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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로병사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고유의 권한이다. 현대의학이나 의사가 할 수 있는 몫은 오랜 임상을 통해 축적된 의술을 계승·발전 시켜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다. 이 땅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한 건강하게 사는 것은 복이며,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에는 인간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으며, 우리 몸은 하나님이 주신 성전이라고 했다.
의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인술이기에 최형주 박사는 인술에 사랑을 불어넣어 지구촌 곳곳에서 수십만 명의 환자에게 사랑의 무료봉사 인술을 폈다. 이제마선생 100주기(週忌)에 올려진 KBS-2TV의 특집드라마는 동무(東武)이제마(李濟馬 1837-1900)선생의 사상의학과 본인이 50여 년간 사상의학에 따른 임상교감을 통해 쓴 예언(“나는 가지만 1백년 후 온 세상은 사상의학(四象醫學)으로 귀일(歸一 )할 것이다”)을 드라마 화 한 것으로 장안의 인기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사상의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제마 선생의 예언이 적중함을 예감하고, 이제마 선생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셔온 명성한의원장 최형주 박사로부터 그의 교훈적인 생애와 비전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체질의학의 최고권위자, 한학자, 문학가로 구한말 혜민원(惠民院)의관 조부로부터 3대째 가업 계승
지리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 남원의 유복한 가정에 태어난 최형주 박사는 남달리 총명하여 4살 때에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기 시작해 한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후, 내의원 의관을 지내신 할아버지로부터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을 전수받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아버님은 한학자이시며 유림의 교령으로 완고하셨고, 어머님은 사찰의 보살로서 열심히 불공을 드리는 전통 깊은 명문가 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최 박사는 많은 책을 읽었는데 특히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성경은 그에게 큰 감명과 교훈을 주었다. 사대봉제사를 모시는 집안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3권의 성경책이 아궁이에 들어가기도 했고, 심한 꾸중을 들어야 했지만 성경의 심오한 진리는 그를 교회로 인도하여 부모님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신앙을 키워왔다. 어린 마음에도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병 고치는 사역이 너무나 부러워 ‘나도 크면 반드시 의사가 되어 예수님처럼 깨끗하게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당초의 목표는 수정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의사였다. 불치의 환자, 불치병을 예수는 완전하게 고쳐주었으며, 영육을 치유하시는 모습에 최박사의 마음은 정말 후련하였다.
한의대를 졸업한 청년 한의사 최형주는 지금까지 많은 의서를 읽었고, 공부도 많이 했으므로 의연 했다. ‘무슨 병이든지 와보라 반드시 고치고 말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내비치며 개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이르는 삼세한의원이란 간판을 걸고 문을 연 한의원에 막상 환자가 왔는데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그 환자는 약국, 병원에서 수술을 거친 환자로 사형선고를 받은 간경화증 환자로서 얼굴이 새까맣고, 패쇄성 황달이 진행돼 흑달이 된 불치의 환자인데 초보인 최 박사에게 온 것이다.
만일 이 환자를 못 고치면 무슨 망신인가? 최박사 그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을 뿐만 아니라 가문의 망신이란 생각이 들어 심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자 당신은 전능하시고 저는 부족하니 당신이 고쳐주세요’라고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치료를 하니 그 환자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죽는다고 들것에 실려 온 사람이 걸어 다니게 되니 온 동네에 소문이 나 일약 명의의 반열에 오르게 되니 이 같은 기적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재독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만성질환도 완치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잘 아는 재독 작곡가 윤이상 선생. 그 분의 명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지만 그분에게도 말 못할 질병이 있었다.
최형주 박사는 통일을 염원하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여 평양에 예술단이 있고, 남한에는 국악인들이 있고 해서 남북 예술 교류차원에서 민속교류를 해보자는 뜻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려고 하니 김일성에게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윤이상 선생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독일행을 결행하게 되었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독일에 가면 북한 정보원에게 납치될 우려와 목숨이 위태로우니 가지 말것을 종용했지만, 고집을 부려 가게 되었다.
막상 독일에 도착하여 윤이상 선생의 댁에 들르니 윤이상 선생은 숨을 몰아쉬며 걷지도 못한 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기관지천식, 신부전증으로 인공심장을 달고 있었다. ‘윤이상 선생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일을 진척 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돌보기 시작했다. 윤이상 선생은 사상의학적으로 태음인이어서 최 박사는 체질 침을 놓아주고 하나님께 매달려 뒹굴며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목숨을 건 기도를 하였다.
기도는 응답되어 4일째 되는 날 윤 선생이 걸을 수 있도록 쾌차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그날 윤이상 선생과 버스 4정거장 거리를 같이 걸어 식사하는 기쁨을 얻었으며 그해 4월 15일 윤이상 선생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의 서명을 받아오게 됨으로써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가족뿐만 아니라 윤 선생을 아는 재독 교민들도 모두 기뻐했다.
하나님을 주치의로 모시는 특별한 한의원
‘목사님 축하 합니다’ 를 성공으로 이룬 기도
어느 날 어떤 목사님이 중풍에 걸려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최 박사는 다짜고짜 '목사님 축하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환자 보호자로 온 사모님께서 화를 내면서 환자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항의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최 박사는 그 목사님을 본 순간 뜨거운 성령을 느꼈으며, ‘목회자이니까 기도로 치유하면 되겠다’하는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그 날부터 목사님 손을 잡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게 되었고, 2개월간 체질의학적인 치료와 기도로 목사님은 완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또 다른 신유의 은사를 받아 목사님이 기도하고, 안수하기만 하면 신경성 질병은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지금 이 목사님은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전국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으며 경향 각지의 신경마비환자를 치유의 능력으로 치료하고 있다.
그 당시 최 박사는 목사님께 제안했다.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를 포착했으니 이제부터 하나님을 주치의로 모십시다” 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여, 그 때부터 하나님을 주치의로 모시게 되어 지금까지 기도로 진료하고 있다.
간절한 기도로 불치병 환자 치유 기적
인간은 누구나 돈을 좋아하고 돈을 벌기 위해 수고 하고 있다. 최 박사는 본인의 진료 스케줄이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어 불우한 이웃의 질병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런 신앙 양심의 소유자이기에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유럽, 미주, 동남아 등지의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다 보니 그 수가 수만 명이 넘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병원을 왕림하여 돈을 받고 치료하는 환자들은 낫는 자도 있고, 낫지 않는 자도 있지만, 무료 진료한 환자들은 거의 완치가 되는 것은 환자를 대할 때 하는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최박사가 진료하고 다녀온 지구촌 곳곳에서는 감사의 편지와 고마움을 표하는 감사장을 보내왔으며, 환자들의 기쁜 소식을 들을 때 최 박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왼손이 한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무료진료 환자의 수를 밝히기를 꺼리는 최 박사를 간신히 설득하여 알아낸 숫자만도 수만 명 이상이며 슈바이처는 미국이나 영국의 선교자금을 받아서 봉사했지만, 최 박사는 모든 비용을 자기가 감당했다.
이는 사랑이 없다면 엄청난 노동이며 고역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하였기에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료봉사를 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사상의학의 실체, 이제마선생의 제자가 되어 체질의학의 전도자가 된 최형주 박사
“사상의학은 세계적인 우리문화의 정수이며 반드시 세계화 되어야 한다”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을 창시한 이제마는 함경남도 함흥 둔지에서 1837년에 출생하였다. 호는 동무(東武)이며 전주이씨 안원대군 휘 진(珍)의19대손으로 아버지 이반오(李攀五)는 4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동무는 넷째부인 경주 김씨에게서 태어났다. 그가 창시한 사상체질의학은 우리나라 의사학상(醫史學上) 불후(不朽)의 자취를 남겼다.
선생은 심오한 철학관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연구로 명저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통해 사상체질의학을 체계화함으로써 한의학의 새 지평을 열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의학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인간 본연에 순응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능동적 자세로 전환시켜, 오늘날 한의학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우한 운명을 타고나 국운이 쇠퇴한 어려운 시대를 살았으나, 타고난 총명성은 일찍이 경서(經書)를 통독하고 어려서부터 무예를 좋아했으며, 평소 특이한 재능으로 의학과 역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경향 각지를 주유(周遊)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배움에 힘썼다. 축적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1900년 일생을 마칠 때까지 「동의수세보원」의 퇴고(推敲)를 계속하였다.
선생이 창시한 사상체질의학을 간략히 요약하면, 사람의 체질을 오장육부의 대소와 성정(性情)의 차이에 따라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의 4종류로 나누며, 같은 병이라도 병보다는 환자의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임상학적(臨床學的) 방법에 따라 질병의 예방과 치료 및 양생(養生)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최형주 박사는 일찍이 운명적으로 한학자이신 할아버지로부터 한문과 함께 사상체질의학을 전수받다 보니 이제마선생의 생애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사상의학의 대가가 되어 28년 전에 독일어로 번역해 독일에만 4,000여명, 미국에 28,000여명의 사상의학자가 있고, 중국의 200여 한의대에서 사상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사상체질의학은 세계적인 것으로 우리 문화의 정수이며 체질감정 기준을 확립하여 반드시 세계화 해야 하며 그 중심에 최 박사가 서 있는 것이다.
■최형주(崔亨柱) 박사는 누구?
타고난 천재성을 가진 최 박사는 우리나라 한학에 있어서는 손꼽는 분으로서 여러 서적을 번역했고, 2004년에는 한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을 완역 했다.
지금까지 산해경, 이아, 주역참동계, 법언, 한문입문, 완역본 정관정요 등 70여 편을 번역 편찬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건강·의학서적 비방 1편과 2편에 이어 사상의학(독어판), 체질아 밥상차려라, 황제내경 소문 해역, 황제내경 영추 해역의 의서를 저술 하였으며, 무소유의 소유, 지리산 철쭉, 건강백세 등의 수필과 소설로는 ‘태양인 이제마’의 원작 “예언”을 쓰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해왔다.
본래 최 박사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재마 평전을 발표하였으나, KBS에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화된 글로 써달라는 부탁을 하여 쓰게 된 것이 예언(豫言)이란 제하의 소설로서 체질치료 현장에서 살펴본 이제마의 생애와 사상을 소설로 그린 것이지만 이는 모두 논픽션에 가까운 사실 검증을 거친 내용들로 이루어진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KBS 특집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가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시청자 누구나가 본인의 체질은 어디에 속하는지 우리 가족의 체질은 어디에 속하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TV수상기 앞으로 시청자를 끌어 들인 것이다. 주인공을 태양인 탤런트를 기용하려고 하였으나 탤런트 중에 태양인이 없어 소양인인 최수종 씨를 분장시켜 출연시킨 뒷이야기가 있다. 최 박사는 태양인 이제마가 방영된 이후 각처에서 강연 요청이 있었으며 본인의 진료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 사양할 때가 부지 기수였다.
2005년 8월에는 모 방송국 talk show에 출연을 하였는데 방송에 많은 시청률을 올렸으며 방송 이후 조회 수가 무려 900명에 육박하였다.
지금까지 최 박사는 사상체질의학을 하다 보니 환자의 진찰 시간이 3분이면 병세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사상의학을 복지부장관은 ‘미래지향형 의료의 지평을 여는 의학’이라고 하였으며, 지금은 대통령 주치의도 한의사를 주치의로 쓰고 있다.
그는 사상의학협회를 사단법인화 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조영길 국방부 장관에게 자문하여 이라크에 파병된 의무부대의 이름이 제마부대로 명명한데도 기여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명사들을 진료하였지만 앞으로 남은 생애도 저술활동과 사랑이 담긴 꾸준한 봉사와 헌신으로 인류를 위한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