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은 말 그대로 축구계가 들썩거린 한 해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그리고 화제 속에서 남아공 월드컵이 성행리에 마무리 됐고, 대한민국 대표팀도 마침내 원정 16강 진출의 쾌거를 일궈내는 수확을 올렸다. 유럽에서는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한 인테르가 단연 화제를 불러 모은 주인공이었으며, 2010년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빅4’의 헤게모니가 흔들리기 시작한 첫 해이기도 했다.
[사진: 2010년 한 해를 화려하게 장식한 ‘무적함대’ 스페인. (게티이미지/멀티비츠)]뿐만 아니라 2010년은 2000년대 이후 현대축구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1차 결산의 한 해’였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의 토털풋볼, 1980년대의 압박축구를 거쳐가며 그 골격을 완성시킨 현대축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 ‘공격’에 포커스를 맞춘 채로 발전을 거듭했지만, 2000년대 현대축구의 키워드는 분명 ‘수비’였다. 이러한 현대축구의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수비적이었던 2006년 독일 월드컵,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회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 이후 대두된 현대축구의 해결과제는 “강팀들은 약팀들의 밀집수비를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가” 라는 한 마디로 집약된다. 어쩌면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은 일종의 출발점과도 같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압박과 스피드’로써 강팀들에 맞불을 놓던 약팀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대신 이들이 꺼내든 무기는 ‘밀집수비 전술’이었다. 또, 이러한 밀집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한 강팀들의 공격 전술이 세밀하게 발달하기 시작하자, 약팀들은 이를 견뎌내기 위해 더욱 수비 조직을 강화시키는 길을 선택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약팀들의 생존방식이 보다 수비적으로 변화된 이유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오프사이드 규정의 완화, 둘째는 역습 전술의 발달이다. 피파(FIFA)는 2000년대 들어 공격축구를 장려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오프사이드 규정을 공격 측에 유리한 쪽으로 개정시켰지만, 이 방침은 도리어 약팀들을 더욱 수비적으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듯하다.
1990년대 이후, 전진수비에 의한 압박축구는 약팀들이 강팀들을 상대로 맞불을 놓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수비 라인을 끌어올려 강팀들이 개인기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숨 쉴 틈 없이 압박하고, 그 직후 빠른 역습으로 수비 뒷공간을 공략하는 방식의 축구는 타고난 기술을 갖추지 못한 팀들에게 일종의 돌파구를 제공했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규정의 완화는 약팀들이 높은 수비 라인을 유지하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강팀 선수들의 뛰어난 개인기에 압박이 한 두 차례 벗겨지면, 약팀의 수비 뒷공간이 무너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강팀들이 도리어 약팀들을 역습으로 무너뜨리는 장면이 속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중요한 힌트 한 가지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로, 호날두와 루니, 테베스, 긱스 등이 이끄는 2000년대 중후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점을 가장 잘 활용했던 팀 가운데 하나였다. 맨유는 지난 2006/07 시즌과 2007/08 시즌 당시 엄청난 역습축구로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는데, 당시의 맨유는 공격축구에 기본 밑바탕을 두되, 오프사이드 규정의 완화로 인해 위로 올라오는 약팀들의 수비 뒷공간을 무너뜨리기가 쉬워졌다는 점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 호날두를 앞세운 맨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역습이었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페인 라 리가에서도 이야기는 다르지 않았다. 스포르팅 히혼, 바야돌리드와 같이 ‘용감한 공격축구’를 펼치는 중하위권 팀들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에 대책 없이 무너지는 장면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결국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한계를 실감한 약팀들이 대부분 수비축구로 노선을 변경하고 말았다. 한 때 ‘남자의 팀’으로 불리며 라 리가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포르팅 히혼조차 이제는 소극적인 수비축구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현재 라 리가 중하위권 팀들의 성향은 90년대 이후 가장 수비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이러한 흐름이 총괄적으로 반영된 ‘수비 축구의 향연’과도 같았다. 거의 모든 중위권 팀들이나 그 이하의 약팀들은 밀집수비로 강팀들의 공격을 틀어막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공격축구를 전통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스페인, 브라질, 네덜란드와 같은 강팀들조차 그 어느 때보다 수비에 많은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장기 리그전이 아닌 월드컵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강팀들마저 ‘전진수비에 의한 압박’이 아닌 ‘상황에 따른 밀집수비 전술’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 현대축구의 흐름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대축구의 공격 전술이 이러한 밀집수비 전술을 확실하게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 발생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70년대 토털풋볼이 이탈리아의 60년대 카테나치오(빗장수비)를 보기 좋게 무너뜨렸던 것처럼, 이제 현대축구의 공격 전술은 또 한 번의 발전이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최근 유행하고 있는 밀집수비 전술은 ‘현대식 카테나치오’와도 같다. 그만큼 2000년대 이후 각 팀의 수비 전술과 조직력은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발달해 있다.
무리뉴 감독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축구 수비 전술의 발달은 1990년대부터 도래한 정보화 시대의 흐름, 더 나아가 미디어 기술 혁신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쉬운 예로, 이제는 바다 건너 대한민국의 축구 마니아팬들조차 유럽 팀들의 세세한 정보들이나 최근 소식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프로 전문가들에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자료들이 손에 쥐어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대에는 선수들이 DVD나 각종 영상 편집자료 등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경기 준비과정을 가져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199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현실로 구현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사진: 과학적인 경기 준비의 대명사, 조제 무리뉴 감독. (게티이미지/멀티비츠)]상대의 플레이 패턴이나 부분전술 등을 미리 파악한 채로 경기에 임한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공격수보다 수비수에게 혜택을 가져다 준다. 좋은 공격 장면은 타고난 개인기와 창조성, 즉흥적인 부분전술에 의해 연출되기 쉽지만, 좋은 수비 장면은 잘 짜여진 조직과 전술적 준비에 의해 연출되는 경우가 많다. 알기 쉬운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만약 아리엔 로벤이 오른쪽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를 시작한다면, 이제는 상대 선수 뿐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는 축구팬들조차 로벤이 우측을 파고들어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기보다는 중앙으로 쇄도하며 슈팅이나 패스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즉, 2000년대 현대축구의 수비 전술 발달은 위와 같은 ‘정보의 노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준비’ 등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셈이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현대축구의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정의가 내려졌다. ‘현대식 카테나치오’에 비유되는 밀집수비 전술을 격파하기 위한 공격 전술의 완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월드컵은 결과지상주의와 수비적 실리축구의 지배를 받는 지루한 축구대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고, 유럽 챔피언스리그도 비슷한 흐름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더 나아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라 리가와 같이 공격 성향에 기반을 둔 빅리그들의 흥미도 역시 점차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축구의 공격 전술은 밀집수비 전술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떠한 변화의 길을 걸어 왔고, 또 걸어가야 할까? 이를 살펴보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은 현대축구에서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최전방 공격수, 측면 날개, 그리고 풀백과 센터백들의 역할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2편에서 계속.
-사커라인 이형석-
<‘국내 최고 축구전문 뉴스 & 커뮤니티’ 사커라인(www.soccerline.co.kr) 저작권자 ⓒ 사커라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출처 : 사커라인
http://www.soccerl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