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장판과 열애 중이다.
동장군과 맞짱 뜨는 무모함을 꾹 누른다.
라디오가 최고의 벗이다.
통통 튀는 목소리로 아침 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고맙다.
사연도 보내고 퀴즈도
맞추어 상품을 챙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을 땐 추억을 파 먹고 산다는
어느 작가의 말을 절감하면서 추억을 바지런히 판다.
추억 부자다.
시간이 능수버들일 때
추억 화수분을 들여다 본다.
라디오를 들으며 라디오와 관련된 추억을
소환 한다.
오래 전 .지금은 라디오 시대. 프로그램이 인기
절정이었다.
디제이계의 대부 이종환.
찰떡처럼 말을 잘 하는
최유라가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다.
코너마다 인기였다.
내가 도전한 코너는
.빛바랜 편지.
가정의 평화를 도모하자는 좋은 뜻이
취지였다.
부부가 열애할 때 주고 받은 편지를 공개 후
인터뷰까지 하는 코너였다.
연애결혼한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사랑 코너다.
뜨겁게 사랑해 보지 못하고 결혼한 사람들이
엄청 부러워 한 코너다.
럭비공처럼 추억 한 줄기가 또 튀어 나온다.
오래 전 참한 이웃사촌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도 순박하고
예쁜 남매도 있고 무엇보다 엄청 자유로워
은근히 부러웠다.
자유가 절실했던 그 당시엔 맘대로 사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울
때다.
그 이웃사촌에게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고
남편도 순한 양이라
부럽다고 했다.
돌아 온 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순한 양이 맹물같아 싫고
연애 한 번 못하고 결혼하여 사는 것이 최고의 후회라고 했다.
오히려 나를 부러워 하고
있다는 말에 놀랐다.
시집살이에다 족쇄까지 차고 살았지만 늘 당당하고 씩씩하고 즐겁게 사는 내 모습도
좋고 열애한 주인공과
산다는 것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세월탑이 쌓일수록 후회 한다는 말을 하곤하여 안타깝다.
한 평생 살면서 뜨겁게
사랑했던 경험은 태산같은 힘을 준다.
힘든 터널 속을 헤쳐 나온 거뜬한 힘도 20세에 남편을 만나 5년 동안 뜨겁게 사랑한 기억 덕분이다.
다시 라디오 이야기로
돌아 간다.
그 당시 이종환.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티브이 인기 드라마 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
그 중에서 뜨겁게 사랑한
부부만이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 코너가 있었다.
.빛바랜 편지.
먼지 모자를 덮어 쓴
수십 년 전의 연애편지를
찾아 원본 그대로 방송국에 보내는 것이다.
난 남편과의 열애편지를 날짜별로 정리하여 책처럼 묶어 두었다.
열애편지 묶음 속에서
제일 열렬한 내용이 담긴
편지 몇 통을 뽑아
방송국으로 보냈다.
편지가 도착하자마자
피디가 전화를 했다.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라 다른 편지를 제치고 빠르게 방송을 하겠다며
인터뷰에 응할 수 있냐고
했다.
나는 말 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당연히 응할 수가 있지만 남편은
불응할 것 같아 혼자 하겠다고 했다.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코너인데 혼자하면 의미가 없으니 남편을
설득하란다.
그 당시 핸드폰이 갓 출시 되었을 때다.
일명 우스개 소리로
.냉장고폰.이라고 불렀다.
남편에게 함께 인터뷰해야 한다고 하니
거절했다.
오디오를 선물로 준다고 하니 마지못해 하겠다고
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방송 사고로 이어질수가 있어
재차 확인했다.
마치 007작전처럼 인터뷰 했다.
서울 방송국과 난 집전화로 인터뷰하고
남편은 다른 곳에서
냉장고폰을 들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먼저 이종환이 빛바랜
나의 사랑 편지를 아주
리얼하게 읽었다.
20세에 썼던 가을 편지
첫 구절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이렇게 멘트는 시작된다.
능청스럽게 편지를 읽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종환
디제이가 감정을 고봉으로 담아 소개했다.
듣고 있던 재치여인.
최유라가 재미있다며
추임새를 넣는다.
편지를 아주 능청스럽고 재미있게 읽은 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빛바랜 추억이 보풀보풀
살아났다.
생각보다 남편도 말을
자연스럽게 잘 했다.
이종환이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느끼한 멘트를
가르쳐주며 따라해 보라고 했다.
신성일이 영화에서 한 멘트처럼 사랑하는 아내에게 해보란다.
남편은 도저히 신성일 흉내는 못내겠다며
밋밋하지만 진정성 있게
나를 향한 사랑을
고백했다.
이종환.최유라는 만족한 듯 덕담 보따리를 날렸다.
"와!
김명숙씨 대단한대요.
그 사랑 영원히 이어 가세요.
오디오 선물 드리겠습니다.
말을 너무 잘하여 편하게 방송했어요.
고마워요."
그 날 받은 예쁜 오디오는
오래도록 내 사랑을
받았다.
방송국에서 방송 후 빛바랜 원본 편지와
녹음 테잎까지 보내 왔다.
그 테잎은 우리집으로 집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에겐 필수적으로
들려 주었다.
다들 부러워했고 칭찬 보따리도 안겼다.
얼마나 들었던지 테잎은 늘어질대로
늘어졌다.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날이었다.
지금도 라디오 사랑은
여전하지만 그 때처럼
낭만적이고 설레는
코너는 사라졌다.
디제이계의 대부.
이종환 선생님도 하늘나라에서 내 수다상을 읽도록 하늘로도 한 상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