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단색회화

[이영준]

한국의 단색회화 한국의 단색회화 전시장에 가보면 단색조의 바탕에 수직으로 선이 죽죽 그어져 있거나 한 두개의 점이 찍혀있는 그림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아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한 이 작품들을 미술계에서는 모노크롬 회화라고 부른다. 모노크롬(Mono-Chrome)이란 우리말로 단색회화로 해석되는데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정창섭, 이강소, 허황, 이동엽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모노크롬이 공식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라고 알려져 있다. 전후 앵포르멜 이후 집단적으로 나타난 현대미술운동이다.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동양의 무위사상은 한국 단색회화의 철학적 배경으로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한국의 단색회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형식적으로도 유사한 경향으로 미국의 미니멀리즘, 프랑스의 쉬포르 쉬르파스, 일본의 모노파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모노크롬회화가 이들 작품과 외형상으로는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그 내용은 매우 상이하다.

한국의 단색회화는 이미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나 논리적 사고에 의한 계산된 조형의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니멀리즘과 지향점이 달랐고 사물과 인간, 사물과 사물간의 현상학적 성찰을 추구했던 일본의 모노파 와도 거리가 있다. 물론 한국의 단색회화 작가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우환이 일본 모노파의 이론적 지주이기 때문에 그 영향을 과대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회화의 본질을 수신(修身)과 명상(冥想)의 산물로 여기는 모노크롬 작가들은 종래의 그리기를 포기하고 색다른 방법들을 다양하게 개발하였다. 질료와 행위의 중첩으로 얻어지는 중후한 평면을 추구하는 정상화, 한지의 물성과 구도적인 선긋기의 반복으로 독특한 표면효과를 만들어나가는 박서보, 동양적 먹의 응집과 확산을 느끼게 하는 윤형근, 반복되는 흰색의 드로잉과 심리적 반응을 환기시키는 비정형의 형태가 만나는 허황, 사유와 개념이 집약된 화면을 연출하는 이우환, 물방울이라는 모티브로 명상적인 화면을 추구하는 김창렬 등 개별작가들마다 독특한 형식의 회화를 만들고있다.


이들의 작품은 평면의 자율성과 순수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정신으로서의 회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서구중심의 미술담론에 동양적 대안성을 모색하고있는 작업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최근 한국의 단색회화는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새롭게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색회화는 대부분 올 오버 페인팅(All of Painting)으로 전면회화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주제나 부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 전체가 균일하게 처리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벽지 같은 그림'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작품을 감상할 때는 작가들이 힘겨운 공정으로 만든 독특한 표면효과에 주목하면서 부분을 보기보다 전체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러다 보면 토속적인 돌담의 살가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시골집 창호지의 기억이 되살아 날수도 있다. 무엇을 느끼든 이들 작품들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명상과 침묵을 유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