건 내련”야)
[역주]7 馬云連亦難也……故曰往蹇來連也 : ‘연連’을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은 ‘어려움이 계속 이어짐’의 뜻으로 보아 경문經文을 ‘육사六四가 상괘上卦로 나아가도 어렵고 하괘下卦로 내려와도 어려움’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정이천程伊川과 주자朱子는 ‘연連’을 연합의 뜻으로 보고 ‘내련來連’을 ‘육사六四가 아래 효爻와 연합함’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정전程傳≫은 다음과 같다. “어려운 때에 거하여 함께 어려움과 곤액에 처한 자는 그 뜻이 서로 의논하지 않아도 같고, 또 육사六四가 상위上位에 거하여 아래에 있는 자와 똑같이 정위正位를 얻었으며, 또 구삼九三과 서로 가까우니 서로 친한 자이고, 육이六二와 초육初六은 同類이니 서로 더부는 자이다. 이는 아래와 뜻을 함께하여 무리가 따르고 붙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면 연합連合한다고 말한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가면 더욱 감험坎險의 깊음에 들어가니, 가면 어려운 것이다.
건난蹇難의 때에 거하여 함께 어려움과 곤액에 처한 자는 그 뜻이 상의相議하지 않아도 같고, 또 사四가 상위上位에 거하여 아래에 있는 자와 똑같이 자리의 바름을 얻었으며, 또 삼三과 서로 가까우니 서로 친한 자이고 이二와 초初는 동류同類이니 서로 더부는 자이니, 이는 아래와 뜻을 함께 하여 무리가 따르고 붙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면 연합連合한다고 말한 것이다. 오면 아래에 있는 무리와 서로 연합連合하니, 무리와 연합連合함은 건蹇에 처하는 도리를 얻은 것이다.
【傳】
往則益入於坎險之深 往蹇也
(왕즉익입어감험지심하니 왕건야라)
가면 더욱 감험坎險의 깊음에 들어가니, 가면 어려운 것이다.
居蹇難之時 同處艱厄者 其志不謀而同也 又四居上位而與在下者 同有得位之正 又與三相比 相親者也 二與初同類 相與者也 是與下同志 衆所從附也
(거건난지시하여 동처간액자는 기지불모이동야요 우사거상위이여재하자로 동유득위지정하며 우여삼상비하니 상친자야요 이여초동류니 상여자야니 시여하동지하여 중소종부야라)
건난蹇難의 때에 거하여 함께 어려움과 곤액에 처한 자는 그 뜻이 상의相議하지 않아도 같고, 또 사四가 상위上位에 거하여 아래에 있는 자와 똑같이 자리의 바름을 얻었으며, 또 삼三과 서로 가까우니 서로 친한 자이고 이二와 초初는 동류同類이니 서로 더부는 자이니, 이는 아래와 뜻을 함께 하여 무리가 따르고 붙는 것이다.
故曰來連 來則與在下之衆相連合也 能與衆合 得處蹇之道也
(고왈래연이라 내즉여재하지중상연합야니 능여중합은 득처건지도야라)
그러므로 오면 연합連合한다고 말한 것이다. 오면 아래에 있는 무리와 서로 연합連合하니, 무리와 연합連合함은 건蹇에 처하는 도리를 얻은 것이다.
[주희朱熹의 주역본의周易本義]
구삼九三과 연합連合하여 힘을 합해 구제한다.
【本義】
連於九三 合力以濟
(연어구삼하여 합력이제라)
<상전象傳>
象曰 往蹇來連 當位實也
(상왈 왕건내련은 당위실야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가면 어렵고 오면 계속 어려움’은 당한 자리가 진실한 것이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당위실當位實] 육사六四의 당한 자리가 정위正位를 밟고 있어서 근본이 실實함을 당하였으나 가고 옴에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바로 운수運數가 부른 바요, 간사함과 망령됨의 소치所致가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당한 자리가 진실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
‘當位實’者 明六四當位履正, 當其本實, 而往來遇難者, 乃數之所招, 非邪妄之所致也, 故曰“當位實也.”(注8)
(‘당위실’자 명육사당위이정 당기본실 이왕래우난자 내수지소치 비사망지소치야 고왈 “당위실야”)
[역주]8 當位實者……故曰當位實也 :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의 해석에 따르면 〈상전象傳〉은 ‘오고 감에 모두 어려움은, 육사六四의 자리가 진실하니, 육사六四가 자초한 것이 아니라 운수에 의한 것임’의 뜻이 되는데, 〈상전象傳〉의 글이 과연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은 ‘왕건내련往蹇來連’을 ‘가고 옴에 모두 어려움’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내련來連’을 ‘아래의 효爻들과 연합함’의 의미로 해석한 정이천程伊川은 “육사六四가 건蹇의 때를 당하여 상위上位에 처하였으나 가지 않고 와서 아래와 뜻을 함께하니 진실로 무리를 얻을 수 있고, 또 음陰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그 성실함을 얻음이 되니, 성실함으로써 아래와 더불기 때문에 연합하며, 아래의 육이六二와 구삼九三 또한 각각 성실을 얻었고 초육初六이 陰으로서 아래에 거하였으니, 또한 성실이다. 환난을 함께하는 때를 당하여 서로 사귀기를 성실함으로써 하면 연합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면 연합함은 당한 자리가 성실하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하여, 경문經文을 “가면 어렵고 오면 연합함은 당한 자리가 성실하기 때문이다.”로 해석하였는바, 왕필王弼‧공영달孔穎達의 해석보다 문리文理가 순하다.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사四가 건蹇의 때를 당해서 상위上位에 처하였으나 가지 않고 와서 아래와 뜻을 함께 하니 진실로 무리를 얻을 수 있고, 또 음陰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그 성실함을 얻음이 되니, 성실함으로 아래와 더불기 때문에 연합連合하며,
아래의 이효二爻와 삼효三爻 또한 각각 그 실實[제자리]을 얻었고 초初가 음陰으로서 아래에 거하니, 또한 그 실實이다.
환난患難을 함께 하는 때를 당하여 서로 사귀기를 성실함으로써 하면 합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면 연합連合함은 당한 자리가 성실하기 때문인 것이다. 건난蹇難에 처함에 성실함이 아니면 어떻게 구제하겠는가.
당위當位를 정正이라고 말하지 않고 실實이라고 말한 것은 상上·하下의 사귐은 성실함을 위주로 하니, 쓰임이 각각 마땅한 자리가 있는 것이다.
【傳】
四當蹇之時 居上位 不往而來 與下同志 固足以得衆矣 又以陰居陰 爲得其實 以誠實與下 故能連合
(사당건지시하여 거상위로되 불왕이래하여 여하동지하니 고족이득중의요 우이음거음하여 위득기실하니 이성실여하라 고능연합이요)
사四가 건蹇의 때를 당해서 상위上位에 처하였으나 가지 않고 와서 아래와 뜻을 함께 하니 진실로 무리를 얻을 수 있고, 또 음陰이 음위陰位에 거하여 그 성실함을 얻음이 되니, 성실함으로 아래와 더불기 때문에 연합連合하며,
而下之二三 亦各得其實 初以陰居下 亦其實也
(이하지이삼이 역각득기실이며 초이음거하하니 역기실야라)
아래의 이효二爻와 삼효三爻 또한 각각 그 실實[제자리]을 얻었고 초初가 음陰으로서 아래에 거하니, 또한 그 실實이다.
當同患之時 相交以實 其合可知 故來而連者 當位以實也 處蹇難 非誠實 何以濟
(당동환지시하여 상교이실이면 기합가지라 고래이연자는 당위이실야라 처건난에 비성실이면 하이제리오)
환난患難을 함께 하는 때를 당하여 서로 사귀기를 성실함으로써 하면 합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면 연합連合함은 당한 자리가 성실하기 때문인 것이다. 건난蹇難에 처함에 성실함이 아니면 어떻게 구제하겠는가.
當位 不曰正而曰實 上下之交 主於誠實 用各有其所也
(당위를 불왈정이왈실은 상하지교 주어성실하니 용각유기소야라)
당위當位를 정正이라고 말하지 않고 실實이라고 말한 것은 상上·하下의 사귐은 성실함을 위주로 하니, 쓰임이 각각 마땅한 자리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