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처음 등장한 '네 바퀴 달린 정자' 사륜정(四輪亭)이 양평 세미원에 들어섰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문집 권23》에 실려 있는 <사륜정기(四輪亭記)>에 나오는 사륜정이다.
그 문헌에 나오는 사륜정의 규모와 짜임새이다.
사륜정(四輪亭)은 이동식 정자로 바퀴를 넷으로 하고 정자를 그 위에 지었는데 정자의 사방이 6척이고
들보가 둘, 기둥이 넷, 대나무로 서까래를 하고 대자리를 그 위에 덮은 형태로 보여진다.
동서남북이 각각 난간 하나씩이요, 정자가 사방이 6척이니, 그 칸수를 다 합치면 모두가 36척 규모이다.
정자안에는 거문고 타는 자 한 사람, 노래하는 자 한 사람, 시에 능한 승려(僧) 한 사람, 바둑 두는 자 두 사람,
주인까지 여섯이 자연과 함께 풍류를 즐기고 있다.
이규보는 고정된 건축물인 정자가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누리는 데 한계가 있고 동행인들이 이를 쫓아
이동하는 데 드는 수고를 덜고자 사륜정을 고안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륜정기문에서 사륜정을 자세히 살피리려 한다.
승안(承安) 4년에 내가 처음으로 설계를 하여 사륜정(四輪亭)을 동산 위에 세우려 하였는데, 얼마 있다가 전주(全州)로 부임하라는
명이 있어서 이룩하지 못하고, 그뒤 신유년에 전주로부터 서울에 와서 한가하게 지내던 중 바야흐로 명이 있어 지으려고 하였으나
또 어머니의 병환으로 성취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짓지도 못하고 또 설계한 것까지 잃게 될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기(記)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대저 사륜정이라 한 것은 농서자(隴西子 이규보)가 설계하고 아직 짓지는 못한 것이다.
여름에 손님과 함께 동산에다 자리를 깔고 누워서 자기도 하고, 앉아서 술잔을 들기도 하고,
바둑도 두고 거문고도 타며 뜻에 맞는 대로 하다가 날이 저물면 파한다. 이것이 한가한 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햇볕을 피하여 그늘로 옮기면서 여러 번 그 자리를 바꾸는 까닭에 거문고ㆍ책ㆍ베개ㆍ대자리ㆍ술병ㆍ바둑판이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지므로 자칫 잘못하면 떨어뜨리는 수가 있다. 그래서 비로소 설계하여 사륜정을 세우려고 하는데,
아이 종으로 하여금 이것을 밀어 그늘진 곳으로 옮기게 하면, 사람과 바둑판ㆍ술병ㆍ베개ㆍ대자리가 모두 한 정자를 따라서
동서로 이동하게 되리니, 어찌 이리저리 옮기는 것을 꺼려하랴? 지금은 비록 성취하지 못하나 뒤에 꼭 지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그 형상을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바퀴를 넷으로 하고 그 위에 정자를 짓되, 정자의 사방이 6척이고 들보가 둘, 기둥이 넷이며,
대나무로 서까래를 하고 대자리를 그 위에 덮는데 그것은 가벼움을 취한 것이다.
동서가 각각 난간 하나씩이요, 남북이 또한 같다. 정자가 사방이 6척이니 그 칸수를 총계하면 모두가 36척이다.
그림을 그려서 시험해 보리라.세로 가로를 계산하면 모두가 6척인데, 그 평방이 바둑판 같은 것이 정자이다.
판국 안에 또 둘레로 돌아가며 자로 헤아려보면 한자의 평방이 바둑판의 정간과 같다.
정간[罫]이란 선(線)사이의 정(井) 자처럼 네모 반듯한 것이다. 정간이 각각 1평방척이니, 36정간은 곧 36평방척이다.
여기에 여섯 사람을 앉게 하는데, 두 사람이 동쪽에 앉되 4평방 정간을 차지하고 앉는다.
세로 가로가 모두 2척인데 두 사람의 분을 총계하면 모두가 8평방척이다.
나머지 4평방 정간을 쪼개어 둘로 만들면 각각 세로가 2평방척이다.
2평방척에다가는 거문고 하나를 놓는다. 짧은 것이 흠이라면 남쪽 난간에 걸쳐서 반쯤 세워둔다.
거문고를 탈 적에는 무릎에 놓는 것이 반은 된다. 2평방척에다가는 술동이ㆍ술병ㆍ소반그릇 등을 놓아 두는데,
동쪽이 모두 12평방척이다. 두 사람이 서쪽에 앉는 데도 또한 이와 같이 하고,
나머지 4평방 정간은 비워 두어서 잠깐씩 왕래하는 자는 반드시 이 길로 다니게 한다. 서쪽도 모두 12평방척이다.
한 사람은 북쪽 4평방 정간에 앉고 주인은 남쪽에 앉는데 또한 이와 같다.
중간 4평방 정간에는 바둑판 하나를 놓으니, 남쪽과 북쪽 중간이 모두 12평방척이다.
서쪽의 한 사람이 조금 앞으로 나와 동쪽의 한 사람과 바둑을 두면, 주인은 술잔을 가지고 한 잔씩 부어서 돌려가며 서로 마신다.
안주와 과일 접시는 각각 앉은 틈에다 적당하게 놓는다.이른바 여섯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면, 거문고 타는 사람 1인,
노래하는 사람 1인, 시에 능한 중[僧] 1인, 바둑 두는 사람 2인, 주인까지 여섯이다.
사람을 한정시켜 앉게 한 것은 동지(同志)임을 보인 것이다.
이 사륜정을 끌 때에 아이 종이 힘든 기색이 있으면 주인이 스스로 내려가서 어깨를 걷어붙이고 끈다. 주인이 지치면 손님이 교대하여 내려가
조력한다. 술에 취한 뒤에는 가고 싶은 대로 끌고 가지, 꼭 그늘로만 갈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하여 저물 때까지 놀다가 저물면 파한다.
명일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자의 평방이 6척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계산한 뜻은 깨닫기 어려울 것이 없으나
무엇을 따지느라고 이처럼 자세히 계산하여 바둑판 정간으로 비유해서 사람을 천박하게 여기는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하늘이 둥글고
땅이 모난 것은 사람이 모두 아는 바이지마는, 음양을 말하는 자가 일산과 수레로 비유를 하니,
세로 가로의 보(步)ㆍ척(尺)까지 모두 들어 말한
것은 만물이 모나고 둥근 데 들어가는 것이 모두 형기(形器)에 응한다는 것을
논하려 함이다. 지금 이 정자에 사람을 계산하여 앉히는 데 있어,
틈이나 중간이나 변(邊)을 유루함이 없이 모두 쓰임에
맞도록 하자면 자세한 계산이 아니고서 어떻게 하겠는가? 바둑판 정간으로 비유한 것은 처음
설계할 때에 혼자서
표를 만들어서 현혹되지 않게 하자는 것이요, 남을 가르쳐 주자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정자를 짓는 데 그 아래에 바퀴를 타는 것이 옛날에도 있었는가?”
하기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취미에 맞도록 할
뿐이지, 어찌 반드시 옛것이어야 하겠는가? 옛날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으나 안처(安處)할 수 없으므로
비로소 기둥 있는 집을 세워 풍우를
막았는데, 후세에 와서 점점 제도를 증가하여 판(板)을 대어 높이 쌓은 것을 대(臺)라 하고,
난간을 겹으로 한 것을 사(榭)라 하고, 집 위에
지은 것을 누(樓)라 하고, 활연히 툭 틔게 지은 것을 정(亭)이라 하였으니,
모두 시기에 임하여 참작해서 취미에 맞는 것을 취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자의 밑에다 바퀴를 달아서 굴려 옮기는 것을
대비하는 것이 무엇이 불가한가? 비록 취미에 맞는 것을 취한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이유가
없겠는가? 밑은 바퀴로 하고
위는 정자로 한 것은 바퀴로 굴러가게 하고 정자로 멈추게 한 것이니, 행할 때가 되면 행하고 그칠 때가 되면 그치는
뜻이다.
바퀴를 넷으로 한 것은 사시를 상징한 것이고, 정자를 6척으로 한 것은 육기(六氣)를 상징한 것이며,
두 들보와 네 기둥을 한 것은
임금을 보좌하여 정사를 도와 사방에 기둥이 된다는 뜻이다. 아, 정자가 이루어진 뒤에는
마땅히 동지(同志)들을 맞아서 낙성식을 행하고 각기 시를
지어 그 자세한 것을 기록하게 해야겠지만,
이제 대략만을 취해서 먼저 친구에게 자랑하여 머리를 들고 성취되기를 기다리게 하는
바이다.”
신유년 5월 일에 기(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