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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고 자유롭게
현충일을 낀 3일간의 연휴가 끝나는 6월 6일. 이태원성당 성가대원들과 함께 하루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경춘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지루함을 달래려니 자연스럽게 웃음 나는 수다가 오고간다. 할머니 과에 속하는 자매가 바깥 풍광을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월은 ‘여왕의 계절’이라고 하잖아. 그러니 우리가 여왕이지 뭐.” “네? 그런 말도 있었나요? 그리고 지금 오월이 아니라 유월이거등요.” “오월이나 유월이나 그게 그거지 뭐. 아무튼 난 여왕이야.” 문득 어린 날 앞집에 살던 내 친구 상회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많이 배우지 못한 그녀는, 유식한 말을 듣게 되면 그 말을 잘 새겨두었다가 한 동안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꼭 그 말을 넣어 사용했다. 어느 날 우리 집으로 들어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해도 너무들 헌다. ‘인간은 동물의 감정’인디 그러먼 쓰겄어?” 우리 칠남매는 모두 쓰러졌고, ‘인간은 동물의 감정’이라는 이 명대사는 한 동안 우리 집 유행어가 되었다. “고백성사를 보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칭찬은 코끼리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웃음이 나서 혼났어요. ‘코끼리가 아니라 고래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 고백성사 내용에 집중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나 같으면 ‘코끼리가 아니라 고래’라고 말씀드렸을 거 같아요. 그러고 나면 고백성사 분위기가 한결 자연스럽고 편안할 수도 있었을텐데요.” 고백소 안에서 일어난 일은 공개하지 않도록 되어있지만, 중요한 고백 내용이 아닌 주변상황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은 참으로 많다. 내가 아는 후배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느라고 주일미사를 계속 못나가게 되어 고백성사를 보러갔는데, 마침 외국인 신부님이셨다. 생계 때문에 미사참석을 못하는 사연을 자상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소통이 잘 안 될 것 같으니 이렇게 했다고 한다. “신부님. 저는 고백성사를 보고나서도 계속 같은 죄를 또 지을 수밖에 없으니, 나 같은 놈은 고백성사를 볼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형제를 께속께속 솰랑~하십니다.” “괌사합~니다.” “따라하지 마십시오.” 어눌한 외국인 말투를 따라했다가 지적을 받은 이 상황이 고백소 안이라고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렇다. 칭찬은 코끼리나 고래뿐만 아니라 사람도 춤추게 한다. 지천명을 지나 육순으로 가고 있는 이 나이에도, 칭찬받고 신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해 가을, 안성 시립도서관의 초청으로 시노래 콘서트가 열렸다. 여러 시인의 시로 내가 만든 노래들을 듣거나 부르면서 그 안에 담긴 삶의 영성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시낭송대회에 이어서 진행되었기에 함께한 분들의 가슴에 시심이 한껏 고조되어, 노래 부르는 나도 참으로 행복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신 조아라 선생님은 시를 가르치는 분인데, <한국헤세문학회>에서 주최했던 ‘헤세의 시노래 콘서트’에서도 만났던 분이다. “김 선생님의 노래가 담긴 음반이 몇 개나 되는지요?”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삼십 개는 되지 않을까요?” “그 음반을 모두 두 벌씩 사고 싶어요. 한 벌은 집에서 듣고, 한 벌은 일하는 사무실에서 듣고 싶어요.” “제 노래가 일반적인 가요랑 다를 것은 없지만, 상업가요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아 ‘예술가요’라고 하구요. 그 외에도 민중노래와 비슷한 내용인 ‘희망의 노래’가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동요라고 불리는 ‘어린이 노래’와 연주곡, 그리고 제가 가톨릭교회 안에 정착시킨 ‘생활성가’라는 장르까지 다양한데 다 보내드려요?” “김 선생님이 만드셨거나 부른 것이라면 다 좋아요.”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해 두고 가끔씩 상기했지만, 다른 일에 정신을 쏟느라고 바로 보내드리지 못했다. 반년도 더 지나버린 이번 봄에야 음반을 챙겨보니 스물여섯 장이었고, 두 벌씩이니 쉰 두장을 택배로 보내드렸다. 며칠 후 백 사만원이 입금되었기에 전화를 드렸다. “음반 값이 너무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요. 만 원씩이지만 한꺼번에 구매하셨으니 20~30% 가량 할인되어 사십 만원이면 되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한꺼번에 받고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한 동안 그 노래들을 들으면서 행복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일반매장에 음반가격을 물어보니 만이 천 원에서 만팔 천 원 사이였어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이니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고 싶어서 값을 이만 원으로 정했어요. 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기도 해요.” 순간 신이 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물론 돈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돈보다 더 큰 기쁨은 누군가 내 노래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값을 치르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딱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 그것이 내가 계속해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이유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들은 얘기가 있다. CD라는 매체가 나오기 전인 LP 시절, 미국의 어느 가수가 음반을 딱 한 장만 발매를 했는데, 가격이 우리 돈으로 일 억원 정도였다. 기꺼이 그 돈을 내고 사간 사람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항의를 하는 팬들과 상업매체를 향해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들 생각해 보세요. 화가가 그림을 여러 장 그리는 거 보셨삼? 내 노래가 그림과 달라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가치의 유일성을 위해 저는 매번 한 장씩만 발매하고 원하시는 분께 선착순으로 판매합니다.” 괴팍한 예술가의 궤변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겠지만, 내게는 자신의 예술을 스스로 관리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여겨져서 신선했다.
내 노래의 가치를 세상에서 가장 높게 평가해준 팬 덕분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봄날, 대전 목원대에서 다시 ‘헤세의 시문학 콘서트’가 열렸다. 벌써 네 번째 초청이다. 헤세의 시로 내가 만든 노래는 4곡뿐이어서, 같은 노래를 우리말로도 부르고 헤세가 사용했던 독일말로도 부른다. 또한 헤세문학과 연관된 노래를 더 부르다 보니, 한국 시인들의 시로 만든 노래와 함께 독일 가요들도 부르게 되었다. 독일의 가수 니꼴레가 17살 때 최연소자로 출전한 유러비젼 콘테스트에서 불러 그랑프리를 차지한 ‘작은 평화’와 그 후로 발표한 ‘노인과 바다’는 내 목소리에도 잘 어울리고 내용도 맘에 들어서 자주 부르게 된다. 콘서트가 끝난 목원대 콘서트홀 입구에는 내 노래가 담긴 음반들이 전시판매되고 있었고, 독문학과 교수 몇 분께 싸인을 해드리고 있었다. “‘작은 평화’라는 노래가 좋아서 샀어요. 콘서트에서는 독일어로 부르셨는데 음반에는 영어로 되어 있네요. 독일어로 부르니 참 좋던데, 독일어로 녹음된 건 없나요? 꼭 독일어로 듣고 싶은데.” “녹음된 건 없지만 꼭 원하시면 녹음을 해 드려야지요.” “그러면 미리 음반 값을 드리고 선불주문을 하겠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간절하게 원하는 분들에게 그렇게 약속을 하고 말았다. 한곡을 녹음하나 열곡을 녹음하나 똑같은 장비가 필요하고, 기울이는 노력과 시간도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녹음을 해본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자꾸 미루면 더 어려워지기에, 어느 봄날 밤 독한 맘먹고 그 한 곡을 녹음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4시간 걸렸다. 35년 동안 지구촌 곳곳에 초청되어 대중들과 노래를 통해 만나다 보니, 언어를 다 습득하지 않았더라도 외국어로 노래해야 할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영어는 물론이고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일본어까지 여러 나라 말로 불러야 했다. 대부분 통역을 해가면서 나의 모국어로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소통을 위해 듣는 이들의 모국어로도 한두 곡쯤은 부르게 된다. 그런 일을 위해 내 노래 중에서 몇 곡은 여러 나라 말로 번안되어 있고, 또 처음부터 외국어로 만들어진 노래도 꽤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잘 안 쓰는 외국어로 노래한다는 것이 매번 쉽지 않다. 평소 노래연주에 관한한 어떤 연습도 하지 않고 자연발성으로 자유롭게 노래하는 나이지만, 외국어로 할 때면 꼭 미리 발음연습을 철저하게 한다. 또한 콘서트에서 한 번 부르고 지나가는 것과는 달리 녹음은 전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볼 수 있다. 녹음된 연주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반영구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보다는 발음을 철저하게 하느라고 봄날 하룻밤을 다 샜다. 이렇게 서너 사람에 불가한 수용자를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원천은 어디인가? 누군가 내 노래를 꼭 필요로 하고 있고, 내 노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주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테면 김정식이라는 노래예술가의 음반 52장을 104만원의 가치로 여겨주신 조아라 선생님 같은 팬이 있기에, 누군가에게 단 한 곡의 노래를 녹음해주기 위해 4시간 동안 비지땀을 흘리는 가수가 있는 것이다. 칭찬은 춤을 추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칭찬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여, 내재되어 있지만 아직 발산되지 않은 능력을 끌어내어 주고, 인간의 한계라고 느껴지는 일을 극복할 수 있게도 해준다. 또한 칭찬하는 일은 스스로에게도 가능하다. 나는 자주 나를 이렇게 칭찬해준다. ‘김정식은 좋은 사람이야. 김정식은 참으로 어진 심성을 지녔어. 김정식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진정한 예술창작인이야.’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마음 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고, 가능하면 자주 나를 격려하고 칭찬함으로써 내안에 깃든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싶다. 성취욕구가 없고 소극적이어서 발전이 없는 것이라고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발전하고 싶지 않고 무엇을 성취하고 싶지도 않다. 내 앞에 다가온 오늘을 성실한 최선을 다하여 살고 싶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기쁘고 자유롭게.
사진 고태환 *격월간 <공동선>2011.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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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 bißchen Frieden (작은평화) 작은평화(독일어버전).mp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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