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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을 붙잡고 사는가?
히 11:31
2009년 12월 31일 94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타계한 현대 경영학의 거장이며 미국 최초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새뮤얼슨이 1948년에 쓴 『경제학』이란 책은 40개 언어로 번역되어 4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하는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왼쪽에서 보면 양, 오른 쪽에서 보면 새의 머리 모양을 한 유명한 그림이 등장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론적 배경,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양일 수도 있고 새일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이며 뿌리는 믿음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많은 인물을 등장시켜서 이들의 생애를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의 믿음이 다 다릅니다.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각각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분에 도착을 했습니다. 물론 이 후의 구절에는 여러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히 11:32) 이들 모두가 훌륭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그러나 단 한절로 이렇게 여러 사람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때에 앞에 소개된 여러 믿음의 선배들과는 다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31절까지 소개된 사람들이 믿음의 위인 주전선수라면 32절에 언급된 사람은 후보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전 선수 중에 제일 중요한 선수는 몇 번째에 자리할까요? 감독들은 선수들의 순번에 대단히 신경을 씁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성화 봉송의 순서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축구경기에서 승부차기를 할 때 선수 중에 가장 믿을만한 선수를 제일 앞과 마지막에 둡니다.
우리 나라는 이번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400m 남자 릴레이경기에 금메달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5등을 했지만 희망을 갖고 지난 4년간 준비를 한 릴레이 선수는 여호수아 조규원 오경수 김국영 선수입니다. 이들 중에 가장 잘 뛰는 선수는 마지막 주자인 김국영 선수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에이스는 첫 번째 주자로 나서는 여호수아 선수입니다. 이 마지막 주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다른 나라의 400m 릴레이선수의 마지막 주자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메이카 계주팀에서 우사인 볼트가 붙박이 앵커(마지막 주자)로 나서고,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미국 계주팀은 저스틴 게이틀린을 4번에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400 계주 선수들에게는 마지막 주자가 되려는 각축전이 벌어집니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주자로는 아벨이 출발을 했습니다. 그가 출발선을 통과하여서 믿음의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하고 열광을 합니다.(히 12:1) 에녹이 그 다음 주자로 바통을 터치했습니다. 에녹은 노아에게 넘겨주었고 그렇게 계속 이어지다가 마지막 주자가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마지막 주자가 누구입니까? 라합이라는 여성입니다. “기생 라합”, 하나님께서 내놓으시는 히든 카드입니다. 기생인 라합이 어떻게 마지막 주자가 될 수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이런 여성이 믿음의 대표주자로 나설 수 있습니까? 정말로 알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1. 붉은 줄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과연 이 여인이 마지막 주자가 될만한 자격이 있는 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여인의 믿음이 최고요 가장 귀하다고 하니 그런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 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라합이라고 하는 여성이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입니다. 성경은 라합을 기생이라고 소개합니다. 라합을 부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수식어는 기생입니다. 심지어 오늘 읽은 믿음장에서도 그녀를 부를 때 라합이라고 부르지 않고 기생 라합이라고 불렀습니다. 라합의 직업은 기생입니다. 여러분들은 기생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 안겨 자신의 몸을 팔아서 생활하는 여성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기생이라는 직업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여러분들이 잘 아십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여인이 부끄러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들키고 말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을 개처럼 끌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한번 실수를 했는데 말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남편을 다섯이나 둔, 수가 성의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이 여인을 왕따를 시켰습니다. 이 여인은 자격지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과의 모든 만남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뜨거워서 오침을 하는 뜨거운 대낮에 물을 긷기 위해서 우물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사람 취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몸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기생은 어떠했겠습니까? 라합은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붙어 있는 ‘기생’이라는 그 호칭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무엇입니까? 구제받을 수가 없는, 소망이 전혀 없는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 없습니까?
(사 1:5-6)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 말씀이 라합에게 딱 일치하는 그런 말씀일 것 같지 않습니까? 라합은 이런 여성이었습니다. 도무지 사람 취급을 받을 수가 없는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여인이 어떤 상황입니까?
(수 2:9-11)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라합의 마음은 지금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간담이 녹아 내리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고, 일을 하려고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다리가 후덜거리고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수 6: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리고 성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문이 굳게 닫혔습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는 성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 성은 장차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것을 라합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빠져 나갈 길이, 도망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성과 함께 멸망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라합의 현 주소입니다.
라합은 용서받을 수 없는 더러운 죄인, 몸 파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죄인이었습니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불안감, 두려움, 초조함이 역력합니다. 도망을 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갇혀 있습니다. 라합에게 지금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에 던져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기생 라합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수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하나님께서 하신 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물을 가르셨고, 아모리 사람들을 진멸시켰다는 소문입니다. 이 소문을 들은 라합이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자기 집을 찾아온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붉은 줄의 비밀을 듣습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이 건네 준 붉은 줄을 자신의 집 창문에 매달았습니다.(수 2:21) 붉은 줄은 볼품없고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나풀대는 갈대보다도 더 볼품없는 천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 붉은 줄 속에 담겨있는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에도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때에도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붉은 줄을 매단 그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신 여러분,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찾아오신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붉은 줄의 약속을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그 붉은 줄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확고하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종말을 향해 내달리는 이 인류를 구원해줄 영생의 줄 붉은 줄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오늘 찾으시기 바랍니다.
2. 무너지는 성에서 붉은 줄을 붙잡았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 상황, 내 처지가 어떠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붉은 줄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내 상황이 어떠하든지 붉은 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2009년 3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 개장할 때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2월 17일 부산 광복동 롯데백화점이 개장할 때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이 물건은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 개장할 때 하룻만에 7억원어치가 팔렸습니다. 없어서 팔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 후에 개장하는 롯데측은 신세계백화점 개장 때의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물량을 준비하고서는 개장을 했습니다. 정말 사람이 밟힐 정도로 그 물건을 파는 매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습니다. 그 날 하룻동안 롯데백화점에서 팔려나간 매출액이 67억원이었는데 그 중 20억원어치가 바로 이 제품 하나의 매출액이었습니다. 그 제품은 빨간 팬티입니다. 부산 경남지방에서는 여자가 빨간 팬티를 사면 아들을 얻고, 남자가 빨간 팬티를 사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에 따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지금 라합이 잡은 것은 이런 미신으로 붉게 물든 빨간 속옷이 아니라 그가 붙든 것은 빨간 줄입니다. 이 줄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요 19:18)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요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십자가에서 붉은 피를 흘리신 예수님이 바로 붉은 줄입니다. 이 붉은 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불안에서 평안을, 불면에서 쾌면을, 꽉 막힌 성에서 놓임을 받을 것입니다. 경험해 보십시오. 경험해 본 자만이 이 사실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
라합, 그녀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잠도 잘 수가 없었고, 얼굴에서는 웃음끼가 사라졌습니다.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위기였습니다. 하늘이 노래지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붉은 줄을 바라보았습니다. 라합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붉은 줄이 나의 불안, 초조, 두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다. 다시 회복하는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일어서게 될 것이다. 비록 라합의 삶이 매일같이 죄악투성이고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하루하루였지만 더럽고 추악한 삶이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붉은 줄을 붙잡았습니다. 저 붉은 줄만 바라보면 내가 비록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라합은 이 연약한 줄에 담긴 약속을 믿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곧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 붉은 줄 때문에 다시 살 것이다 라는 믿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합의 믿음입니다.
(행 4:12, 개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라합은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것만 믿었습니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함과 우울함을 제거하시고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제공하시는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출발을 결심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새로워집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경험해 본 자만이 외칠 수 있습니다. 평안을 원하신다면, 안식을 원하신다면, 감사함을 원하신다면 붉은 줄되신 예수님과 다시 시작해 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붉은 줄이신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취감도 없고, 기쁨도 없고, 감사할 일도 없고, 죽으라고 가정을 위해 헌신해 왔는데 감사해 하는 사람도 없고, 매일 매일의 삶이 피로와 단절의 삶입니까? 내일이 두렵습니까? 예수님은 붉은 줄이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구원을 얻습니다. 해방이 있습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사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며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붉은 줄이신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해답이 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해답이 되는 분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돌로 쳐 죽임 당해 마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요 8: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벌벌 떨고 있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20: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감옥 속에 갇혀서 꼼짝할 수 없었던 바울과 실라에게도 주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행 16: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예수 그리스도는 붉은 줄이십니다. 이 붉은 줄을 여러분의 모든 삶의 현장에 걸어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순간마다 바라보십시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사실을 믿고 한번 실행해 보십시오. 그리고 경험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 바로 이 것입니다. 붉은 줄이신 예수님이 지금 나의 모습 나의 믿음을 평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날 위해 피 흘리셔서 친히 붉은 줄이 되신 주님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까요?
독일의 금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릴케가 체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죽은 딸을 잊지 못하던 그의 어머니가 릴케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죽은 딸을 잊지 못하고 릴케에게 여자 옷을 입혀서 키웠습니다. 릴케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부모는 이혼을 했습니다. 열 한살이 되었을 때 릴케는 소년군사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약골이어서 적응하지 못하고 퇴교를 하였습니다. 릴케에게 군사학교 시절은 감옥의 악몽 그 자체였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후에 그는 독일, 스위스, 프랑스로 전전하다가 스위스에서 안착을 하였습니다. 이런 암흑기에 그가 쓴 시 한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엄숙한 시간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우는 것이다.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웃고 있다.
밤에 이유없이 웃고 있는 사람은
나를 두고 웃는 것이다.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걷고 있다.
정처도 없이 걷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오는 것이다.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없이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 에 시에서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과연 누구일까요? 막연한 어떤 사람일까요? 혹시 주님은 아닐까요? 나는 바라보시며 주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계실까요? 나 때문에 울고 계실까? 아니면 비웃고 계실까요? 지금 여러분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 보이십니까?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그 주님의 눈이 여러분을 응시하고 있음이 보입니까? 라합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요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라합을 믿음의 반열에 세우시며 명문가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라합과 같이 예수님을 믿으시고 예수님의 구원의 기적을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같이 성경에 약솓된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고후 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약속이 여러분의 삶에 현장에서도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이 순간부터 예수님과 함께 출발하시고자 결심하는 여러분들에게 이 약속이 현실이 되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 구원, 예수 승리가 삶의 현장 곳곳마다에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