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과 순두부
외국서 온 지인에게 전통 음식과 한국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찾게 된 대구 중구에 한 맷돌 순두부집. 한국인으로서는 순두부가 특별할 건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맛집’이란 타이틀을 믿어보았다.
저녁 6시. 식당의 이름은 백년한옥, ‘청라’. 해가 짧아진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곳의 풍치(風致)는 멋있었다. ‘ㄱ'자 모양의 본채와 별채 2곳이 마당을 사이로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었다. 잘 정돈된 조경 위로 적재적소에 배치된 조명들이 한옥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을 가져다 놓은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에 주인장이 만든 맷돌 순두부라. 기대가 커졌다.
순두부와 청국장 전문점답게 콩 삶는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대구 중심가에 이런 곳이 있다니.’ 고향에 내려 온 것 같은 기분에 들뜨기 시작했다.
진짜 순두부를 맛볼 수 있는 곳
청라 식당은 100년 된 한옥집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주인장은 “이 집은 이곳에서 30년을 산 동네주민도 몰랐을 정도로 숨겨져 있던 보물이에요”라며, 이 집이 그냥 평범한 한옥집에서 수제(手製) 순두부 전문점이 된 지금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평소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주인장, 어느 날 두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5년간의 노력 끝에 전통 방식으로 제조하는 두부를 만들 수 있게 됐고, 이곳을 개업하게 됐다. 주인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두부와 더불어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 중에 있다.
“건강한 음식만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인장은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간수(두부를 만들 때 응고제)를 해양심층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기본 반찬도 조미료를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매일 신선한 재료로 갓 만들어 내놓고 있다.
“경북 문경시에서 공수해 온 콩으로만 직접 쑤어 두부를 만들어요. 새벽에 주로 하죠. 저의 일과는 새벽 4시부터입니다. 조미료를 넣지 않기 때문에 ‘싱겁다’며 볼멘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건강한 맛 때문에 단골손님들이 늘었죠.”
어찌 보면, 바보 같은 고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을 해치는 음식은 음식이 아니다”라며 “앞으로도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멋’에 ‘맛’까지
해물순두부전골 속, 몽글몽글한 순두부 덩어리를 숟가락으로 떠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럽게 입 안에서 춤추는 순두부의 맛은 양념이 강하지 않아 심심한 듯하면서도 간이 된, 오묘한 맛이었다. 가족의 건강을 신경 쓰던 어머니의 요리처럼, 내공이 느껴지는 순두부전골의 맛은 일품이었다.
청국장은 냄새가 심해 평소 싫어했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콩을 삶는 기술의 남다름 때문인지 이곳 청국장에선 냄새가 심하지 않아 좋아하는 콩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또 두부야채샐러드와 막걸리가 생각나는 두부김치까지, 콩으로 만든 음식이 메뉴의 절반을 차지했다.
두부 음식과 어울리는 ‘코다리찜’도 별미로 즐기기에 좋은 메뉴였다. 적당하게 매운 맛과 통실한 코다리의 단백한 맛이 입에 맛있게 달라붙었다. 점심 메뉴로 즐길 수 있을뿐더러 저녁에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마당의 조명이 은은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와 온 방을 비추니, 술에 취한 듯 음식 맛에 취한 듯 기분이 좋다. 더욱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빌딩 사이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던 따뜻한 순두부전골의 기억을 선물하고 싶다면, 이곳에서의 한 끼 식사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