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참으로 오랜만에 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어느새 봄이라 부르기엔 너무 늙어 버린 여름 날씨입니다. 올 들어 가장 덥다는 날, 다달이 가는 교도소 봉사를 위해 몇 사람이 모였습니다. 자오나눔을 안 지 햇수로 3년, 아이들이 어린 탓에 단 한번도 참석을 못 하다가 이번에는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봉사에 몸은 피곤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 지난 겨울 무던히도 많은 눈이 내리더니, 눈이 많이 내리는 해는 풍년이 든다더라 하는 옛사람들의 믿음을 어기고, 여름 같은 봄 날씨는 더위와 가뭄을 함께 가져왔나 봅니다. 안양 교도소로 향해 가는 길... 강이 마르고, 저수지 수위는 낮아지고, 모내기 후 한참 많은 물이 고여 있어야 할 논들에 어린 모들의 다리가 햇볕아래 노출되어 있고, 마른 강에 양수기를 끌어다 놓고 물 한 방울이라도 건져 보려는 내 아버지 같은 노인의 모습이 아팠습니다. 부천에서 모여 찾아갔던 우리 일행들은 교도소 대문 앞에서 한 시간이상 기다려 주신 최건웅님을 만나 첫 번째 관문인 대문을 통과해서 차에서 내려 각자 신분증과 핸드폰을 맡긴 후 첫 철문을 통과합니다.
남들은 철문 밖과 안의 공기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무덥고,
나무 속에선 매미가 울고, 작은 새들이 지저귑니다. "무섭지 않니?" 대장이 묻더군요. "아니요. 엊그제 소록도 봉사 갔을 때 한센병 원생들이 갇혀 지내던 구금실도 들어갔다 왔는걸... 아무리 험해도 거기 만한 곳이 있을까..."
첫 문을 통과하자, 사람 좋아 보이는 교도관님이 반갑게 웃으며 맞아 주셨습니다. 이런, 바로 그저께 소록도에 다녀왔던 영향이 크긴 컸나 봅니다. 왜 교도소라는 이름에서 소록도 구금실 보다는 낫겠지 생각하고, 교도관이라는 명칭에서 구금실을 지키던 일제시대의 그들을 생각했는지... 이웃 총각 같은 그 분을 보는 순간 허탈함과 미안한 마음에 고개 숙여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님, 저를 놀라게 했던 것은 무섭게만 생각하던 교도관님들의 유머와 친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몇 개의 문을 거쳐 복도로 들어서자, 끝에 있는 교실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 가슴이 촉촉이 젖어 드는 것을 느꼈는데, 그 기분 아시겠는지요. 교실로 들어서자,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들이 서른 분 정도 앉아서 우릴 기다리셨고, 우린 앞에 배열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드려보는 예배의 분위기에 묻혀 있다가 준비 해 간 다과를 차렸습니다. 수박을 썰고, 과자들을 담고, 가장 인기가 많다는 커피와 음료수를 준비하고, 이어지는 만남의 시간... 하고 싶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한 사람씩 특송을 하고... 교회 다니지 않는 제가 다윗과요나단이 불렀던 '담대하라'를 불렀다고 특종이랍니다. 자선음악회때 천 오백 명이 모인 무대에서 시 낭송을 두 번이나 하면서도 떨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그분들 앞에서 왜 그리도 떨리던지... 훗~ 덜덜떨면서 부르는 담대하라 들어 보셨나요?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아직 기억나는 몇 분이 있습니다. 16년 교도소 생활하시던 어떤 분은 얼마 전에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통과하셨는데, 남은 6년동안 대입검정고시까지 통과하겠다는 각오에 우리들은 큰 박수를 보냈고, 출소를 앞두고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시던 분과 5월 11일부터 6월 7일까지 하루 열시간을 성경을 쓰셨다는 분의 얘기를 들으며, 얼마 전 인터넷 성경쓰기 대회에 참석해서 하루 두 시간정도씩 키보드로 화면에 나오는 성경을 치면서 팔 아프다고 투덜거리던 내가 생각 나 부끄럽기도 했었습니다.
이 곳에 오면 언제나 두 시간 허용된 만남의 시간이 짧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님
늘 들어오던 교도소 풍경, 15척 담장과 하얀 벽들과 겹겹으로 된 철문들...
엄하고 무섭게만 생각되는 교도관들과 푸른 수의의 죄수들...
하지만, 직접 마음으로 만나지 않고서는 보이는 것만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가뭄으로 지친 여름처럼 더운 날씨지만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어쩌면 마음의 자유를 얻은 후, 그 곳에서 보는 하늘이 우리들이 욕심으로 인해 답답한 마음으로 올려다 보면서 살아가는 하늘보다 푸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분들을 만나기 전에 들었던 매미소리도 여전히 우렁찼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경쾌했습니다. 이제 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네요.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