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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존경하는 대전정통풍수지리회원 여러분! 立春이 지나고 이제 정월 보름이 지났습니다.
이제 자연은 陰에서 陽으로 전환하여 만물이 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우리 학회에서는 지난 정기총회에서 결정한 내용대로 금년부터 테마답사를 추진하여 조선 8대 명당이라 하는 명소를 기준으로 주변 인근을 답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첫번째로 가까이에 있는 청주한씨 중시조 한란공의 묘소를 기준으로 청주 청원지역을 아래와 같이 답사하고자 하오니 회원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합니다.
--- 아 래 --- 일 시 : 2009년 3월 1일 일요일 08시 30분 집 결 장 소 : 대한지적공사 대전지사 앞 (탄방역 2번출구) 답사예정지 : 하단참조 참 가 비 : 삼만원(\30,000) 준 비 물 : 간편복장. 필기구. 패철
※※※ 차량예약관계로 2월 20일까지 임광묵 운영위원에게 참석여부 연락 바랍니다 연락처 : 042-867-3377. 010-2836-2200 임광묵
대전정통풍수지리연구회 회장 이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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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지(청주. 청원) 1)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 묘
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산 18번지에 있으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 72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주한씨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로 알려져 있다. 청주 한씨는 세보(世譜)의 출발점을 기자조선(箕子朝鮮, B.C 115년)으로 적고 있다. 중국 은(殷)나라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망하자 기자(箕子)는 조선으로 도망 나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기자조선을 건국하였다. 기자조선이 929년 만인 41대 쇠왕(衰王)에 이르러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세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지금의 익산시 금마에 마한(馬韓)을 세웠다. 그러나 마한도 177년 만인 9대에 백제 온조왕에게 망하자 마한의 8대 원왕(元王)의 세 아들 우평(友平), 우성(友誠), 우량(友諒)은 각각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귀의하여 우평은 북원 선우씨(北原 鮮于氏), 우성은 행주 기씨(幸州 奇氏), 우량은 청주 한씨(淸州 韓氏)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청주 한씨가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선우씨, 기씨와는 한 핏줄이라 하여 서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청주 한씨를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란은 우량의 32세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개국공신이다. 그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토란리)에서 태어났다. 그 리고 지금의 청원군 남일면 방정리 속칭 대머리부락에 길지를 택점하여 기거하게 되었다. 마을 앞의 암석을 쪼아 방정(方井)파서 몸소 농사에 힘을 써서 누만석 거거부가 되어 이 일대의 호족(豪族)으로 자리를 잡았다. 마침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러 행군할 때 청주를 통과하게 되었다. 그는 식량을 내어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사기를 충천시킨 다음, 스스로도 종군하여 후삼국을 통일하는 개국원훈 공신<개국공신고려삼중대광태위(開國功臣高麗三重大匡太尉)>이 되었다. 현재 묘소는 본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지만 고려의 묘비와 상석 등이 현존하고, 효종 때의 문인석과 용마석이 보존되어 고려 초기 묘역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던 풍수지리의 특성도 이 묘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손대대로 고관대작을 끊임없이 배출했으니 이 묘의 발복이라 후손들은 믿고 있다.
2) 이항희(李恒熙) 가옥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190번지에 위치하며 중요민속자료 제133호다. 조선 철종 12년(1831)에 지은 한옥으로 가장 큰 특징은 외부공간의 구성과 조경이다. 수령 300∼400년의 회나무와 모과나무·향나무·감나무, 그리고 아담한 중마당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 민가의 정원을 보는 듯한 고졸한 느낌이 들게 한다. 평면은 전형적인 중부방식으로 서쪽에 부엌, 안방, 윗방을 일자로 배치하고 꺾어져서 2칸대청과 건너방을 둔 것이다. 이 집의 풍수지리적 특성도 살펴보기로 한다.
3) 독립운동가 신형호 고가
신형호 고가는 조선 고종 18년(1881)에 지은 한옥이다. 본래는 안채와 사랑채 곡간채 뜰아래채 마부채 등이 있었으나 한말에 이 집에 살던 신정식이 의병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일병이 방화하여 현재는 안채 부엌과 퇴가 달린 건너방을, 오른쪽에 부엌과 퇴가 안방과 옷방이 있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ㄱ자로 되어 있으며 홑처마 합각지붕의 기와집이다. 독립운동가 신형호의 생가이기도 한 이 고가는 현재 신기호 일가가 살고 있다.
4) 고령신씨 신중엄(申仲淹) 묘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430-1번지. 조선 선조때의 문신인 신중엄(1522~1604)은 보한제 신숙주의 5세손으로 예조참판을 역임한 신식(申湜)의 아버지이다.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계모와 동생을 성과 효로써 극진히 받들어 그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벼슬길에 올라 주부, 감찰직에 있을 때는 군민을 교화로 인도하였고, 임진왜란때는 군량미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 자신의 재산으로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국난대처에 노력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첨지중추부사를 제수하였다. 그가 80세가 되니 조정에서는 다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내리고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아들 신용(申涌)은 선조9년 별시 병과에 급제하여 관찰사를 역임했고, 손자 신득유(申得游)는 광해군2년(1610년) 식년시 을과에 급제 예조참판을 역임하는 등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그 후손에서 심경제(한성부좌윤), 신학(의주부윤) 등 문과급제 25명, 당상관 2명을 냈다. 단재 신채호도 그의 후손이다. 주변에 있는 신영(申渶) 묘역도 함께 보면서 혈처(穴處) 공부를 하기로 한다
5) 영조대왕 태실 (충청북도 기념물 제69호)
조선 영조의 태실로서≪충청도읍지≫에 청주 동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조는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의 소생으로 숙종20년(1694)에 태어났다. 이곳의 태실은 숙종21년(1695)에 조성되었고, 영조5년에 왕의 태실 규모와 구조에 맞도록 다시 봉축한 것이다. 태실(胎室)은 태봉(胎峯) 혹은 태장(胎藏)이라고도 하는데 왕자가 태어나면 그 태를 항아리에 담아 명당을 찾아 묻어두었다. 태를 좋은 곳에 묻어주면 좋은 기를 받은 그 태의 주인이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태봉은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왕릉이 도성에서 100리 안에 있어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도성에서 거리가 먼 지방 백성들은 왕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쉽다. 태실을 설치하면 왕실이 가깝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고, 그 지방에 감세나 감역의 혜택을 주어 충성심을 유발시켰다. 일제가 전국 각지의 태실을 모두 철거시켜 고양시 서삼릉에 마구잡이로 모아 놓은 것은 조선 왕실과 백성들간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근처 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에 태실을 설치하면 그 일대 10리 안에는 집이나 묘를 쓸 수가 없었다. 혹 왕조에 반역할 인물이 나올만한 자리를 못쓰도록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영조태실은 조선 말기까지 8명의 수호군을 두어 관리하였으나 1928년에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구실로 태항아리만 꺼내어 서삼릉으로 옮기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뒷날 태실 자리에 민묘가 들어섰고 태실비는 동민들이 마을로 옮겨 세웠는데, 1982년에 청원군에서 갓처마돌이 없는 상태로 태실을 복원하였으며 청원군에서 소장하고 있는 <태실가봉의궤>(필사본)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70호로 별도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6) 상당산성(청원군 낭성면 산성리)
상당산성은 충북 청주시와 청원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상당산(492m)에 위치한 산성이다. 상당산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산성의 축성 연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삼국사기 열전에 보면 구근이라는 사람이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원정을 따라가 서원경(西原京)의 술성(述城)을 쌓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성이 상당산성이 아닐까 하는 추측과 '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모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산성은 산의 8부 능선에 4.2km에 걸쳐서 마치 시루삔을 두른 듯한 형태로 존재한다. 오목한 분지를 품에 안고 산허리를 따라 쌓아나간 포곡식(包谷式)산성이다.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외벽을 쌓고 내벽은 자갈과 흙으로 채워 넣고 다짐으로써 성벽 내부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우리나라 산성이 가진 전형적인 특징이다. 상단산성은 동북으로 안경산과 구녀산과 맥을 연결하고 남으로는 선도산과 선두산, 백족산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서쪽으로는 우암산을 살짝 들어올려놓았다. 청주와 청원군의 북부지역 구릉지대와 미호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상당산의 능선에는 전적지로서 유서가 깊은 상당산성(사적 제212호)이 있으며, 산성 안쪽에는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성안에는 운주현, 관아사, 군기고, 군량고, 동창, 서창 등의 방어시설이 구축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한옥마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나마 민속음식을 파는 상점들로 변하여 옛날 격전지로서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둘레가 무려 4.2km, 면적이 5만4천평에 달하는 상당산성은 원래 축조당시인 백제 때는 토성이었으나, 그 후 수차례 개·보수하여 숙종 42년에 석성으로 재축조하였다. 여느 학국산성과 마찬가지로 내탁공법으로 축성되어, 동서로 2군데 장대와, 동서남의 3문루, 수문 1, 암문 2, 연못 4, 우물 12, 사찰2, 암자 1개소가 있었는데, 상당수가 파손되어, 현재 복구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 곳에 조성된 한옥 토속음식점은 청주시민들이 즐겨찾는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다. 상단산성을 오르는 서쪽 기슭에는 탑운암과 법흥사가 자리하고있다. 우암산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울창하고 계절마다 새로운 풍광을 보여주는 청주의 진산이다. 우암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깊은 탓에 용암사, 목암사, 보현사, 관음사, 광덕사, 문수사, 용화사, 대한불교수도원 등 사찰이 여럿 들어서 있고, 그와 함께 통일신라 말 작품으로 보이는 용암사의 석조비로자나불상, 목암사의 나한입상 등 유적들이 산기슭 곳곳에 산재해 있는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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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답사순서를 알려주실수 없나요? 만약에 가게 대면 대전으로 갈지 청주로 갈지 결정 하게요.
청주에서 만나면 좋겠습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임광묵010-2836-2200
한란 묘를 답사하려면 바로 옆동네 우암 송시열 선생 조부묘도 둘러보시지요. 횡룡입수르루보실수 있지요.
감사합니다. 답사시에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임광묵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신청합니다. 지금으로는
소암 정부연 고문님께서 흔쾌히 함께 하기로 하셨습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답사지의 자료는 사단법인정통풍수지리학회 제115차 답사기를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소암선생께 충주 주덕에서 뵈엇던 학인이 안부올린다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신중엄묘 가시는 길에 운보의집에 들르시면 운보화백묘소(비혈지), 그리고 혈을 파괴당한 그분의 부친묘를 보시면 학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지역에서 오시는 손님들은 10시에 충주한씨 시조묘에서 뵙겠습니다
테마답사에 함께하면서 자연을 설명하고 산을 보는 감각을 깨우쳐 주신 소암 정부연 고문님께 다시한번 마음속 깊이 감사드리며 이번 답사에 참여하신 이두영회장님, 이백수님,김기학님, 박노용님, 허환님, 조연봉님, 전나영님, 최인자님, 조연숙님, 그리고 답사준비를 위해 계란도 삶고 시장도 보면서 신경 쓴 인금희 총무님! 12인승 차량을 렌탈해서 하루종일 운전한 남정복 운영위원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특히 멀리 경기도에서 함께 참여한 김종대 아주대풍수학회 회장님을 비롯한 4명의 학인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향희 가옥 답사에서 친절희 안내하신 이돈희 후손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두사충 선생께서 소점하신 이향의 선조 이인성(李寅?)묘의 특이한 장법에 대한 공부도 인상 깊었구요! 과필헌 고가에서 고령신씨 신숙주 계보에 대한 내력을 보면서 혈지의 소점과 후손의 발복에 대한 연관성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신형호 고가는 집이 잠겨있는 관계로 생략했구요! 영조대왕 태실 대신에 과필헌 고가와 남일면 하은리와 남이면 분동리에 위치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증조부묘외 선대묘를 답사 했습니다. 이번 1차 테마답사를 아무 사고없이 성공리에 마칠수 있음에 감사를 드리구요! 다음테마 답사를 기대하며 신탄진의 허름한 순대집에서 특이한 순대와 함께 막걸리 한잔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답사사진은 정리되는 대로 답사사진1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