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는 규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불확실성이 오히려 약자에겐 승리비결이 될 수 있다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큰 시장으로 진출하라성문에 도달하려면 고난의 해자를 건너라
수많은 골프팬을 몰고 다니며 필드를 호령하던 아널드 파머도, '골프 신(新) 황제'로 불리던 톰 왓슨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 있다. 바로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다. 메이저대회 4개를 모두 우승해야 영광의 반열에 등극하는데 이들은 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에는 우승했지만 시즌 마지막에 열리는 PGA챔피언십 우승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평생의 염원이었던 바로 그 PGA챔피언십대회에서 대한민국 양용은이 승전고를 울렸고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렸다.세계 언론들은 이를 '스포츠 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표현했다. 양용은은 2008년 미 PGA에서 상금 순위 125위 안에 들지 못해 퀄리파잉(qualifying)스쿨을 거쳐 대기자 명단에 간신히 이름을 올린, 변방에서 온 약자였고, 타이거 우즈는 상금 순위와 올해의 선수 포인트에서 세계 랭킹 1위를 자랑하는 최강의 챔피언이었다. 약자인 양용은이 어떻게 강자인 타이거 우즈를, 그것도 메이저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2타 차의 열세를 뒤집고 역전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매우 훌륭한 사업에는 해자(垓子)가 있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이 2007년 주주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해자란 성(城) 주변에 둘러 판 연못을 말한다. 매력적인 시장에 진출하려면 고난과 시련의 연못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약자의 전략은 '강자와 맞서지 말고 피하라'였다. 약자는 자신의 한계와 가용 자원을 철저히 인식하고 틈새 공략, 차별화, 우회 전략으로 강자가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라고 한다.
그러나 강자가 외면한 시장이 과연 영양가가 있는가? 또한 약자들이 모여드는 틈새시장은 과연 경쟁 없는 블루오션인가 하는 점이다. 오히려 매력적이지도 않은 시장에서 더욱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약자 양용은은 틈새로 우회하지 않고 고난과 시련의 해자로 정면 돌파했다. 그에게서 약자의 전략을 배워보자.
둘째,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로 싸워야 한다. 대회 초반에는 탐색전을 펼치다가 이른바 '무빙 데이(moving day)'라는 3라운드에 선두권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마지막 4라운드에 경쟁자를 압박하고 막바지에 일격을 가하여 마침내 챔피언에 오른다. 어디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바로 타이거 우즈의 우승 공식이며, 현존하는 최고의 공식이다. 2타 뒤진 채로 타이거 우즈와 챔피언조에서 출발한 양용은은 철저하게 타이거 우즈 방식으로 싸웠다. 3라운드 선두권 진입, 4라운드 14번 홀 이글 칩샷, 18번 홀 버디 퍼팅은 경쟁자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는 통쾌한 일격이었다.
셋째, 약자일수록 더 큰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양용은이 1996년 프로테스트에 합격한 후 1999년 국내 상금 9위에 오르며 톱 10에 랭크됐지만, 총상금은 고작 1800만원. '구두닦이 전국 9등도 그것보다는 더 벌겠다'는 말을 남기고 더 큰 시장인 일본투어로 떠났다. 일본에서 4승을 거둔 양용은은 2006년 유럽투어 HSBC 챔피언십 우승을 거쳐 드디어 지상 최대의 무대인 미 PGA투어로 향한다. 투어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해 실패의 경험도 있었고 다시 밀려나는 시련도 있었지만, 그는 실패를 통해 더욱 성장했다.
넷째, 약자일수록 지피지기(知彼知己)다. 모든 전략의 출발점은 나를 알고 적(敵)을 아는 것이다. 양용은의 캐디백에 있는 클럽 구성을 보면 헤드커버가 5개다. 드라이버에다 페어웨이 우드 2개, 하이브리드 2개로 조합을 했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동료들보다 짧다는 것을 알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드라이버의 거리와 아이언의 정확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클럽을 지참하고 다닌다. PGA챔피언십 마지막 날 18번홀 206야드를 남기고 날린 두 번째 샷이 바로 이 하이브리드 클럽이었고, 정확하게 홀 옆 2.5m 지점에 안착하여 버디를 기록한다. 칼이 짧으면 한발 더 다가서면 된다.
마지막으로 약자일수록 공격적으로 임해야 한다. '무위험, 무수익(No Risk, No Rewards)'이다. 골프장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들은 이 원칙을 염두에 두고 코스를 설계한다. 도전적인 사람에 보상이 돌아가는 루트를 설정하고, 벙커나 워터 해저드 그리고 장애물로 덫을 친다. 2타를 앞선 타이거 우즈의 결정적 패인은 지키려는 골프를 했기 때문이다. 어프로치는 흔들렸고 퍼팅은 홀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양용은은 '나는 져도 잃을 것이 없다. 하지만 타이거는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망신일 것이다'라는 특유의 배짱으로 공격적으로 임했다.
양용은의 PGA챔피언십 쾌거가 부존자원은 없고 내수시장은 한계가 있는 우리 경영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매력적인 큰 시장으로 진출해 고난과 시련의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전진을 꾀하라는 것이다. 고통의 연못을 건너지 않고는 훌륭한 성(城)에 다가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