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2 - 허영모 vs 문성길 (2)
#라이벌열전#허영모#문성길#권투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밴턴급 국가대표 선발전은 당초 4번의 선발전을 거쳐 선수를 선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허영모, 김성길, 서정수, 변정일이 각각 한 번씩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공교롭게, 허영모, 서정수, 변정일 간 상대전적도 1승 1패였다) 이때 김성길은 부상으로 중도 포기하는데, 허영모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기량이 많이 노출되었다거나, 노쇠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먼저 허영모는 84년 LA 올림픽 이후, 번번이 문성길에 막혀 세계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상황이라 노출될 전력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당시 허영모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여자수영처럼 전성기가 빨리 오는 종목도 있지만 복싱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목은 20대중반을 전성기로 봐도 무방한 종목이었다. 허영모에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은 한 선수를 밀어주기 위함이었다. 변정일 님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협회에서 변정일을 밀어주기 위한 것이 그 이유였다.
변정일 밀어주기의 다른 피해자인 서정수. 당시 서정수는 홍익대 소속이었는데, 그의 국가대표전 탈락과 함께 홍익대 복싱부가 해체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서정수 역시 국제대회를 5회 석권한 이력이 있었다.
최종전에서 결국 변정일이 이기고, 국가대표에 승선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안타까운 부분인데, 변정일이 수준 이하의 선수였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변정일은 프로로 전향해 세계챔프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있으나, 세계챔프로 오를 정도의 인물이라면 상당한 기량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때 세 선수에게 모두 기회가 주어졌다면, 허영모가 될 수도 있었지만 변정일 또는 서정주가 될 수도 있었다. 공정한 경기라면, 졌을 때에도 상대방에게 박수를 치던 인물이 허영모라는 점에서 그런 경우 복싱계를 떠났을 가능성은 낮았다. 물론 허영모가 되었다 해서, 반드시 메달을 땄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 야박한 결정이었다.
변정일의 경우도 어떤 면에서 피해자였다. 이른바 '변정일 밀어주기'사건은 이후에도 계속 따라다녔다.
허영모가 느낀 환멸은 상당했다. 그는 이후 자신이 복싱에서 얻은 모든 상과 메달을 폐기처분한다. 이때 허영모에게 프로행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언급된 금액이 1억이었다. 시간 차가 조금 나기는 하지만 1986년 선동렬이 해태 타이거스에 입단할 때 받은 계약금이 1억이었다. 당시는 떡볶이가 100원(밀가루 떡볶이이기는 했다), 시장에서 먹는 국수가 300원이던 시절이었다. '시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던 여성 공장노동자들이 대략 10만원 정도 하는 월급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과거 개그콘서트 '생활 사투리'에서 '헤헤헤 제 월급 100만원도 넘어요.'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과거 월급 100만원은 지금의 억대 연봉에 해당하는 성공의 상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못해도 수억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아마추어에서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 그였기에, 상품성이 상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도 거절한다.
허영모는 이후 체육교사 시험을 본다(허영모는 한체대 출신으로, 교직이수 과목을 이수한 것으로 보인다). 허영모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비롯해 국제대회 우승 이력이 있기에, 사실 그가 원했다면 시험 없이도 체육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마저 거부했다. 일반전형을 통해 체육교사가 되고, 그 뒤로 복싱계와는 완전히 담을 끊고 살다가 최근 위암으로 사망한다.
허영모의 현역시절 사진. 개인적인 의견인데, 아마, 프로 관계업이 허영모의 테크닉과 문성길의 파워를 가진 선수가 있다면 최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싱선수는 물론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운동만 해서인지 세상물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에 실패를 해서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다행히 문성길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선수생활 은퇴 후 익수제약이라는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문성길의 증언에 따르면 익수제약은 이사직을 준다는 약속과 달리, 그에게 3년 동안 아무런 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고호환에는 호랑이 뼈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식당을 열고, 체육관도 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허영모는 체육교사로 살았으며, 최근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허영모가 프로로 전향했다면 어땠을까?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가 프로에 데뷔를 했다면 상당한 시청율을 기록했을 것이다. 복싱 선수를 기준으로 곱상한 외모를 가진 그는 외모만 보자면 문성길보다 더 상품성이 있었다(괜히 1억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말년의 허영모. 선수 시절 그는 복서치고는 곱상했지만 그래도 눈에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말년의 그에게서는 일종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는 교사가 더 적성에 맞았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허영모의 테크닉을 갖고 있으며, 문성길의 파워를 가진 선수가 있다면 체급에 관계없이 최강의 자리에 오를 것 같다.
p.s: 허영모씨, 늦었지만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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