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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물을 먹는 사람 모두 부처님의 젖을 먹는 것이요, 부처님이 설법한 불법의 진리를 먹은 것이니, 자신의 마음
이외에 다른 곳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으리라........
▲ 사리암 층층계단
살 것 같은 기분에 물 한모금, 아니 젖 한모금이 주는 은혜가 이리도 감사하다.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가파르게 달팽이 모양처럼 돌아가는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니
사뿐사뿐 앞서가는 아내가 소리친다.
" 내 엉덩이만 찍지말고 빨리 따라 오이소~"
아내가 멘 배낭속에 아내가 필요로 한 것은 백팔염주와 천주가 전부다. 나머지는 땀을 많이
흘리는 나 때문에 준비한 수건이며 음료수,심지어 내 지갑과 휴대폰까지도 내게 짐 된다며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간다. 나는 손바닥만한 카메라 달랑 하나들고 힘겨워하며 그 뒤를
따르고...아비노릇 뿐만 아니라 남편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못난 사람이 되고 말았다.
▲ 사리암
난간에 의지하며 계단을 오르니 머리위에 높다랗게 지어진 전각이 사천왕문처럼 위협적으로 버티고 서있다.
소백산 구인사에서 본 다층식 전각이다.(나는 늘 이런 전각들을 아파트형 절이라 불렀다) 수건이며 옷가지가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며칠씩 기거하며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의 숙소와 식당,종무소가 있는 건물이다.
▲ 삭도...윈치(winch)
가파른 계단길이라 많은 참배객과 사찰의 일상에 쓰일 물건들을 윈치(winch)를 설치하여 공급하고 있다.
▲ 소전대(燒錢臺)
제사를 마치고 축문(祝文)을 태우거나 제물을 놓아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곳이다.
이곳 소전대의 아래는(사리암 전체가 그렇지만) 수십길 깍아지른 아찔한 절벽이다.
▲ 소전대(燒錢臺)의 고사목(枯死木)
소전대에는 얼마간의 세월인지 모를동안 제 속을 비운 고사목 두그루가 서있다.
▲ 비운 속을 채워준 자연의 벗들....
고사목의 빈 구멍에 카메라를 넣어 보았다.
그곳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비운 만큼 저들로 채워져 있었다.
▲ 사리암 편액
1980년에 지은 이 건물의 편액은 해서체(楷書體)로 정갈하게 쓴 글씨다.
"삿된 것을 여읜다"는 뜻인 사리암(邪離庵)은 나반존자(那畔尊者)의 독성기도처(獨聖處)로서 유명하다.
세상에 묻혀 살며 물들여진 온갖 때묻은 것을 떨쳐버리고 일심으로 기도한다면 기도의 감응으로 나반존자가
던져주는 돌을 받아 쥘 수 있다고 옛부터 전해 온다. 사리암이 창건된 것은 937년(고려태조 20년)이다.
당시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후삼국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량(寶壤)국사가 절을 지은 것이 사리암의
시초다. 이후 세인의 이목에서 멀어져 고고한 산중 암자로만 남아 있던 사리암은 1천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1845년(조선헌종11년) 정암당 효원대사가 중건하고 신파스님이 천태각(天台閣)을 건립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좁은 절터에 지은 건물의 특성이 보이는 장독대.
1851년(철종 2년) 현재의 나반존자상을 봉안한 후 사리암은 영험있는 독성기도처 도량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나반존자는 16 아라한 중의 한 분으로 흰머리칼과 길다란 눈썹을 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부처님 열반 후에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말세 중생을 제도하려는 대원력을 세우신 존자다.
다시말해, 말세 중생들에게 복(福)을 내린다는 존자다.
▲ 관음전과 천태각
이 절에 전해내려 오는 설화에는 옛날에 사리암 바위굴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한 명이면 한 사람분의 쌀이, 두
사람이 공부하면 두 사람분의 쌀이 , 열사람이 도를 닦으면 열 사람분의 쌀이 나왔다. 어느 날 욕심이 생긴 대중
한 사람이 막대기로 쌀이 나오는 구멍을 들쑤셨다. 그런데 웬걸 나오라는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솔솔 나왔으며
그 후로는 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한다. 삿된 마음을 경계하라는 일깨움을 주는 이야기다.
또한 조선 고종황제가 심열로 고생하던 중에 청우스님이 사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주관하였는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임금님의 머리에 침을 꽂아주니 깨끗이 나았다는 효험담도 전해져 온다.
지금도 사리암에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모두 나반존자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갈망이 과일나무에
열매 열리듯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이다.
▲1983년에 개축된 관음전(觀音殿)
▲ 관음전 내부
처음 도착 때의 고요함과 달리 1시간정도의 시간이 흐른 법당안은 향을 사르고 예를 올리는 참배객들로 부산하다.
불상의 크기가 갖는 의미는 아무것도 아님을 나도 안다. 마음속 부처이니 그 형상이 없은 들 또한 어떠리오마는
법당의 규모에 비해 너무 작은 크기의 관세음보살상과 전각의 한면을 전부 유리문으로 하여 나반존자를 모신
천태각을 볼 수 있도록 하고, 그 쪽을 향하여 좌선하고 절하게 만든 건물구조에 굳이 "관음전"이란 이름을 붙여
관세음보살상을 초라해 보이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주종(主從)이 전도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보살과 존자의 차이를 어렴풋이 아는 체하는 나만의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겠으나, 경배의 주대상(主對象)에
맞는 이름을 명하고 또한, 붙여진 이름에는 그에 걸맞는 격식을 행함이 옳다는 생각이다.
▲독성각(獨聖閣)인 천태각(天台閣)
천태각(天台閣)은 하늘에 걸린 듯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서야 나반존자를 만날 수 있다.
참배객이 많을 때는 좁은계단과 공간 탓에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 바위굴과 천태각
관음전의 처마가 빨려들 듯 바위굴을 향하고, 다라니를 독송하는 아내의 갈망은 현실의 온갖 사물이 참된 존재
라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천태각(天台閣)을 향한다.
▲침묵......
무겁게 내려앉은 저 침묵속으로 얼마나 많은 말이 오고 갈까...
마음속으로 오고 간 수 많은 말의 무게는 동굴을 깍은 저 바위산보다 몇 갑절 무거울
것이다.
반나절을 이곳에서 기도한 아내가 내려오면서 말을 건넨다
" 휴가라꼬 복잡한 데 놀러 댕기는 것 보다 절에와서 기도하능기 훨씬 좋지예? "
" .................... "
" 와~ 안 좋아예? "
" 둘째 놈 절마 저거 원서 내기전에 함 더 오자! "
▲ 한국(영남)불교대학 대관음사(大觀音寺)
『하늘법당』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어느 날 석가세존이 제자들을 영취산에 모아놓고 설법을 했다.
그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려, 세존은 손가락으로 연꽃 한송이를 말없이 집어 들고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세존의 그 행동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이 그 깊은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
그제서야 세존도 빙그레 웃으며, 가섭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 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 번뇌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 진리를 깨치는 마음),
불립문자교외별전(不立文字敎外別傳: 언어나 경전에 따르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진리)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주마."
이렇게 하여 불교의 진수는 가섭에게 전해졌다.
이심전심(以心傳心 ),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는 "알아차림"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베풀고 받아 들이는 사랑도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어느날 요술쟁이 처럼 나도 훌륭한 아버지,좋은 남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미소를 알아 차리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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