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꼭 이루어지는 황룡사 4월 소식
1) 용왕기도 입재와 방생
4월 19일은 황룡사를 개원한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개원 1주기 기념과 더불어 용왕전에 후불탱화인 수월관음도를 점안합니다.
점안은 의식을 통해 그림이나 조각이 부처님의 가피력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점안식을 하기 전 일주일간 용왕기도를 봉행합니다.
회향식이 끝난 후 동해바다에서 방생의식을 봉행하오니 많은 동참바랍니다.
입재 : 양력 4월 13일 지장재일 10시
회향 : 양력 4월 19일 10시, 개원식과 함께 봉행
방생 : 오후 2시 출발 동해바다 방생 후 오후 4시 반 돌아옴(예정)
2) 초파일 희망의 천원 등 달기
천원으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사랑은 작은 실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눕시다.
3)봉정암 성지순례
4월 11일~12일 성지순례 갑니다. 11일 새벽 1시에 부산에서 출발해서 2시 황룡사를 거쳐 8시 백담사에 도착하여 아침공양을 하고 봉정암에 오릅니다.
밤새기도하고 다음날 돌아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
불자들 마음의 고향,
유리세계보다 청정하고
깊고 고요한 바위와 나무들이 맞아주어
세상의 근심걱정 털어주는
아름다워라~
빛보다 더 밝고, 하늘보다 더 높아
중생의 온갖 소원 들어주고
보리심 솟게 해 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봉정암....
우리 함께 가요~
4) 사경합시다
사경은 부처님 말씀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조복 받고 바른 견해를 세우는 수행 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사경을 하십시오
보내드리는 사경노트는 법화경사경노트이지만 그 속에 어떤 경을 사경하여도 좋습니다. 법화(法華)라는 것은 법화경할 때 법화이기도 하지만 부처님 말씀은 모두 법화라 칭합니다.
보내드리는 자애의 경과 축복의 경을 사경 하십시오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 딸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에게 꾸준히 시켜보셔요. 영어, 수학공부보다 백천배 좋습니다.
책을 빼곡히 다 채우고 나면 절에 다시 보내주시고 또 신청하십시오. 사경노트는 많이 준비해 놓았습니다.
인연이 되었을 때 놓치지 말고 꼭 하십시오~그냥 생기는 것 같아도 다 뜻이 있습니다.
5) 위패단 점안식
4월 19일엔 황룡사를 개원한지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수월관음도도 점안하구요, 원불도 점안합니다. 더불어 영구위패단도 점안합니다.
원불 모신 분들은 복장에 넣을 발원문과 이름 새긴 은조각등을 3일전까지 꼭 준비해 오시고요, 영가를 모신 분들도 빠짐없이 동참하십시오.
4월 19일을 기해서 위패단 영가 모시는 형식을 변경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영가 한위당 5만원에 매월 지장재일 천도비 만원을 받았는데 점안식 이후
부터는 위패비는 1위당 20만원으로 하고 지장재일 천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위패는 영구위패가 아니라 30년 동안 모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장재일 천도는 항상 할 것인데 1분의 위패를 올리든 10분의 위패를 올리든 관계없이 1가구당 (1복위당) 1만원만 내면 합동 천도재에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위패를 이절저절 모셔도 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위패는 연등이나 인등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연등을 여러 절에 키는 것과 같이 위패를 여러 절에 모셔도 좋습니다. 위패는 조상의 은혜를 기리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기도를 위한 것이지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법당에 영가가 상주하면서 법문 듣고 공양 올릴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정말로 그렇다면 영가에겐 허울 좋은 지옥 생활일 것입니다.
6) 황룡사 어린이 불교학교
글: 다보행(불교학교 지도법사)
삼보에 귀의하옵고
처음 절에 갔던 날이 생각나네요.
사촌언니 손에 이끌려 어린이 법회에 갔었는데 꽤 큰 강당 안에 많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달달 외우고 있었지요.
그 모습이 너무도 이상하고 신기해 저도 책보고 뜻도 모르는 글들을 읽어 내려갔는데 그게 바로 반야심경이었습니다. 일주일 마다 가다 보니 어느 새 반야심경을 다 외울 수 있었고 스스로 그 뿌듯함에 어린이 합창단까지 들어 초파일이나 행사 있을 때마다 한복입고 찬불가도 부르고 했지요.
저를 처음으로 절에 데리고 갔던 사촌언니는 이젠 초파일이나 한 번씩 절에 가는 게 전부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 다니기만 했던 저는 이렇게 일요일마다 어린이 법회를 진행하는 지도법사가 되었네요.
제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절에 왔듯이 우리 아이들도 엄마 손에 할머니 손, 이모 손에 언니, 형, 친구 손에 끌려 왔겠지요..또, 선물 받는 재미에 올 수도 있구요.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사람 인연이라는 건 아무도 알 수 없듯이 우리아이들이 이렇게 일요일마다 절에 와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반야심경 외우고 부처님전에 절 세 번하라니까 그냥 따라하고 찬불가 부르고 하다가 나중에 저처럼 또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법사가 될지도 모르는 거구요..
저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지식이나 교리를 가르치려는게 아닙니다.
부처님 전생이야기나 재미있는 불교 설화를 통해서 자연스레 불법과 만나게 하는 고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린이불교학교를 부처님놀이터라 생각합니다.
그냥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도 있고 미끄럼틀, 시소, 그네가 있어서 생각만 해도 빨리 가서 놀고 싶은 놀이터요.
미끄럼대신 부처님계시고 그네 대신 뒤에서 항상 지켜봐주시고 밀어주시는 스님, 항상 아이들 옆에서 같이 놀아 주시는 민주선생님, 다음주 부터 자원봉사로 아이들과 같이 놀아줄 대학생 재경이와 민지 그리고 제가 바로 시소입니다.
하나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십 년 전 그 큰 강당 안에 어린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면 지금은 절에서 어린이 법회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일요일만큼은 어린이날입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조금 시끄럽게 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원래 뛰어다니길 좋아하고 장난치며 놀기 좋아하고 시끄러운게 정상입니다.
황룡사 4층, 5층에 아이들로 가득 차는 날까지 매주마다 아이들과 열심히 놀겠습니다.
매주 차량 운행 해 주시는 권지행보살님 아이들 위해 자동문까지 설치해주시고 너무나 감사드리고 아이들 기꺼이 공양 준비해 주시는 보살님들께도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그리고 늘 어린이 법회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시며 실천하고 계신 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황룡사어린이불교학교 4월 일정입니다.
1주; 범종, 법고, 목어, 운판에 대해(다보행선생님)
2주; 영어법회(연등화선생님)
3주; 연등만들기
4주; 생일법회
매주 스님의 사자성어 한자수업 들어갑니다.
한 달 한 달 프로그램은 바뀌고 카페게시판에 공지하겠습니다.
※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차량 운행합니다.
7) 예수재와 자비도량참법 봉행
음력 5월 7일 입재
음력 윤 5월 7월 17일 회향
5월 7일부터 금요일마다 7·7재를 지냅니다.
49일내내 자비도량참법을 봉행하오니 많은 동참바랍니다.
8) 금강경 오가해 강좌
부처님께서 보리수아래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시고 처음으로 설법하신 경전이 화엄경이라고 합니다.
21일간 설법하셨지만 ‘아아’가 만든 곡을 듣고 ‘양양’이라 믿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그 수준을 내려서 12년간 아함경부터 설법하셨다고 합니다. 차례로 방등부를 8년, 반야부를 21년 법화경을 8년간 설법하시고 열반하셨다고 합니다.
21년간 설법하신 반야부는 총 600부나 되는 방대한 경전인데 그중 금강경은 577부 중 제 9품에 해당됩니다.
반야부의 핵심은 금강경과 반야심경이라 할 수 있는데 21년간이나 반야경을 설하신 것은 중생이 무명으로 인한 집착이 워낙 강하기에 반야공을 설하시어 뒤바뀐 생각을 끊기 위한 것입니다. 대승행자가 반드시 갖춰야할 안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스크리트 원전의 이름은 ‘바즈라 체티까 프라즈나 파라미타 수트라’입니다.
바즈라는 무엇으로도 깰수 없는 것을 말하는데 번개라하기도 하고, 제석천왕이 지니고 다니면서 파사현정(삿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내는)의 도구로 사용 한다고 합니다.
‘체티카’라는 말은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프라즈나’는 반야를 말하고요....
수트라는 경을 말합니다.
이것을 구마라집, 진제, 보리유지 역경사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번역했고, 현장스님이나 의정스님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번역했습니다. 능단이란 ‘능히 자른다’는 말입니다.
현재 우리는 구마라집스님께서 한문으로 번역하신 경전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간결하면서도 수행자의 바른 안목을 제시하므로 수천분의 스님께서 주석서를 쓰셨는데 그중에 육조 혜능스님은 금강경을 선적으로 구결(口訣)해 주셨고, 야보스님은 실상을 깨우치도록 선시를 지었으며, 양무제 어전에서 평생토록 금강경을 강의한 부대사는 찬(贊)을 달았고, 선과 경을 집대성한 송대의 대학자 종경스님은 요점을 중심으로 한 제강(提綱)을 지었습니다. 또, 대승논사(大乘論師) 무착과 천친은 미륵보살의 능단금강경 80게송을 토대로 반야론을 지었는데 이 반야론을 근거하여 다시 규봉스님이 금강경소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다섯 분의 주석은 각기 단행본으로 내려오던 것인데 이것을 합본해서 만든 것이 금강경 오가해입니다.
조선초기 무학대사의 법을 잇고 세종대왕에게 법문을 해주시던 함허득통선사께서 이 오가해를 보시고 너무도 큰 감명을 받아 거듭 살피시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해설하고 해서 고금에 뛰어난 명저를 탄생시켰습니다.
대승의 수행자가 가져야할 견해를 간결하게 요점만 표현 한 것을 6분의 큰 스승님들께서 주석을 하시니 비로소 팔만 사천 법문이 이 한권에 흡입되어 원융무애하게 펼쳐지니, 때로는 화려하기도하고, 수줍은 듯 조심스럽기도 하고, 현묘하여 아득하기도 하고, 비밀스러워 짐작하기 어렵기도하며, 화통하여 대장부의 호연지기를 보는 듯하고, 멋스러워 환희심이 절로 나고, 감칠맛에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하며, 자상하고 자비로움에 눈물이 맺히기도 합니다.
부처님과 조사스님들께서 힘을 합치니 대법문의 오케스트라가 삼천대천세계에 울려
퍼져 육도윤회가 무너지고 진여실상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책의 맨 처음 나오는 함허스님의 서문은 살펴보겠습니다.
이 서문은 일물서(一物序)라고도 불리는 아주 유명한 문장입니다.
나옹선사-무학대사의 뒤를 이은 함허스님은 선에도 경에도 통달했고 유학에도 조예가 깊어 세종대왕으로부터 각별한 예우를 받았습니다. 세종대왕이 소헌왕후를 잃고 깊은 시름에 잠겼을 때 함허스님은 창제된 한글로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번역하도록 권유했습니다.수양대군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번역했는데 그것이 바로 석보상절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로 편집된 석보상절을 읽으며 소헌왕후를 잃은 슬픔에서도 초연해질 수 있었고 세존의 일생과 가르침에 대해서도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그 감격을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서사시로 남겼습니다. 일물서는 금강경오가해 전체가 잘 압축되어 있어서 두루 찬탄되는 뛰어난 글입니다. 문장이 아름답고 간결하고 짧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깊고 광활합니다.
자~ 이제 일물서(一物序)를 소개합니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한 물건’은 어떤 물건인가? “0” 이 ‘하나’란 것은 소리도 없고(希) 빛깔도 없어서(夷) 뜻으로도(情) 말(謂)로도 표현할 길이 끊어졌으며, 알쏭달쏭해서 보면 있는 듯하다가 메아리처럼 홀연히 사라져서 뒤쫓을 수 없고 황홀하여 헤아릴 수도 없으니, 미혹이라 할 수도 없고 깨달음이라 할 수도 없어 범부다 성인이다 구별할 수 없으며, 나(我)와 남(人)이 없어 나의 것이다(自) 남의 것이다(他)도 일컬을 수 없어서 다만 ‘한 물건(一物)’이라 말했을 뿐이다. 육조스님은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문자도 붙일 수 없으며, 위로는 하늘을 받쳐주고 아래로는 땅을 버텨주면서 밝기는 해보다 더 밝고 어둡기는 칠흑보다 더 검은데, 항상 움직이고 쓰는 가운데 존재하지만 움직이고 쓰면서 거두어 가질 수 없는 것이 이것(一物)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한 물건’이란 말도 역시 억지로 칭했을 뿐이다. 그래서 남악회양화상은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맞지 않다’라고 하셨으니, ‘한 물건이 여기 있다’ 함은 바로 당처(삼라만상이 벌어지기 이전, 텅 비어있는 실상)를 떠나있지 않으면서 항상 깨끗하고 맑은 까닭으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이름이나 모습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옛날과 지금을 꿰었고
한 티끌에 처해도 동서남북상하를 에워싸고 있다
안으로는 온갖 미묘함을 포함하고 있으며 밖으로 뭇 사물을 응접하며 천·지·인의 주인노릇을 하고 만법의 왕 노릇 함이니
탕탕함이여! 무엇과도 비길 수 없으며, 외외함이여! 무엇과도 짝할 수 없다.
어찌 신비하지 않을까. 고개 숙이고 드는 사이에 밝고 밝게 보고 듣는 가운데에 함께 하니,현묘(玄妙)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늘, 땅보다 먼저 하되 그 비롯함이 없고 하늘, 땅보다 뒤에까지 있으되 그 끝남이 없으니,
비었는가? 있는가?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노라.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하나를 증득하시고 널리 중생들을 두루 살펴보시고 다같이 지니고 있으되, 어리석어 모르고 있으매 탄식하시기를 ‘신기하다’하시고 생사고해 가운데를 향해서 밑 없는 배(無底船)를 타고서 구멍 없는 피리를 부시니 묘한 소리가 땅을 움직이고 法海(불법의 세계)가 하늘에 가득함이로다. 이에 귀먹고 어리석은(凡夫)자들이 모두 깨어나고 마른나무들이 모두 윤택하게 되며 대지의 모든 생명들이 모두 그 살 곳을 얻으니, 이제 반야경般若經은 묘음(妙音)이 흘러나온 곳이며 법해(法海)가 이것(金剛經)으로부터 흘러온 것이로다.
금강의 굳고 날카로움으로써 내라, 사람이라는 망상의 숲을 끊으시고 지혜의 태양으로 두터운 어두움을 비추시며, 미혹의 안개를 삼공(三空내가 비어 없고, 일체 것이 비어 없고, 갖춘 것이 비어 없으므로 구할 것도 없음)으로 열어 보이셔서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게 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며 만행(萬行)의 꽃을 피워서 일승(一乘)의 과果(불지에 오름)를 성취하게 하시니, 말씀 말씀이 예리한 칼날이 햇빛에 반사된 것같이 빛나고 구구절절 물로 씻은 듯이 한 티끌도 붙지 않음이니라.
다함없는 바다처럼 법문을 흘러 내시어 한량없는 인간과 천상의 스승들을 길러 내셨으니 대감 혜능(6祖), 규봉종밀, 야부도천, 부대사와 종경 같은 다섯 큰 선지식(大士:보살 마하살)은 모두 人天이 존중할 이요, 법해(法海)의 돌아갈 곳이니라. 각기 일체에 통하는 바른 눈을 갖추어 바로, 모든 부처님들의 비밀한 법(法)을 전하시고 각각 맞는 설법으로써 최상最上의 근본 가르침을 펴시니 낱낱의 위엄이 강산에 떨치고 옛과 지금에 빛나게 드러내니 드디어 이 세상에서 눈먼 자로 하여금 보게 하고 귀머거리는 듣게 하시며 벙어리는 능히 말하게 하며 절름발이는 능히 걷게 하시며, 그러하고 또한 후학들을 널리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각기 이 경(金剛經)에 의지하여 주해(註解)를 지어서 천하 후세에 전하시니, 어찌 무늬를 새겨서 덕(德)을 잃음이리오. 오히려 비단에 꽃을 수놓은 것 같으니, 어찌 부처님의 빛을 거듭 빛내는 데에만 그치리오, 또한 祖師의 道까지도 드날려 빛냄이로다.
우리가 천년 후(세존 멸 후)에 태어나서 만나기 어려운 보배를 만나게 되어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니 그 다행스러움이 이보다 큼이 없는지라. 이로써 부처님과 조사의 빛을 드날리며 이로써 임금과 나라의 큰 복을 늘일 수 있도다.
그러나 이 오가해의 편집이 누구의 손으로부터 나왔길래 그 이름을 나타내지 않는가.
나는 부처님과 다섯 조사의 마음을 한번 더, 문득 다 볼 수 있게 해주어 대단히 기쁠 따름이다.
슬퍼하는 바는 비록 거문고를 뜯는 묘한 손가락은 있으나 음을 감상하는 아름다운 귀(지음:도리를 밝게 아는 달인)를 만나지 못했음이라. 이로 인하여 아아(峨峨)를 잘못 듣고 양양(洋洋)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경(經)과 소(䟽)의 오류가 참된 원전에 섞여서 성 밖의 잘못된 우유처럼 자못 많으니 어찌 성인의 가르침에서 점점 멀어지지 않겠는가? 많은 손을 거치면서 전해지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성인의 말씀을 후세에 전하는 까닭은 오직 문장만으로 능히 베풀 수도 없고 공연히 뜻만 독단적으로 전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문장과 뜻이 서로 어울려 바야흐로 묘한 소리를 이루어야, 천하고금의 귀감이 되어 세간과 출세간의 안목을 열어 주려니와, 만약 뜻이 잘못되어 있고, 글에 착오가 있으면 오직 사람의 안목을 능히 열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잘못 알게 하여서 바른 지견을 막게 하리니, 대체로 문자文字에 미혹하지 않고 능히 성인의 뜻을 체달하는 이는 진실로 만나기 어렵도다
그러나 만약 마음이 맑고 생각이 고요해서 글을 보되 뜻을 깊이 참구하여 뜻에 의지해서 글을 찾으면 곧 글과 뜻의 잘못된 점이 털끝만큼도 숨지 못하여서 확연히 밝게 드러나는 것이 마치 세상의 병이 훌륭한 의사의 손에서 도망치지 못함과 같다.
내가 비록 훌륭한 의사의 짝은 못되나 다행히 글 뜻을 조금 알아 참과 거짓을 대략 가릴 줄 아는 고로 지금 이 경(經)의 소(疏)가운데 혹 빠졌거나 혹 넘치거나 혹 거꾸로 되거나 혹 잘못된 것들을 가려내어 여러 책을 참고하고 여러 선사들께 물어서 그것을 바로 잡았노라. 그러나 다른 책에 의거한 외엔 일찍이 한 자 한 글귀도 망령되이 마음대로 그 사이에 더하거나 빼지 않았다.
무릇 의심이 있는 것은 다른 책에서 참고하지 못한 것은 뜻에 의해 해결하여 책 뒤에 붙일 따름이다. 만약 뒤얽힌 뿌리와 헝크러진 마디를 보고도 재주 없다고 팔짱만 끼고 그 사이에 칼날을 놀리지 않는다면 어찌 통달(通達)한 이의 할 바라 하리오. 이로써 재주 없음을 헤아리지 않고 그 맺힌 데를 풀고 막힌 것을 통하게 하며 바르지 못함을 바르게 하고 고르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해서 길이 후학들에게 전하니,
누가 왕사성의 둥근 달(般若智慧)이
만고에 빛나며 영원히 멸하지 않음을 누가 알 것인가?
하하, 다른 날에 바른 눈을 갖춘 자가 보면
마땅히 크게 웃을 것이리라.
영락(永樂) 을미(乙未) 유월에(1415년) 함허당 납자 수이(守伊)가 손 씻고 향 사르고
삼가 序文을 쓰노라.
첫댓글 황산스님께서 매달 정성껏 작성하신 글이니 꼭 한번씩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