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순인데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히 내려앉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처럼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음침하고 스산하기까지 하다 어디선가 머리가 헝클어진 히스클리프가 뛰쳐 나올것만 같고 그리고 캐시가 울면서 뒤따라 달려나올것만 같은 날씨다 혹시 여기가 유럽 아니 영국 어디쯤이 아닐까 착각하고 있는 이곳은 부여다
며칠전 돌아가신 어머님을 용인에 모시고 나니 이곳 부여 선산에 계신 아버님을 어머님 곁으로 모시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우리는 곧바로 부여로 내려왔다 챙겨야 할 서류들이 많고 동사무소로 면사무소로 군청으로 들려야 할 곳도 많아 하루에 모든 일을 처리하기는 어려웠으므로 이틀을 잡아 부여로 내려온 것이다 집에서 쉬고 싶었던 나는 남편 혼자 다녀오기를 은근히 바랬으나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그는 날 부축였다 그리고 혼자는 외롭다나? 남편을 외롭지 않게 해 줄 여자가 되고 싶은 나는 아내가 아니라 여자로 일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착각을 하기로 하고 따라나섰는데
부여는 공주와 함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좋은 의미에서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백제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주는 곳이다 부여에는 왕궁지와 수많은 불교유적들, 왕릉유적, 그리고 부소산과 궁남지 등 발전했던 백제문화가 밀집되어 있다 서울에서 내려와서 초천면 사무소에 들러 아버님 산소 개장허가를 받고 부여로 오니 벌써 오후 5시다 어머님 장례로 피곤이 쌓인데다가 뿌연 안개와 비로 축축한 부여를 구경하는 일은 구미가 당기지 않았으므로 일단 뒤로 미루고 무조건 잠을 청하였다 오후 6시가 다 되서야 저녁도 먹을겸 부여시내를 기웃거리는데 채 5분도 걷지 않아서 바로 부소산성과 맞닥뜨렸다 이것마저 가까이 없었다면 두고두고 이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남편을 원망하고 꼬집었을텐데 다행중 다행이었다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석혼축산성이다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어감으며 흐르는 백마강에 접해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을 1차로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에 포곡식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다. 이곳은 538년(성왕 16)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여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국도를 수호한 중심산성이었다. 이 성 안에는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창 자리와 백제식 가람의 방형 건물터가 있으며, 지금은 영일루(迎日樓)와 반월루(半月樓), 사비루와 망루지(望樓址)가 남아 있다. 이밖에 고란사(皐蘭寺), 낙화암(落花巖), 서복사(西復寺) 터, 궁녀사(宮女祠) 등이 있다. 부소산성은 주위의 보조산성인 청산성·청마산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했으며, 평시에는 왕과 귀족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비원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낙화암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바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3천명의 백제 궁녀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 세운 백화정이라도 들려 잠시 절이라도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뿐 이미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을 역행할 재간이 없으니 관광안내판으로만 둘러보고 돌아나올수 밖에 없다 이마저도 볼 수 없었다면 부여에 대한 기억은 안개와 축축한 비와 그리고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으로만 남았을 것 같다
유골함에 아버님을 모시고 나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용인 어머님 곁에 나란히 모셔두고 명절이나 추석이나 또 그리워질 때 쉬이 찾아뵈면 될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도 멀어지면 만나기 어려운데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렇게 멀리 부여에 계셨으니 자주 찾아지지가 않아 자식으로서 항상 죄스런 마음이 들고는 하였었다 묵묵히 큰아들로서 책임을 끝까지 잘 해낸 내 남편의 어깨가 이제는 한결 가벼워보인다 젊어서는 자식들 먹이고 입히는데 급급했던 힘든 삶으로 늙어서는 어쩔수 없이 자식에게 기대어 사실 수 밖에 없었던 그분들의 삶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결혼하자마자 두 살림을 해야했던 남편과 나 또한 쪼개고 쪼개며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25년간 나눈 세월만큼 정도 쌓인걸까 어머님은 돌아가셨는데 그 분의 얼굴과 말씀은 틈틈이 생각보다 앞서서 내게 찾아든다
십이년만에 만나셨으니 좋으시죠? 어머님 곁에 아버님을 나란히 모셔놓고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어머님의 웃음소리가 아버님의 웃음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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