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트 공식 중의 하나, 스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런닝타임 150분의 [마제스틱]은 짐 캐리라는 스타 파워를 이용하려고 한다. 또 하나 할리우드의 공식, 중산층 가족주의를 활용하라.
[마제스틱]에서의 가족주의는,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아들을 잊지 못하는 늙은 아버지와, 그 아들을 너무나 닮은 기억 상실증의 청년을 만나게 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이 함께 부딪치는 곳은 [시네마 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극장이다. 더구나 기억 상실증 청년이, 사실은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은 아들과는 다르게, 미국의 국가체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라면! 갈등은 증폭되고 드라마틱한 극적 구조는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전철을 [마제스틱]도 똑같이 밟아간다. 너무나 짜맞춘 구조로 흘러가는 것이다.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른 뒤, 극적인 반전으로 반환점을 되돌아 화해의 대강물에 이르게 된다. 주인공은 상처 받지 않으며, 훼손된 것처럼 보였던 가족주의는 위대한 승리를 거둔다. 바로 이 점이 나는 불만이다. 이제는 앞의 몇 장면만 보면 결말이 보인다. 너무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구조물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감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짐 캐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코미디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덤 앤 더머]나 [에이스 벤츄라]에서처럼 얼굴 근육이나 비틀어 웃기려고 하는 슬랩스틱류의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했다면, [케이블 가이]의 진지함이나 [트루먼 쇼]의 존재의 니힐니즘까지 짚어내는 연기를 보면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마제스틱]은 전적으로 짐 캐리의 개인기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그의 출세작인 [마스크]에서처럼 과장된 연기로 웃음을 주기 위해 소모되는 일회용 코미디언이 아니다. [마제스틱]에서는 매커시 선풍에 휘말린 한 불우한 시나리오 작가의 내면을 깊이 있는 연기 표현한다. 언젠가 아카데미가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선사한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쇼생크 탈출][그린 마일]의 프랭크 다라본트가 감독한 [마제스틱]은 1951년 헐리우드를 무대로 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 피터 애플턴(짐 캐리 분)은 영화화 된 자신의 첫 시나리오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고급 자동차, 사랑하는 여배우, 이제 인생은 그의 손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지속되고 있던 그 시절, 냉전체제의 극한적 대립 속에서 미국에서는 메카시 선풍이 불고 있었다. FBI에서는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수사를 펼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피터 애플턴은 FBI의 조사를 받는다. 대학시절 좋아했던 여학생을 쫒아다니며 우연히 참가했던 집회가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모임이었다는 혐의다. 그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영화사에서는 다음 작품의 계약을 취소하고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상실감에 휩쌓인 그는 해안도로를 질주하다가 다리 위에서 바다 속으로 추락한다.
로슨이라는 마을의 해안가에서 눈을 뜬 그는,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 그 마을의 수많은 청년들은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으며 그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기념 조각상까지 하사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피터를 본 마을 사람들은 그가 극장 [마제스틱]을 운영하는 해리(마틴 랜더 분)의 아들과 너무나 닮았다. 아니, 모든 사람들은 2차대전에서 실종된 해리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으로 믿는다.
피터는 자신이 정말 해리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해리와 함께 극장 마제스틱을 재건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드디어 극장은 재오픈한다. 그것은 단지 극장이 문을 열었다는 뜻만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전쟁과 그 후의 상실감에 따른 긴 무기력증과 후유증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으로 용솟음치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다.
바로 그때, 그 희망의 정점에서 비극이 찾아온다. 극장에 걸린 [사하라의 도적]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피터는 자신도 모르게 처음 보는 영화의 내용을 자신이 기억하고 있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영화의 포스터 맨 밑줄에서 발견한 자신의 이름, 이제 그는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다. 그리고 FBI는 해변에서 추락한 피터의 자동차를 발견하고 그를 찾아온다. 이제 로슨 마을 사람들은 피터가 FBI의 조사를 받는 공산주의자이고, 그가 자신들의 가족을 희생하가며 싸웠던 국가의 이념과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걸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마제스틱]은 상식적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분명히 감동도 있을만한 이야기이고, 짐 캐리의 진지한 연기도 나무랄데 없다. 극적 구성도 훌륭하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 그동안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식을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피터가 처음본 영화의 줄거리와 대사를 스스로의 머리 속에서 기억해내듯이, 우리는 [마제스틱]의 다음 행보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는 영화는 죽은 영화다.
[쇼생크 탈출]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탁월하게 형상화했던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그 이후 [그린 마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너무나 동어반복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극의 흐름도 비슷하다. 자기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한 그의 영화는 이런 형식을 맴돌 것이고 그것은 그의 영화적 실패를 가져올 뿐이다.
몇년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엘리아 카잔 감독이 입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례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지만, 매카시 선풍이 불 때 수사기관에 동료 영화인들 중에서 공산주의자 명단을 제공하고 본인은 무사했던 그의 전력을 기억하며 의자에 그대로 앉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객석에서 싸늘한 시선을 보내던 애드 해리스의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마제스틱]은 그런 문제를 깊이 있게 물고 들어간 작품은 아니다. 블록버스터의 면죄부적 소재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이 작품의 한계이고, 영화적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