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1번 엘리베이터를 지탱하는 안전줄은 한 개, 2번 엘리베이터는 세 개. 어떤 엘리베이터가 안전할까? 당연히 2번 엘리베이터다. 1번의 경우 안전줄이 끊어진다면 엘리베이터 속에 있는 사람은 무사할 수 없으나, 2의 경우 하나의 안전줄이 끊어지더라도 대롱대롱 매달려 큰 화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석 우리투자증권 차장은 자신의 저서 ‘딸기아빠의 펀펀 재테크’에서 분산투자를 엘리베이터를 지탱하는 줄에 빗대어 설명한다. 투자에 있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하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요즘 분산투자를 한다는 사람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투자금액은 적은데 펀드 개수는 10개를 훌쩍 넘는다거나 서로 비슷한 성향의 펀드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정말 쪼개고 나누기만 하면 다 분산투자인 걸까?
모든 재테크에 있어 분산투자는 정답이 될 수 있을까? 분산투자를 한답시고 자산을 이쪽저쪽으로 쪼개놓긴 했는데 몇 달, 길게는 수년을 지켜봐도 손에 남는 건 약간의 차익뿐이다. ‘이거 지금 내가 분산투자를 제대로 하고 있기나 한 걸까?’
최근 한 재테크 사이트 게시판에선 펀드의 분산투자에 대해 회원 한 명이 끊임없이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요지는 명료하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국내의 우량한 50여 기업체의 주식을 편입하고 있는 상품이므로 이미 그걸로 분산투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 개의 펀드에 나눠 가입하는 것은 분산투자의 취지에도 안 맞고 수익률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 그는 금융자산 전액을 특정펀드 하나에 ‘올인’했다며 펀드계좌를 캡처해 게시하는 열성까지 보인다. 이에 대한 다른 투자자들의 반응은, ‘맞다’, ‘아니다’로 팽팽하게 나뉘고 있다.
그럴듯한 주장이다. 고액자산가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이 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한정돼있는데 그 돈을 여러 펀드에 나누는 것은, 한 펀드가 뜰 때 다른 펀드가 발목을 잡아 수익을 올리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놓고 보니 분산투자? 펀드백화점
일단 위 주장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왜 이런 글이 올라오게 됐는지 그 원인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작년 한해 국내에서 펀드의 인기는 광풍이라고 할 만큼 그 열기가 대단했다. 1가구1펀드 시대를 맞았고 펀드잔고는 100조원을 돌파했다. 그로 인해 금융자산이 은행권에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로 빠져나오면서 최근 은행의 금리인상을 촉발시킨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열기가 가열될수록 위험을 분산한다며 펀드 편입수를 늘리는 투자자들이 증가했고 조금씩 분산투자의 의미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 과정에선,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시장이 유망하다’며 하루에도 몇 개씩 신상품을 쏟아낸 운용사의 역할이 컸다. 이미 전체 펀드수가 8000개를 넘은 상황. 투자자 눈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보여 일단 매수한 뒤 분산투자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게 된 것이다.
즉 처음부터 자산관리와 투자목적, 투자성향 등을 따져 철저한 계획 하에 펀드를 매수하는 게 아니라, 일단 좋다니까 사놓고 추이를 보는 투자를 하게 된 것이다.
이젠 대여섯개씩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를 보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된 포트폴리오 중엔 1400만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30개가 넘는 펀드종목을 자랑하는 경우도 있다. 가히 펀드백화점이라고 부를 만하다.
한 증권사 창구직원은 “특히 젊은 투자자들 중에는 적은 돈으로 많은 개수의 펀드를 가입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전했다. 분산투자의 빛이 바랜 것이다.
멀티펀드…펀드하나에 글로벌자산배분
최근엔 아예 금융사가 투자대상과 지역을 분산시킨 멀티펀드, 엄브렐러펀드 등을 출시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글로벌자산배분’을 추구한다는 것.
멀티펀드로서 처음 주목을 끈 상품은 브릭스(BRICs)펀드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발전가능성이 높은 4개 이머징마켓에 투자하는 이 펀드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상품으로 큰 인기를 모았으며, 중국 증시의 위험성이 부각된 이후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중국을 대신할 아시아이머징마켓인 아세안펀드도 주목받는 분위기다.
최근 신상품 중엔 국가 분산에서 한걸음 더 나가 투자자산을 분산․편입하는 멀티에셋펀드가 눈에 자주 띈다. 또 이와 비슷한 성격인 엄브렐러 펀드는 하나의 모(母)펀드 아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자(子)펀드가 있어 투자자가 그 중 몇 개의 자펀드를 선택, 하나의 펀드꾸러미를 만든다. 연 12회까지 자펀드를 갈아탈 수 있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재료 많다고 맛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디커플링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고 해도 여전히 글로벌 증시가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국내성장주, 가치주, 아시아와 미국, 유럽을 거쳐 중동, 아프리카지역까지, 여기에 인프라, 금융, 소비재, 에너지섹터 등 각종 펀드를 편입하고 또 멀티펀드까지 매수해 백화점을 차리는 것이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을까 의문이다.
여러 국가의 많은 자산을 섞었다고 해서 위험이 낮아지라는 법은 없다. 예를 들어 중국, 인도증시의 급등락에 따른 위험을 낮추기 위해 브릭스펀드에 가입한다지만 여전히 자산의 70~80%는 중국과 인도에 투자된다.
편입 대상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펀드매니저의 역량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자산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도 쉽지 않고 이 때문에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국내 펀드라면 편입종목을 보고 펀드의 성향을 짐작하기라도 하겠지만 낯선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경제전망이 확실한 특정 국가나 자산을 골라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키는 것이 수익률 측면에선 차라리 나을 수 있다.
어울리지 않는 재료가 들어간 된장찌개의 맛을 떠올려보라. 재료의 수가 많아서 좋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펀드의 구색 맞추기란 그와 비슷한 이치다. 중요한 건 ‘적당함’이다. 수가 많으면 관리만 힘들뿐이다.
또 수가 많으면 그중 한두개 펀드의 수익률이 급등락을 해도 무뎌지게 되고 결국 그로 인해 전체 수익률이 흔들릴 때는 이미 손 쓸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성향의 투자처로 분산해야
분산투자의 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한다. 고민은 어떻게 나눠야 제대로 된 분산투자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기사 첫머리로 돌아가보자. “이미 수십개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데 거기서 더 무슨 분산이냐”는 대답은 중국 시장에서 자금을 빼는 투자자들만 생각해봐도 틀린 답이다. 중국엔 수많은 기업이 있지만 투자자들은 전체 중국 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어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브릭스펀드 등으로 위험을 나눈 것이다.
특정펀드에 편입된 수십 개 편입종목이, 성향 분명한 편입기준과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라면, 예를 들어 미래 성장가능성을 최우선으로 한다거나 가치투자를 우선하는 등의 특징을 갖는다면 종목 수가 많다고 해서 위험이 분산됐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꼭 단 하나의 펀드만 가입해야 한다면 글로벌펀드가 정답에 가장 가까운 상품일 것이다.
잘 모르겠거든 일단 나누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끼리는 한데 묶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의 표는 지역의 분산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3개월간 아시아 이머징마켓에서 중국 증시는 크게 하락한 반면 인도 증시는 최근 급등세를 나타냈다. 중국 증시에 대한 경고사인이 나오고 브릭스펀드가 대안으로 떠올랐을 당시에도 중국 증시에 머물러 있던 투자자라면 큰 손실을 맛봤을 터. 대신 슈로더브릭스펀드로 갈아탄 투자자들은 작지만 플러스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같은 기간 피델리티의 글로벌포커스펀드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투자 범위를 넓힐수록 위험은 낮아지고 수익률은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인도펀드 수익률 비교 (2008.1.4 기준)
펀드명
1개월
3개월
1년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
-4.54
-9.11
67.99
피델리티 차이나포커스
-4.07
-5.54
54.23
미래에셋 인디아디스커버리
12.95
24.18
65.83
피델리티 인디아포커스
8.93
14.55
57.27
슈로더 브릭스
-0.63
3.66
49.69
피델리티 글로벌포커스
0.73
1.05
18.77
MSCI 글로벌주식
-1.87
-4.82
3.75
꾸준한 수익률로 오래 가야
펀드 수를 늘리는 게 분산투자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펀드가 시황에 따라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결국 분산투자의 핵심은 시간을 쪼개는 것으로 모아진다. 즉, 적립식투자로 투자기간을 분산하고 장기투자로 매입단가를 안정적으로 평준화하는 것이 분산투자의 효과를 제대로 내는 방법이란 뜻이다.
투자기간에 따라서도 선택할 수 있는 펀드가 조금씩 다르다. 3~5년 투자하는 것이라면 일반주식형 적립식펀드를, 5년 이상일 땐 인덱스펀드를, 7년 이상이라면 장기주택마련펀드를 택하는 것이 수수료나 세제 부문에서 유리하고, 여기에 10년 넘게 투자하는 경우라면 변액보험도 고민해볼만 하다.
아래 표는 투자시기를 분산해 일정한 수익률을 올리며 길게 끌고 가는 것이 실제 수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A, B, C, D펀드는 하나같이 수익률의 출렁임이 다르다. 얼핏 보면 A~D펀드는 등락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동일하게 4년 동안 40%의 수익률을 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1000만원을 각기 투자했을 때 4년 후 손에 쥐는 돈의 차이는 상당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격차는 투자기간이 오래될수록 더욱 벌어지게 된다.
물론 C나 D의 경우 수익률이 상위권에 왔을 때 매도한다면 A, B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렇게 딱 맞춰 매도타이밍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펀드투자를 하지 않아도 큰 부자가 될 길은 많을 것이다.
결국 특정한 시기에 수익률이 높은 펀드가 아니라 등락이 심하지 않은 펀드를 골라 길게 갖고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법이다.
펀드 성향별 수익률 비교 (투자금액 1000만원, 단위 : %, 원)
A펀드
B펀드
C펀드
D펀드
1년
10
15
30
40
2년
10
5
-10
-20
3년
10
15
30
40
4년
10
5
-10
-20
계
14,641,000
14,580,562
13,689,000
12,544,000
잔고 크기와 위험관리 중요성 비례
투자금액별 적당한 펀드의 개수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사실 투자금액이 억대가 아니라면 많은 펀드에 가입할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성향의 서너개 펀드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충분하다.
적금만기 등으로 중간 중간 목돈이 생겼다고 그때마다 추가불입을 하는 것은 삼가자. 일단 CMA에 넣어두면 필요할 때가 올 것이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경우다.
매달 100만원씩 적립해서 잔고가 1,000만원이 됐다고 가정해보자. 잔고가 월 불입금의 열배를 넘어가면 포트폴리오의 잔고와 수익률은 월불입금에 의해 커지기보단 잔고의 수익률에 의해 더 많이 움직이게 된다. 잔고가 500만원일 땐 10% 손해가 나도 두세 달 불입액을 넣으면 수익률이 어느 정도 만회되지만, 잔고가 1000만원일 때 10% 손해는 월 불입액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때가 CMA에 넣어뒀던 자금을 꺼내기에 적당한 시기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 매달 적립할 수 있는 금액과 잔고의 크기를 봐가며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좋다. 불입 초기에는 공격적인 투자도 괜찮겠지만 적립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면 위험관리에 무게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리밸런싱으로 사후관리
나잘난 대리는 국내 성장형펀드 A와 가치주펀드 B, 해외 소비재섹터펀드 C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여기에 각각 40:30:30의 비율로 적립투자를 시작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이들의 자산비중은 수익률에 따라 35:40:25로 바뀌어 있다. 나잘난 대리는 고민을 시작했다. 1년 전에 예상했던 A, B, C펀드의 전망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혹시 그동안 국내외 경기가 급변해 전망을 수정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그러나 특별히 처음 판단에서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비중을 다시 처음에 만들었던 40:30:30으로 조정했다.
조정하는 방법은? 만기된 적금으로 A와 C 펀드에 자금을 더 넣거나, 돈이 없다면 수익 난 B펀드를 일부 환매해 A, C펀드에 각각 나눠 전체 비중을 맞추는 방법이 있다.
이게 바로 리밸런싱이다. 한번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라 6개월이나 1년, 2년 단위로 주기적인 리밸런싱을 해야 수익과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 리밸런싱은 주가가 낮을 때 매입하고 높을 때 매도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투자예측이 잘못 됐거나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경우에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이 가능하다 재무목표를 재점검하고 이정표를 확인하는 효과가 있다.
김창경 기자
[박스]
성격에 맞춰 분산하라
어떤 펀드가 좋을지,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할지 몰라 금융사 직원이나 지인들이 추천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남들이 추천하는 상품은 이미 괜찮다고 평가를 받는 상품일 때가 많다. 일부러 나쁜 것으로 골라주지는 않을 테니. 그런데 몇 달이 지나면 정작 본인은 싫다고 해지하는 사례가 종종 생긴다. 왜? 투자자의 성향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상품과 포트폴리오는 투자자의 몸에 잘 맞춘 것이어야 한다.
김종석 차장은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다음과 같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특히 최근엔 예․적금 금리가 크게 오른 데다 채권 금리도 바닥권이어서 이쪽으로 투자를 분산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금보장 중시형…원금손실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투자성향, 유동선과 안정성이 높아 투자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예․적금이나 MMF 50%, 채권형 20%, 혼합형 20% 주식형 10%
◆이자 및 배당수익 중시형…원금보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일부는 수익성 있는 상품에 투자한다. 예․적금 40%, 채권형 20%, 주식형 40%
◆시세차익 중시형…원금보장보다는 과감한 투자전략으로서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다. MMF 10%, 혼합형 20% 주식형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