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족문(傷足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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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에 밤잠 설치다가 잠시 눈을 붙였었다. 새벽 4시경에 한기를 느끼고 홑이불을 끌어다가 배 위를 덮는데 무릎아래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무슨 얘기를 하는가?’
나는 자는 체하고 가만히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거 봐, 저 이는 이불을 끌어다가 배만 덮잖아.”
“너도 추워서 찌릿하니? 나는 그렇다. 내가 너를 덮어줄게”
자기가 나라고 말하는 오른발이 왼발의 발목을 감싸주었다.
“고마워.”
“고맙긴, 네가 열하루 동안 24시간 내내 나를 돌봐 준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나 때문에 너가 되어버린 왼발이 말했다.
“그런 의미로 이 순간부터 한 시간만 나에게 ‘나’가 되게 해주면 쌓였던 할 이야기 있다.”
나는 살짝 긴장이 들었지만, 그가 내게 보여준 열하루 동안의 진심어린 보살핌에 비하면 그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요청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징징대지 않는다면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어줄게.”
“내 기억으로는 네가 이번에 종아리 근육 파열로 심하게 힘들어 하는 것 잘 알아. 엄살이 절대 아니라는 것도 알구, 그리고 지금 회복 상황을 봐서는 평균적인 40일 치료기간도 넘길 수도 있을 거란 것도 잘 알아.”
오른발이 왼 발목을 톡톡 쳤다,
“잠깐, 그건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어. 벌써 10년 쯤 지났었나? 그때 오른팔 어깨가 파열되었을 때도 ‘오십 견’이니, ‘인대가 나갔다’니 하면서 그 손으로 1~2센티도 위로 올리지 못하고 잠잘 때도 왼팔을 지렛대로 오른팔을 올려놓고 밤새도록 통증을 느꼈던 그때, 저 이는 주변의 수술한 다른 환자와는 병원에도 가지 않고, 달리 야구공 하나를 들고 조금씩 흔들며 1년 후, 완전 치유가 되었잖아. 그때도 저 이의 부인으로부터 병원 안 간다고 잔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우리가 잘 알잖아.”
“그건 그렇지, 그렇지만 병원 의사로부터 다른 사람처럼 수술을 받든지 재활 치료를 받았으면 치료 기간이 훨씬 단축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어.”
“그때 오른손이 불구였으므로 그와 짝인 왼발인 내가 균형을 잡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단다.”
“그건 그래, 그 이후 곧바로 왼손도 똑같은 증상이 왼쪽 어깨에도 왔었잖아.”
“맞아, 그때는 네가 고생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학습효과라는 것이 있었어. 치료 방법을 터득한 저 이가 이번에는 6개월 만에 자생요법으로 완치시켰잖아. 그래서 아까 말한 40일간 치료의 일반적인 견해는 틀릴 수도 있어. 저 이가 10일을 단축한다고 자신하잖아.”
“그래, 나도 저 이의 고집과 신념은 믿어주는 편이야. 아니 어떨 때는 참 불쌍해 보이기도 바보스럽기도 해.”
“시간이 점점 가고 있다. 저 이가 최소한 다섯 시쯤이면 기상할 테니 내게 꼭 하고 싶었던 얘기를 어서 해봐.”
“정말 시간이 빨리 가네. 내가 지나간 큰 사건 세 가지만 얘기 하마.”
나는 두 다리가 하는 말을 안 듣는 척하느라 배에 올려놓았던 홑이불을 확 펼쳐 던졌다.
“쉿, 작게 조용히 이야기 하렴, 이불이 침대 아래로 떨어졌으니 눈만 뜨면 다 보이잖아.”
왼발이 오른발의 발목을 톡톡 치고 종아리도 꾹꾹 눌러주면서 말을 이었다.
“맨 처음 사건은 저 이가 열 서넛 살에 태권도 유단자가 되고 또 2단이 되었을 때야. 그때 저이가 키도 작고 우리의 길이도 짧았을 땐데, 도장 천정의 가로기둥에 매달아 논 수련 백을 이단 앞차기로 차다가 백에 닫지 못하고 떨어질 때 저 이가 오른쪽 넓적다리 쪽으로 떨어지는 통에 대퇴골을 크게 다쳤잖아. 그 때에 나는 왜 너 쪽으로 떨어진 줄 몰랐어.”
“그냥 운동 신경이 그랬거나 오른발을 허공으로 찼기 때문에 힘의 직진 원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런데 그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요즘은 받고 있거든.”
오른발이 다시 왼발의 발목을 감싸주려고 발을 왼쪽으로 비비며 올려놓았다.
“그럼 뭘까?”
“흐흐흐, 간지럽군. 내 생각으론 말이야. 우리 둘 중에 나는 늘 너의 앞잡이로 쓰는 것 같아. 만약 어떤 일이 생기면 너를 보호하기 위하여 나를 희생시킨다는…, 뭐 그런 운명적인 이유일 것 같아.”
“잠깐, 그건 불공평하고 또 논리적이지도 못하군, 그렇다면 그 때 허공에서 왜 왼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바로 그 의문을 이번에 너의 근육이 파열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야.”
오른발이 왼발을 쉬지 않고 문질러주었다. 사실은 죽은피가 도느라고 발목으로 내려와 간지러워서였다.
“왼발은 말이야, 저 이가 내딛는 발로 사용하거든. 그러니 왼발이 아프면 첫발을 내딛지 못하는 거야. 그러면 다음 발을 어떻게 떼겠어.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는 거야.”
“아하, 그래서 너를 먼저 세워서 나를 이끌어 세우는구나. 조금 이해가 될 듯해.”
“그래서 저 이는 나를 믿고 다친 그 날 하루 얼음찜질을 하더니, 그날 저녁에도 3층 계단을 질질 끌고 오르고 심지어 사다리를 타고 옥상의 비둘기똥밭에서 고추에게 물을 주는 일을 하지 않던가!”
“맞아, 그 때 나는 퉁퉁 붓기 시작하는 때라서 너무 아파서 원망을 많이 했었지.”
“그때 저 이가 부인에게 하던 말이 생각이 나니?”
“아니, 그 때는 내가 아파서 정신까지도 잃었을 때라…….”
“그때, ‘이 사람아, 죽어가는 고추가 먼저지 이까짓 것 발이 문제야!’”
하고 큰 소리가 오갔잖아.
“그랬었나? ‘이 까짓 것’이라고 했다고!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쉿, 조용히 하라고. 듣고 깰 지도 몰라.”
새벽바람이 창문의 햇빛가리개에 부딪히니 그 가리개가 다시 창에 부딪혀 딸각 소리를 내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두 번째 이야기를 할게.”
“그 사건으로 저 이는 일생동안 남들은 모르는 불편함으로 살았잖아.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삼십대 초반에 그 부위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 거야. 걸을 때도 너를 옆차기 하면서 살았잖아. 다행히 캡슐에 담긴 인삼 엑기스를 몇 달 복용하고는 고치는 듯했어.”
“맞아, 그 엑기스 참 내게는 받더군. 그 이후로 몇 번 더 먹었었지. 아홉 번 찐 홍삼을 달여 먹기도 하고 최근에는 둘째 며느릿감이 선물해 줘서 먹었고.”
“두 번째 사건은 저이가 그 학교에서 옮겨 아주 작은 변두리 학교에 근무할 때였어.”
“음, 그럼. 30년 전쯤이군.”
“그래, 그때 하기휴가 때지만 충무수련원에서 새마을연수를 받을 때 일이 일어났지.”
“생각이 나는 군. 그 곳이 아마 현충사 부근이었지.”
“이 때도 새벽에 배구할 때에 일어났지. 키도 크지 않으면서 전위에 서서 블로킹을 하다가 내려오면서 네트 건넌 저쪽 선수의 발이 이쪽으로 넘어오고 그 위로 저 이의 발이 내려오다 비껴 밟으려다 발목을 접질려진 사고였지.”
“맞아, 그때 내 발목이 심하게 다쳐서 퇴소하고, 깁스하고 40일간을 발을 높은 곳으로 올리고 치료하여야 낳는다 했었어.”
“그런데 국가주의라는 게 다 그렇잖아, 한두 연수생이 불구가 되더라도 소모품 취급받는 세상 아니었어.”
그때 나는 발목을 다치고도 행복했었다. 거기서 많은 동기생을 만났는데 나를 알아보더군, 그리고 후배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몇몇은 나를 눈여겨보고 다가오곤 했었지. 그곳은 남녀유별이라 철저히 남자와 여자를 창살로 가로막아 격리를 한 곳이었어. 그러니 연수받는 장소에서나 옆으로 서로 보고 웃을 뿐이었지. 일과 후, 밤에는 창살을 마주하다가는 점호시간엔 헤어지곤 했었다.
연수를 끝내고 돌아오니, 곧바로 가을운동회 준비를 해야 했어. 내가 담당이라서 임시로 한 가 깁스를 끊어버렸다.
“저 이가 깁스를 끊고 지팡이도 버리지 않았어. 그 바람에 내가 왼 깨금발로 통통 튀면서 운동장을 뛰어다녔지. 한 달 동안 운동회를 준비하고 다니는 바람에 언제 네가 나을 새가 있었겠나? 너는 아팠고 나는 고생을 했지.”
“야, 두 번째 이야기를 들으니 저 이가 참 얄밉군, 가만히 병원에 들어 누우라고 진단서를 끊어주었겠다, 또 연수활동 중 사고니 국가가 보상 치료해 주는 것을 왜 마다했을까?”
‘정의로운 사람은 자기희생을 국가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고 변명해 주고 싶었지만 둘이 오래 만에 진지한 대화를 하는 것 같아 미동도 하지 않고 귀를 쫑긋 세웠다.
“세 번째 이야기를 서둘러야 해라. 저 이는 다섯 시면 틀림없이 일어날 거야.”
“꼭 그런 거는 아니지만 오늘은 네 예감이 틀리지 않을 거야.”
건넌방 부인이 방에서 나와 저 출입구 쪽에 있는 화장실로 향하는 소리가 났다.
둘은 순간 불안했다.
‘에그그, 일이 글러질 줄 몰라.’
“그 이후에 동학사에 갔다가 갈마동에 내려 버스를 갈아탈 때의 일이 기억나니?”
“내게 되묻지 말고 이야기 해 보렴.”
“그 때 막 떠나는 차에 저 이가 자랑하는 그 빠른 운동 신경으로 닫히는 문에 왼손과 나를 밀어 넣는 찰나에 차의 문이 닫혔어. 온몸이 매달린 채로 50여 미터이상을 끌려가던 그 아찔한 사고 말이야.”
“그 사건은 문을 열고 출발한 운전자의 부주의가 아니면 떠나는 버스를 타려 했던 저 이의 과실이겠지. 하여튼 두 사람이 서로 미안하다고 끝난 사고였잖아.”
“그 사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먼저 뛰어올라 버스 계단을 디디고 왼손이 버스 문간을 잡고 버틴 행태였었어. 그러니까, 너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 같아.”
“너는 그랬니? 디딜 곳 없어 허공에 허우적거리던 나의 불안함은 어쩌구. 만약 그때 길바닥에 떨어졌다면 내가 또 크게 다치지 않았겠니?”
왼발이 결정적인 말을 했다.
“참, 너는 모른다. 너는 두 번째 사건에서 깨달은 것이 없구나! 우리가 너무 대화를 하지 않아서 서로의 논점이 다르구나.”
“두 번째 사건에서 뭘 깨달아야 했었는데? 몰라서 묻는 거야. 알면서 떠 보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충무수련원에서 발목을 다치고 후배 여인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했잖아. 그것이 오히려 아팠으나 행복했었다고.”
“나는 65년 동안 네가 다치고 저 이의 관심과 사랑을 홀로 독차지를 했지만, 나는 단 한 번 도 저 이의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오른발인 내가 순간 명치 급소를 주먹으로 맞은 것처럼 먹먹해졌다.
“축구를 할 때도 그랬지. 태권도를 할 때에도 나는 맞고 너는 차고, 축구를 할 때도 내가 딛고 너는 골을 넣고. 가끔 내게 기회를 줘서 골인을 못 시키면 화를 내고, 야구를 할 때도 나는 앞으로 크게 내밀며 힘을 주고 너는 그 다름 동작으로 끌려나오고. 운동화를 신을 때도 하인처럼 부려먹으려고 나부터 먼저 숟가락질을 하고 너는 도련님처럼 내 부축을 받아서 거드름을 피우며 일어나고, 하나부터 열까지 관심과 사랑에서 나는 너와는 차별을 받았어.”
“너는 아직도 아픈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고통인지 잘 모르는구나!”
“모르긴 뭘 몰라. 그 네 종아리 근육 파열로 아팠던 날. 비둘기똥밭에서 내려오면서 사다리에 입구 알루미늄 덮개 요(凹) 날카로운 칼날부분에 내 무릎 뼈가 찍혀서 피가 났었지. 지금 이 순간까지 피가 나고 아직 낫지 않았는데도 손만 벌리면 닿을 곳에 있는 연고도 발라 주지 않고 먼 냉장고 속에 얼음은 꺼내서 너의 종아리만 문지르지 않던?”
“…….”
문득 울컥한 분위기로 바뀌자 무안해진 오른발이 슬쩍 다리를 내려놓는다.
나는 더 이상 자는 체 할 수가 없었다. 새벽바람이 더 세게 불어 가리개가 창문에 더 큰 소리로 딸깡딸깡 부딪힌다.
일어나 앉아서 왼발의 정강이뼈를 꾹꾹 눌렀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로부터 위로 누르니 아픈 곳이 느껴졌다.
‘아, 아, 이곳 뼈가 아프구나. 너도 아팠겠구나!’
다시 종아리 근육을 부드럽게 주물러 주었다.
오른발이 가만히 보고 있다가 저는 저대로 굽혔다 폈다 반복한다.
네가 나의 부분이 되어 운명을 함께 한지 65년 동안, 단 한 번도 너를 주물러 주지 못했구나!
그가 65년 동안 처음 받아 본 관심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손을 오른발로 슬며시 밀어낸다.
까막 새벽이 열리니 여우비라도 뿌려줌직한 날씨인가? 어디선가 빗물인 듯 회한의 눈물을 삼키며 털고 일어났다.
“둘 다 잘 들어, 30일 만에 낫고 말 거야. 그 이상은 용서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