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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락김해종친회 원문보기 글쓴이: 경운산
DJ의 친인척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1998년 1월18일)에서 친인척 관리 방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 역할로 인기 절정이었던 탤런트 유동근씨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친인척 관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경계해야 할 문제로, 지금까지 대통령 주변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지난 선거에서 친인척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친인척부당행위금지법 등 3금(禁)법안을 내놓았다. 친인척 관리를 잘 할 테니 맡겨 달라.” 그 직전 김당선자는 김홍일 의원, 홍업·홍걸씨 등 세 아들 부부를 워커힐호텔로 불러 가족예배 형식을 빌려 대통령의 아들이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 각별하게 조심하라고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아주 엄숙한 자리였다. “몸가짐에 근신할 것을 아버지로서 재삼, 재사 당부한다. 대통령의 친인척 부패와 비리는 이제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된다.” 전경환·김현철로 상징되는 5공 정권과 문민 정권의 붕괴 과정을 누구보다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DJ는 취임 전부터 단속을 했다. |
“친인척 부패와 비리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집권 초기의 초발심은 얼마나 유지되고 있을까. 임기를 1년 반 남겨놓은 상황이어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큰 친인척 비리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작은 사건에 친인척을 둘러싼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집권 기간 친인척이 주요한 직책에 오르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현재 친인척 관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원파트에서 맡고 있는데, 두 사람이 배속돼 있다.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 출신의 김길성 국장과 경찰에서 파견나온 김형렬 경감이다.
김길성 국장은 대통령의 아들 김홍일 의원과 가까운 사이다.
DJ은 1924년 1월6일 부친 김운식과 모친 장수금 사이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만덕·진찬 등 누이 둘은 일찍 작고했고, 밑으로 대의(大義)·대현(大賢) 등 남동생 둘이 있다.
대의씨는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1997년 12월17일 간질환으로 숨졌다.
대의씨는 임종 직전 “선거에 이용돼 누를 끼칠 수 있으니 선거가 끝날 때까지 나의 죽음을 형님에게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겨 주변 사람들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DJ는 동생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던 순간인 12월19일 오전 1시께야 들었다고 한다.
김대의씨는 목포상고를 나와 1971년 대선 때 DJ의 참모로 활약하기도 했다.
동교동 구파 모임인 내외문제연구소 이사를 맡기도 했지만, 정치 전면에는 나서지 않고 형의 정치적 뒷바라지만 하다 형의 등극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대의씨의 부인 민병숙씨는 민한당 국회의원을 지낸 민병초씨의 누나다. 대의씨와 민병숙씨는 2남2녀를 두었다.
장남 홍준(弘準)씨는 단국대 정외과를 나와 대한생명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큰딸 혜경(惠景)씨는 경희대 정외과를 졸업해 출가했다.
남편이 YTN 보도본부 부국장 신동윤씨다. 둘째아들 홍훈(弘勳)씨는 산림청 산하 홍릉임업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막내딸 혜영(惠英)씨는 가정주부다.
언론 피하는 DJ 동생 金大賢씨
DJ의 막내동생 김대현(金大賢)씨는 현재 한국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이다.
사무실이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9층에 있다. 대현씨는 건국대를 졸업하고 22년간 군생활을 한 헌병 소령 출신이다.
형의 경호를 맡았다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1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부인 이숙자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뒀는데, 부인은 지난 9월6일 오전 숙환으로 작고했다.
유족측은 언론의 취재가 부담스러운 듯 빈소가 마련된 일산 국립암센터 영안실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다.
현 정부 출범뒤 대현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께 누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 5월 안동수 법무장관 파동때 과연 안장관을 추천한 인물이 누구인지 의문이 제기됐는데,
당시 기자는 여권의 한 인사로부터 ‘추천인은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제보를 받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김이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측근을 통해 “안동수 장관과는 잘 알지도 못한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만나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대현씨는 지난해 포철 납품 불법로비 사건 때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사건으로 대현씨의 보좌관 문모씨가 구속됐는데,
문씨는 포철 유상부 사장에게 청탁하는 자리에 대현씨의 장남 홍석씨를 대동했다.
현재 아시아나 항공에 근무하는 홍석씨 건은 검찰에서 무혐의로 처리해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DJ의 부친인 김운식씨는 장수금씨와 결혼하기 전 전처 김순례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DJ의 이복형 대봉(大奉)씨는 1972년 작고했고, 이복누나 안례씨는 현재 전남 신안군 도초면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봉씨는 이복동생인 DJ가 목포 지역 국회의원일 때 지구당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대봉씨는 부인 박공심씨와 사이에 3남1녀를 두었는데, 차남인 관선(寬宣)씨가 현재 광주시의회 의원이다.
관선씨는 지난 1995년 첫 지방선거때 광주시의회에 진출, 현재 재선 의원으로 있다.
일찌감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지난 대선 때는 국민회의 재정국장으로 ‘작은아버지’의 당선을 도왔다.
관선씨는 1998년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에 출마하려 했으나 대통령이 만류하는 바람에 좌절됐다.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점이 오히려 족쇄로 작용한 경우다. 장남 만선(滿宣)과 3남 홍선(弘宣), 막내 명임(明任)씨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김대통령과 이희호(李嬉鎬) 여사의 결혼은 정대철 현 민주당 최고위원의 부모인 정일형·이태영 부부가 주선해 이루어졌다.
당시 39세였던 정치인 김대중은 ‘아이가 둘 딸린’ 홀아비였고 이희호 여사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 YWCA 총무로 활동하던 신여성이었다.
첫 부인 차용애(車蓉愛)씨는 1959년 DJ가 세번째 낙선한 인제보궐선거 직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씨는 목포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던 부잣집 딸이었는데, 목포여중을 나온 뒤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닌 신여성이었고 미모도 출중했다.
김대통령은 차씨와의 사이에 홍일(弘一)과 홍업(弘業) 두 아들을 두었고, 셋째아들 홍걸(弘傑)씨는 이희호 여사의 소생이다.
“대통령의 동서라는 이유 때문에 매도당하고 불명예 퇴진하고 싶지 않아 사표를 냈다.”
지난 8월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재희(徐載熹·73) 원장은 임기를 11개월 앞두고 사표를 제출했다.
건강재정보험이 파탄난 상태에서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500억원대의 심평원 새 사옥 매입을 추진했다
여론의 강한 빈축을 산 뒤끝이었다. 서씨는 “심평원 사옥 이전 가계약을 하고 물러나려 했지만 여러 말이 나와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해 7월 심평원 초대원장으로 발탁됐다.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고령인 데다 행정경험이 전혀 없어 자격시비가 일기도 했다. 심평원은 병원과 약국이 청구하는 진료비 내역을 심사 평가하는 기구다.
직원만 1,140여명에 달한다.
서재희씨는 DJ의 동서, 즉 첫부인 차용애씨의 동생 은경(恩卿)씨의 남편이다. 은경씨는 DJ의 첫부인 차용애 여사의 유일한 여동생이다.
해방후 목포에서 용애·은경 자매는 미모로 정평났다. 은경씨는 영화 “산유화”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정도로 미모를 자랑했다.
DJ는 첫부인 용애씨 형제들에 대해서도 눈에 띄지 않게 애정을 쏟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용애 여사는 5남2녀 중 둘째다. 위로 오빠 원식씨가 있고, 밑으로 태식·은경·인식·우식·창식씨 등이 있다.
현재 경동시장번영회 회장을 지내고 있는 창식씨는 지난해 정현준사건때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정현준이경자금감원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의 열쇠를 쥔 핵심인물로 떠올랐지만 해외로 도피한 조직폭력배 출신
오기준씨와 한동안 어울려 다닌 것이 세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대변인 성명에서 차씨와 김홍일 의원의 연관성에
의혹을 제기하며 대통령 친인척비리로 몰아가려 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5공을 감동시킨 차남 김홍업의 러브스토리
김대통령 내외는 자녀의 결혼을 자유의사에 맡겼다.
첫째아들 홍일(민주당 국회의원)씨는 경희대 정외과를 나와 윤혜라(尹惠羅)씨와 결혼했다.
윤혜라씨는 둘째 홍업씨의 친구이자 현 스포츠서울21 사장인 윤흥렬(尹興烈)씨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홍일씨는 동생 홍업씨의 주선으로 아내를 맞은 셈이다. 두사람은 1974년 8월15일 혼례를 올렸는데,
묘하게도 이날은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운명한 날이기도 하다.
김홍일 의원의 장인 윤경빈(尹慶彬)옹은 독립유공자로서 현정부 출범 직전인 1998년 1월16일 광복회 회장에 취임했다.
윤회장은 일본 메이지대 법학부 출신으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의 경위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윤회장의 광복회장 취임 당시 전임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히고 광복회원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홍일 의원의 처남인 윤흥렬씨는 홍업씨와 경희대 동기동창이고, 충무로에서 영화 조감독으로 시작해 CF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CF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정치에 접목시켜 지난 대선 때에는 홍업씨와 함께 홍보기획사 ‘밝은세상’을 만들어 김대중 후보의 TV 광고를 포함해
홍보전의 야전사령관으로 맹활약했다.
최근 인천공항사건에서 이상호 전 개발사업단장이 외압의 장본인 중 한 명으로 거론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윤씨가 사장으로 있는 스포츠서울21은 이번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에어포트72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윤씨는 이상호 전 단장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둘째아들 홍업씨는 현재 아태재단 부이사장이다. 경희대 경영학과를 나왔고 친구 윤흥렬씨와 함께 ROTC로 군복무를 마쳤다.
홍업씨는 경희대를 나온 신선련(申仙蓮)씨와 1984년 결혼식을 올렸다. 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이후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신선련씨 집안에서는 딸이 DJ의 아들과 연애한다는 눈치를 채고는 극력 반대했다.
신선련씨의 부친은 박정희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냈고 당시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재직중이던 신현수(申鉉守)씨.
강제로 선을 보게 하는 등 ‘DJ 아들’과 떼어 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당시 캐나다대사관에 근무하던 선련씨는 집안에 “홍업씨와는 결혼하지 않을 테니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해서 1983년 12월 도미한다.
하지만 이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홍업씨와 선련씨의 결혼작전이었을 뿐이었다.
두사람은 신부측 집안 사람들의 참석 없이 워싱턴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문동환 목사가 신부측 집안 어른 노릇을 대신했다.
졸지에 딸을 미국 정치 망명객의 아들에게 빼앗긴 신현수씨는 사표를 낼 각오로 감사원장에게 사실을 보고했는데,
뜻밖에도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홍업씨의 결혼은 언론에 재갈이 물린 5공 정권 당시 일반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치권에 적잖이 회자된 유명한 ‘러브스토리’였다. 신선련씨는 현재 메릴린치증권 간부로서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아들 홍걸씨는 현재 미국유학중이다. 고려대 불문과를 1년 다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부모를 따라 도미했다.
1991년 부산의 사업가 임정상씨(작고)의 딸 미경씨와 결혼한 뒤 계속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홍일·홍업 두 이복형제와는 달리
국내 정치권에 이렇다 할 인연은 없다. 다만 지난해 총선 직전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이
홍걸씨 부부가 미국 LA 인근의 호화주택에서 살고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구설에 올랐는데,
나중에 이 주택은 홍걸씨 소유가 아닌 조풍언씨 소유로 밝혀졌다.
조풍언씨는 DJ에게 일산 자택을 사준 교포. 이신범 전 의원과의 공방전은 법정으로까지 비화했고,
나중에 홍걸씨의 새로운 주택이 밝혀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서로 소를 취하함으로써 흐지부지됐다.
막강한 이희호 집안
김대통령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다. 목포 북교초등학교를 나와 목포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고향인 목포에서 일본인 해운회사를 인수해 운영하고 신문사 사장을 지내는 등 해방후 사업가로 승승장구했지만,
집안 덕을 본 것은 없다. 반면 이희호 여사쪽은 결혼 당시 집안에서 말린 것도 당연하다 싶을 만큼 ‘짱짱한’ 집안이다.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전을 졸업한 후 충남 삽교에서 잠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해방후 서울사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1954년 미국 테네시주 스카릿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이화여대 강사, YWCA 총무, 여성문제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 토박이로 전주(全州) 이씨(李氏) 완창대군파 이용기(李龍基)씨와 이순이씨 사이의 6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용기는 세브란스의전을 나왔고 대한민국 의사면허 제4호다.
이여사 부친은 대한민국 의사 4호
이여사의 큰오빠 강호(康鎬·작고)씨는 경기고·서울상대를 졸업하고 한신증권 사장과 한국증권협회장을 지낸 금융통이다.
야당 지도자로서 DJ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줬다고 한다.
강호씨는 4남1녀를 두었는데, 둘째아들이 형택(亨澤)씨다.
형택씨는 지난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의해 ‘DJ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던 인물이다.
서울사대부고와 한국외국어대학을 나와 당시 동화은행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현정부 들어 동화은행이 퇴출되면서 잠시 금융계를 떠났다가 1999년 1월7일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화려한 복귀’를 했다.
예금보험공사는 부실채권 정리 기구인 자산관리공사와 함께 금융구조조정에 따른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양대 금융감독기관이다.
주로 부실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상당수 금융기관의 대주주로 자리잡고 있다.
나라 예산보다 많은 공적자금 110조원 이상을 ‘주무르는’ 핵심 기관인 것이다. 형택씨가 막중한 자리인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임명받은 뒤
세간의 뒷공론과 언론의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요컨대 퇴출은행 간부가 어떻게 구조조정과 개혁의 핵심기구에 앉느냐는 비판이었다.
강호씨의 장남 원택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석재공장과 화장품 원료를 만드는 화학회사를 경영했다.
3남 정택씨는 서울대 농대와 워싱턴주립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 현재는 컨설팅회사 고문으로 있다.
4남 선택씨는 경기고·서울대 의대를 나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심장전문의로 개업했고, 외동딸 순원씨의 남편 김영찬씨는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둘째오빠 이경호(李經鎬)씨는 내과의사다. 서울 약수동에서 개원하기도 했다. DJ가 대통령후보로 나섰을 때인 1971년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1977년 사망했다. 경호씨는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 장남 영작(英作)씨가 현재 한양대 석좌교수.
경기고·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주립대에서 통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최근까지
미 국립보건원 산하 ‘아동 및 인산생성연구소’ 통계학실장으로 근무했다. 여론조사가 본격 도입된 1987년 대선 때부터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막후에서 통계전문가로서 DJ를 보좌했다.
지난 3월 “1997년 대통령선거 전략보고서”라는 거창한 책을 펴내면서 지역연합론을 통한
정권재창출을 강조해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영작씨의 부인 정기란씨는 5선 국회의원 및 교통부 장관을 지낸 정헌주(鄭憲柱)씨의 딸이다.
차남 세작(世作)씨는 동성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현재 영동합동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의 선배로 절친한 사이다.
태호(台鎬)씨는 이희호 여사의 바로 위 오빠다. 일본대학 전기공학부를 나와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
해방 후 경방·조선방직 등 국내 방직업체에서 공장장을 지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이여사의 바로 아래 여동생이 영호(英鎬)씨. 본명은 이광자. DJ가 끔찍이 아끼는 ‘처제’다.
야당 시절 DJ가 손님이 끊이지 않는 동교동(또는 일산) 자택이 번거롭다고 느껴질 때마다 찾는 이른바 ‘목동 안가’의 주인이다.
동교동 가신들은 ‘목동 이모네’라고 부른다. 주택은행 부장으로 정년퇴직한 남편과는 1992년 사별했고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외아들 김형기씨가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교수이고 며느리 허영숙씨는 청와대 여성정책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영호씨 밑으로 이여사의 남동생 셋이 더 있다. 상호(商鎬)씨는 고미술상이고, 철호(喆鎬)·성호(聖鎬)씨가 있다.
예비역 대령으로 예편해 부동산 임대업 등을 해온 철호씨는 5남1녀를 두었는데 아들 셋이 현직 대학교수이다.
막내 성호씨는 현재 조그만 해외여행 알선업체인 아펙스관광 대표인데, 6·25 직후 도미해 미국 에모리 대학을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성호씨는 미국 현지에서 제법 큰 여행사를 경영해 본 경험도 있는데,
야당 시절부터 DJ의 해외 일정을 주선하는가 하면 에모리 대학·조지 워싱턴 대학 동창 등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막후에서 김대통령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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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이오김종친회에각별한애정을보였다니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