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인가 메르스(중동호흡증후군)가 우리나라를 강타했을 때
전염으로 인한 대혼란과 미숙한 대처를 보며 문득 프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생각했다
영화< The Mission>에서 맷 데이먼이 인생 초유의 상황에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듯
이 간호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쟁터에서 병자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롱펠로우의 시 '산타 필로메나'는 램프를 들고 밤에 홀로 야전 병상을 돌며
환자를 돌보던 그녀를 '램프를 든 여인'이라 칭했다
나이팅게일은 헌신의 대명사가 ,'램프를 든 여신'은 헌신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시적표현이 되었다
그녀는 1854년 크림 전쟁에 종군 간호사로 참전한다
1853년 10월 흑해 근처의 크림 반도에서 발발한 크림전쟁은 오토만 제국, 영국, 프랑스,
사르데나(지금의 이탈리아)로 이루어진 4개국 연합군이 러시아 제국과 벌인 전쟁이다
양쪽에서 약 140만명이상이 참전했고 80만명이 사망했다
엄청난 사상자를 기록한 전쟁의 참혹함을 보며 그녀는 물었다
왜 전쟁터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야 하는 가?
물론 이 질문은 좌절감에 사로잡힌 간호사의 무의미한 질문으로 보일 수 있다
전쟁이니까 많은 병사가 죽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총에 맞고 칼에 맞아 죽는 것을 어쩔 것인가
헌신의 정신으로 무장한 다른 간호사들은 , 자조감에 빠져 이런 공허한 지론을 던질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질문에서 시작하고 , 위대한 질문은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결국 나이팅게일은 비탄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당시 영국군 야전 병원 사망율 42%를
29%로 낮추는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켰다
병원에 간 1만명중에 죽을 뻔했던 4천명이 살게되고 , 먼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영국인들은 그녀를 성녀시 했다
지극한 헌신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어릴 때 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던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에서 각종 통계를 모아 이를 분석했다
데이터는 사망의 원인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틀리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데이터로 총상때문이 아니라 야전병원의 비위생적인 환경과 오염된 물 때문에
대부분 병을 얻어 죽는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며칠 병원에 있다가 더러운 물과 혼탁한 공기탓에 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을
나이팅게일은 상식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고, 복잡한 통계데이터를 쉬운 그림으로 보여주는
'나이팅게일 장미 다이어그램'을 만들었다
수학이나 통계를 모르는 보통사람에게 그들의 눈높이로 자신의 데이터 분석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뉴스에서 통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차트(원 그래프)와 비슷하다
1855년 그녀는 크림반도 주둔군 사령관인 라글란 경에게 자신의 데이터 분석 결과를 서신으로 보냈으나
불행하게도 영국 지휘관들은 간호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사망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 좌절하고 포기했을 철의 여인 나이팅게일이 아니다
다음 단계로 영국신문 <The Times>에 서신을 보내 야전병원의 문제를 설명하고 도움을 호소했다
당시 편집장이던 존 딜레인은 나이팅게일이 보낸 데이터의 의미를 깨달았고
죽지 않아도 되는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을 명료하게 이해했다
이를 본격적으로 이슈화했다
부인할 수 없는 데이터의 확실성과 탁월한 설득의 힘으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총리를 비롯한 영국 내각은 총사퇴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흑해까지 가서 그녀를 면담한다
간호사 한명이 영국 정부를 무너뜨린 과정은 <딜레인의 전쟁>이란 책에 생생히 기록되어있다
이책의 제목은 죽지 않아도 되는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부조리에 맞서
딜레인이 런던의 정치인들과 전쟁을 벌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로 들어선 영국정부는 조립식 위생 병동을 제작해서 전쟁터로 보냈고
각종 위생 정책을 시행했다
기부금이 몰려들어 전쟁에서 돌아온 그녀는 세계최초의 간호학교를 만든다
지금의 킹스 칼리지 간호대학이다
그녀는 공중보건에 통계학의 역할을 정립하여 영국왕립통계학회 첫 여성회원이 되었고
미국통계학회 명예회원과 위대한 통계학자의 대열에 오른다
나이팅게일에게 무엇이 이런 기적을 가능하게 했을까
목숨걸고 전쟁터에 나간 다른 간호사들도 헌신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간호와 통계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것을 함께 가졌던 탓에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우물이 아니라 여러 우물을 파는 사람이 시대를 이끈다
한 분야에서의 정진뿐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과 상호 극복이 판을 바꾼다
간호사가 약간의 의학 지식과 헌신만 있으면 되던 19세기에
데이터와 수학으로 공중 보건의 개념을 뒤집은 나이팅게일은 시대의 판을 바꾼 혁신가였다
19세기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이 자유로움에 있다고 했다
이는 수학의 본질이 공식의 기계적 적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보고
해결 방안을 찾는데 있음을 뜻한다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을 보고 그저 가슴아파하기 보다
혼란스런 숫자들에 불과한 데이터에서 그 숨은 의미를 읽어내는 통찰이다
우리 청소년에게 수학이 무엇일까?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능력과 논리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
수학을 배우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