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답사 38＞ : 서울 둘레길 - 관악산 코스

[흐르는 등불]

서울 둘레길 - 관악산 코스

1. 석수역과 사당역 사이, 삼성산과 관악산 둘레길 코스를 걸었다. 길이 약 13km, 시간은 6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 지역은 경험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매우 익숙한 장소이다. 서울 서대문에서 살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현재의 금천구 시흥동으로 이사하였고, 대학 입학하면서 신월동으로 이주할 때까지 약 12년간 거주하였던 곳이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교가를 부를 때마다 ‘삼성산’을 외쳤고, 신림동 중학교 시절에는 항상 배후에 관악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구나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자연의 흔적은 남아있다. 나에게는 바로 삼성산과 관악산이 바로 그러한 장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서울둘레길(관악산 코스)를 석수역에서 출발했다. 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산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산길은 이제 표준화되어 있다. 산길로 들어서면 어느 곳이나 비슷한 풍경이 계속된다. 이러한 익숙함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무로 가득찬 숲의 포근함은 때론 지루함을 준다. 더구나 하늘이 막혀있는 상황은 개인적으로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같다.

3. 관악산 코스 초입 부분 안내판에 ‘호암산’이 보인다. 호암산은 삼성산과 붙어있는 같은 줄기의 산이다. 바로 어렸을 적 직접적인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이다. 서울둘레길 코스를 살짝 벗어나 ‘호암산’으로 올랐다. 호암산은 주변에 더 높은 산들이 자리잡고 있어 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이다. 바로 바위들이 집결된 모습을 통해 전달되는 강인함이다. 단단한 바위들의 군상을 보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이곳을 찾아 병정놀이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바위 위에서는 광활한 주위 풍경이 하나로 들어온다. 높지는 않지만 멀리 바라보이는 풍경은 새파란 하늘과 함께 아름다운 장면을 전개하고 있었다. 호암산이란 명칭은 멀리서 보면 이곳이 ‘호랑이가 엎드린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호암산에는 조선 시대 중요한 서울의 방어망이었던 ‘호암산성’의 흔적도 보였다.

호암산에서 조금 내려가면 호암산이 지닌 호랑이의 기운을 줄이기 위해 세워진 ‘호압사’가 보였다. ‘호랑이’는 한국인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두렵지만 강렬한 힘이 주는 인상은 호랑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호압사’와 같은 심리적 방어망을 만들거나 사람들의 희생을 막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치안업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산신으로, 해학스러운 ‘까치 호랑이’로 친근하게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두렵지만 결코 박멸의 대상이 아닌 경외의 대상이 바로 호랑이였다. '호압사‘ 앞 공간에는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불법 비디오 근절 광고가 생각난다. 불법 비디오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전래 동화를 패러디한 내용이었다. 과거의 가장 컸던 공포 중 하나는 이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새로운 공포가, 익숙지 않은 불안이 대체하고 있다.

4. 호암산을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최근 꾸준하게 걸은 효과라 생각되었다. 높지는 않지만 산 정상까지 별 어려움 없이 등반할 수 있었다. 삼성산을 지나 관악산 쪽으로 이동하는 코스에 접어들었다. 바로 그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왼쪽 허벅지에 근육경련이 시작되었다. 특별하게 힘이 들지도 않았고 무리하게 속도도 내지 않았음에도 일어난 경련 현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의 반응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한 후 아랫방향으로 걸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서울대를 지나 관악산 코스로 오르면서 경련이 시작되었다. 한번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더 이상의 산행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약 6km 정도 남기고 중단해야 했다.

그런데 특이한 징크스가 떠올랐다. 다리 경련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 아닌데, 유독 ‘관악산’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컨디션도 최상인 상태에서 발생한 것도 동일했다. 15년 전 쯤 관악산 등반 때 몸이 매우 가벼워 사람들을 제치고 빠르게 정상 쪽으로 이동했었다. 약 2시간 쯤 가던 중 갑자기 다리 경련이 시작되었다. 심각한 다리 경련은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119를 불러야 할지를 고민할 정도로 다리 경련은 오래 지속되었다. 약 1시간 이상을 휴식한 후에야 조금 다리의 통증이 적어지는 것을 느꼈다. 엉금엉금 다리를 절면서 내려와야 했다.

그때에는 몸상태가 좋더라도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무리하지도 않았고 몸상태도 문제가 없음에도 똑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10년 전 쯤 관악산에서 과천 쪽 코스 때에도 유독 힘든 경험을 했었는데, 관악산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 거부당한 느낌이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징크스를 깨기 위한 트레킹을 다시 시도해야 겠다. 불쾌한 경험은 그 자체와 두려움 없이 직면해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믿기에, 관악산이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우연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걸음을 다시 출발해야겠다.

[보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의 당혹감이 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