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승규 교수는“나이가 오십이 넘으면 수술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 외과의 나쁜 전통이 있다”며“나는 은퇴 직전까지 수술 을 하겠다”고 말했다. /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이 교수도 서울대 의대 출신인데 서울대병원에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섭섭하지는 않습니까.
"저는 환자에게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환자가 저를 믿지 못하면 미국이나 일본의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권유합니다. 믿지 못하는 데 어떻게 생명을 맡기겠습니까."
―항상 그렇게 환자들에게 단호합니까.
"환자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좌우됩니다. 확신을 가지고 '당신의 상태로 봐서 이 수술이 제일 적합하다'고 권유해야지요. 이런저런 수술법이 있는데 어떤 걸 택하겠느냐는 의사도 있는데 그건 의사 자격이 없는 겁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과 물건 파는 건 다르잖아요."
―간 이식 수술의 대가가 된 것도 서울대로 못 간 것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 제가 간 이식 수술을 본격적으로 배운 게 서울대 의대로 가겠다는 꿈이 좌절되면서부터입니다. 고대 의대에 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어요. 의사로서 평생을 버티려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해야 하잖아요. 민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간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제가 1974년부터 78년까지 서울대에서 레지던트 할 때 간암 수술을 딱 한 번밖에 못 봤거든요."
―아직도 서울대 의대로 못 간 게 후회가 됩니까.
"제가 서울대 의대로 갔으면 안주하고 말았을 겁니다. 고대로 가면서 도전하려는 열정 같은 게 생겼지요."
―칼잡이라는 별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데 혹시 집에서 고기 같은 것 자를 때 솜씨를 발휘합니까.
"어느 일식집에 갔는데 저를 초대한 분이 주방장에게 '이 분이 한국 최고의 칼잡이'라고 하니, 그 주방장이 생선 써는 시범을 보이더군요. 의사는 칼을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 정교하게 수술하는 겁니다. 메스는 개복할 때 한 번 쓰는 정도입니다. 고기 써는 것과는 다르지요."
―간 이식 수술은 수술도 중요하지만 기증자를 찾는 일도 그에 못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기증받고 환자가 잘 퇴원하면 가족 간의 유대감이 말할 수 없이 끈끈해집니다. 흉터는 남지만 기증자들이 그렇게 만족해할 수가 없어요. 내가 우리 부모를 살렸다, 내 아내를 살렸다, 내 자식을 살렸다는 만족감이지요."
―황당한 사례도 있겠지요.
"남편이 간 이식 수술을 받는데 그 간을 아내의 옛 남자친구가 기증한 적이 있었어요. 간을 기증하려면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되니 두 부부가 이상하게 만난 셈이죠. 네 사람 얼굴이 전부 착하게 생겼더군요. 선(善)하다는 게 바로 저런 사람들을 가리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과 딸 중에 누가 더 간을 잘 기증합니까.
"아들은 기증하려 해도 아내가 반대하면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딸은 남편이 반대해도 기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술에 기증자 찾기에, 스트레스가 대단할 텐데 어떻게 풉니까.
"담배는 안 피우고 술은 젊었을 때부터 어울려보려고 소주도 반 병씩 마셔봤지만 몸에 안 맞더군요. 제가 성격이 순해서 운동하며 땀 흘리고 한숨 자고 나면 그냥 잘 넘어가져요."
인터뷰 도중 이승규 교수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기자와 사진기자도 옷을 모두 갈아입고 수술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배 윗부분 근육을 모두 위로 까뒤집은 환자가 마취상태로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있었다. 흥건히 배어 나온 피를 닦아낸 거즈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이 교수는 손을 씻고 수술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3.5배 확대경을 쓰고 수술대 위에 섰다. 그 모습이 사이보그 전사(戰士)같아 보였지만 그는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온 듯 편안한 표정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1시간 동안 본 이 교수팀은 정교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척척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언제까지 수술을 할 겁니까.
"우리나라 외과에는 나쁜 전통이 있어요. 나이가 오십만 넘으면 수술을 하지 않는 거지요. 제가 미국에서 나이 칠십이 넘어 머리가 허연 영감이 수술하는 장면을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수술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일본에서도 의사들은 은퇴하기 직전까지 메스를 놓지 않지요. 저는 70세까지는 이 일을 할 겁니다."
―외과 수술 예찬론자 같은 말씀입니다.
"저희가 하는 수술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답답할 정도로 진도가 느려 보이지만 전문가가 보기에는 정말 섬세하고 멋있는 수술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겁니다. 그만큼 굉장한 자부심을 의사도 간호사들도 느끼지요."
―자제(1남1녀)들에게 이 교수의 길을 잇게 할 겁니까.
"아들은 회사에 다니고요, 딸이 이화여대 의대에 다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