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인보 19 어떤 부부/ 고은
어느 부부
오늘 하루의 뜻을 모른다
일하러 간 아내 돌아와
램프 불을 밝힌다
머리의 눈
어깨의 눈 턴다
타인이 없는 곳 슬프다
심심했지
라고 남편을 위로할 뻔했다
힘들었지 힘들었지
하고 아내를 간절히 위로할 뻔했다
의병제대 석달째 누워 있는 남편에게
타온 약봉지를 꺼내준다
스트렙토마이신 15알
펜잘 10알
베스타제 15알
밖에서는 눈이 그치지 않는다 먼곳이 있다
오라리
제주도 토벌대원 셋이 한동안 심심했다
담배꽁초를 던졌다
침 뱉었다
오라리 마을
잡힌 노인 임차순 옹을 불러냈다 영감 나와
손자 임경표를 불러냈다 너 나와
할아버지 따귀 갈겨봐
손자는 불응했다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경표야 날 때려라 어서 때려라
손자가 할아버지 따귀를 때렸다
쎄게 때려 이새끼야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세게 때렸다
영감 손자 때려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때렸다
영감이 주먹질 발길질을 당했다
이놈의 빨갱이 노인아
쎄게 쳐
세게 쳤다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손자
울면서
서로 따귀를 쳤다
빨갱이 할아버지가
빨갱이 손자를 치고
빨갱이 손자가
빨갱이 할아버지를 쳤다
이게 바로 빨갱이의 놀이다 봐라
그뒤 총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임차순과
손자 임경표
더 이상
서로 따귀를 때릴 수 없었다
총소리 뒤
제주도 가마귀들 어디로 갔는지 통 모르겠다
송호식 모자
완도까지도 인공 두 달이 소용돌이쳤다
군인민위원회
면인민위원회
리인민위회가 서슬 퍼렇다
내무서
내무분서가 기승이었다
수복되었다
우익 치안대가 절대였다
좌익 아들 송호식의 어머니가
잡혀왔다
얼마 뒤
다른 섬으로 도망친
호식이 잡혀왔다
아들을 죽여
아들의 간을
어머니의 입에 물으라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며 부르짖었다
목총 개머리판으로 쳤다
치고 또 쳤다
어머니는 아들의 간을 물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실성했다
송호식의 어머니
5년형 받았다
실성한 채
감방에서
발가벗고 소리쳤다
문둥이들이
내 간을 꺼내먹으러 달려온다고
한밤중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소리치다가 죽었다
고무신 한짝
미호천 모래톱에
떠내려가던 고무신 한짝
걸려 멎었다
미호천 들녘 아무 일도 없는 듯 빈 듯
누가 알랴
죽은 하인애 신발인 줄
양산 받고 걸어가면
어느새
간따후꾸 옷 속 가슴 젖고
이 집
저 집 사내 코들 흠흠 나왔다
인공의 여름
민청 간부 정덕이가 강간한 뒤
목매어 죽은 하인애의 신발 한짝인 줄
누가 알랴
방공호
두 번째 공습은 훨씬 덜 무섭다
다른 사람 없는
방공호 속
두 사람
그곳에서 아이를 배고 있었다
송경재와 음전한 나인숙의 신음소리
상복이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 아 초개같이 사라지리라
이 슬프디슬픈 군가를 부르며
논산훈련소로 간 상구
1953년 철의 삼각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상구 동생 상복이가
벌써 자라나
처음으로 술집에 가
젓가락 치며
형의 군가를 불렀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 아 초개같이 사라지리라
김개남
마흔한살에 일어섰다
갑오년
농민군 총관령
나주
남원 운봉을 단숨에 점령했다
가장 전투적인 지도자였다
처음부터 집강소 따위
일본군과
고종 정부와의 타협 불가론자였다
10월 재거병(再擧兵)
1만 병력 몰아
금산
신탄진
청주성에 육박
연산으로 퇴각
태인으로 퇴각
전주 장대에서 사형 효수되었다
모가지 압송
서울 서소문 밖 3일간 효수
모가지 다시 압송
전주성 네거리 7일간 효수
처음 만나던 동지 아름다웠다
고부 전봉준
무장 손화중
금구 김덕명
죽산 최명서
그리고 태인 김개남 아름다웠다
서로 상투 머리카락 뽑아
함께 태우고
서로 피 섞어
함께 뿌렸다
서로 만백성 용화세상 기약하였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웠다
그들의 패배가 조선의 근대 서리 찬 첫날밤이었다
한 여학생의 생애
신촌 조상연 씨의 누이
조은선은
떠오른 달같이 달빛같이
늘 조용하고 한한 미인
신촌초등학교 변소 다섯칸마다
다음의 낙서들 있다
조은선은 내것
조은선 ××는 금테 둘렀다
조은선의 젖 먹고 싶다
조은선 ××
조은선은 내 마누라
조은선은 민족의 태양
그 조은선이 사범학교 4학년이었다
오빠가
마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수복 후
치안대 수색반장이
잡혀온 그녀를 강간했다
경찰이 들어서자
경위가
그녀를 강간했다
몇사람이 더
그녀를 강간했다
그뒤
생매장했다
미인의 일생 끝났다
하종숙
지금 일제 때 금광업주 최창학 별장에서
정전회담이 열리고 있다
연안파 이상조(李尙朝) 부대표가
견장 어깨 흔들며
책상을 친다
미 극동군사령부 통역 문익환 목사가
달래어 앉혔다
회담장 저쪽에서 인민군 그물모자가 걸어간다
이쪽에서는
고무 부교 가설한 미군이 걸어간다
소나기 퍼붓는다
익은 보리밭 보리가 쓰러져 썩었다
또 저쪽에서는 경기관총소리 포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전선 이쪽저쪽 오가는
장사꾼이 있다
놀라운 일
떡과 고기 그리고 참외를 팔았다
뒤축 해진 남자 운동화 신은
몸빼바지 여자
미군에게 다가간다
몸 팔아
시아버지와 아들 먹여살린다
지난날
가을 코스모스 사이에 서서
사진 찍던
금촌여중 5학년생
머리 딴 미녀
하종숙
그 하얀 쎄일러복 칼라 어디 두고
몸 파는 오늘
세상은 죽어가는 싸움판 아니면 살아가는 장사판이었다
박영덕
밤 소쩍새소리밖에 없다
낮 뻐꾹새소리밖에 없다
그 새소리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들 말소리 느리고 걸음걸이 더 느렸다
충남 유성온천 근처 화산동
사립문짝도 없는
초가삼간 박영덕
일제시대 내낸
논 팔고
밭 팔고
산 팔고
만주 독립운동자금 보냈던 사람
평양 유리공장 팔아
큰 자금 보냈던 사람
이제 남은 밭뙈기 부쳐먹다가 죽겠노라고
개 같은 해방정국 서울은 떠나왔는데
옛 동지 박진목이 오니
집앞 밭 절반 팔아
상거지 된 옛 동지에게 주었다
잘 가소
언제 또 우리 살아생전 만나겠는가
강경
저녁 강물 줄어
개흙바닥 넓다
아이들
개흙언덕 바라보며
저기는 순자 궁뎅이여
저기는 은순이 젖통이여
저기는 영배 어머니 허벅지여
하고
강경 금강 기슭 아이들 소리질렀다
이런 곳에 해방이 오고
전쟁이 왔다
수복 뒤 좌익이 가고 우익이 왔다
만물상회 소병철 영감이
옆가게 부흥상회 변우철을
빨갱이로 밀고했다
변우철
경찰에 잡혀가 고문받고 손도장 찍고
대전형무소로 넘어갔다
절
소나무더러 절했다
송기 먹고 죽지 않았다
옥수수밭
옥수수밭에 절했다
옥수수 먹고 죽지 않았다
밀밭에 절했다
밀기울 먹고 죽지 않고 살았다
감옥에서 나온 옥철이
콩밭에 절했다
나
대전형무소 콩밥 먹고 살았다
황금물결 들녘에 가서 절하고 울었다
아버님
쌀밥 한 그릇
잡수시지 못하고 떠나신
우리 아버님
조옥자
해방 뒤
시모노세끼에서 가까스로 배를 탔다
언니 혜자가
두 번 몸 주고
배를 탈 수 있었다
혜자 옥자 자매
조선에 돌아가면 이모네집밖에 없다
그래도 돌아가야 했다
대마도를 지났다
기뢰에 부딪쳐
배가 폭파되었다
언니 혜자는 죽고
옥자만 살았다
나무조각 붙들고
파도 위 떠돌다
용케
고깃배에 건져올렸다
부산 자갈치시장
타마꼬 상이라면
횟감
가장 잘 다루는 아낙
아낙이라 하지만
실은 처녀였다
죽은 언니 제사 모시러
다대포 바닷가에 가서
대마도 쪽으로 제사상 차린다
한번 사내한테 마음 준 적 있다
서울 피난민 김낙호
1년 뒤
외상값 갚으러 온 사내
이자로
「가거라 삼팔선」을 불러드린다 하며
「가거라 삼팔선」을
불러주었다
처음이었다 그 사내와
함께 자고 싶었다
‘폐허’ 동인
3․1운동 직후 식민지문학의 한 풍경 아름다웠다
그들의 폐허의식 좀 비장했고 좀 공허했다
철학 김만수
쇼펜하우어를 자주 읽었다
화가 김찬영
김안서
김일엽
오상순
남궁벽
염상섭
변영로
서울 적선동 김만수 자택 대문에
‘폐허사’ 간판이 걸렸다
폐허사라?
폐허사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갸웃햇다
지나가는 개도 갸웃거렸다
폐허사?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랑채가
폐허사였다
그곳에 모두 다 와 있다
그곳에서 몇걸음 가면
과수댁 술집이 있다
그 술집에는 간판이 없다
술집 주모
저고리 옷고름 풀 수 없게
단단히 잠갔다
아무도 그 과수댁 사연을 모른다
누군가가 이름 지었다
폐허사 별관이라고
관악산 연주암
오늘도
관악산 연주암 팔십 노승 허월화상께서는
서울 쪽으로 가는
전투기
폭격기를 바라보셨다
또 퍼부으러 가는군 삼계화택(三界火宅)이로군
양식이 떨어져간다
양식 다 떨어지면
그대로 굶다가 눈감을 작정이셨다
석가모니 팔아 공밥 너무 먹었어
이제 그만 먹어야지
선망(先亡)부모 성도 이름도 잊으셨다
어느 절이 본사(本寺)인가도
이제 모르셨다
이제 가야지
만성이
누구의 말이 떠올랐다 외롭다
폭격당한
오산 숯고개
아버지
어머니
두 동생이 죽었다
열세살 만성이 외롭다
아버지 어머니의 시신과
두 동생 시신을
묻어준
누구의 말이 떠올랐다
이 천둥벼락 아무리 무서워도
내일모레까지는 치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몫까지
동생들 몫까지
네가 굳세게 살아라
동서남북을 돌아다보았다
빈 들 벼포기에서 새잎들 나 있다
이삼봉이 마누라
서방 죽고
세 새끼 먹여살려야 했다
서방 죽고
아예 아낙이
걸쭉걸쭉 남정네가 되었다
영덕에서
안동까지
험한 산길
생물고등어 싣고
소달구지 끌었다 소의 목구멍 푸우푸우 단내 가득했다
한밤중 산길 당당하게 넘었다
강도가 나타나면
강도 꾸짖고
멧돼지 나타나면
멧돼지 쫓아냈다
이 사람아 하필 새끼 셋 달린
계집을 망치는 졸장부 될래 예끼 이 사람아
이놈들 썩 물러가지 못할까
잉걸불에 네놈들 구워먹기 전에 썩 물러가
말이 힘이었는지
이런 된소리에 강도도 넘기고
멧돼지도 넘어갔다
번히 먼동 트면
벌써 안동 첫걸이장에 다다랐다
아직껏 싱싱한 고등어
열두짝 넘기면
빈 달구지
아침햇살 받는다
온몸 비릿한 고등어냄새가
이삼봉 마누라 냄새였다
잠든 세 새끼 있는
봉정사 밑 오막살이로 가는 길 성마르다
마음 바쁘다
9․28수복 직후의 어느 풍경
아내가 빨갱이한테 학살당한 뒤
숨어 있다 돌아온
강기환이 치안대장이 되었다
마당 생솔가지불이 지글지글 타올랐다
치안대장 강기환이
빨갱이 김백철이 장모와
빨갱이 김백철을
헛간 유치장에서 끌어냈다
치안대원 열서넛이
생솔가지불 둘레에 서 있다
강대장이 사위를 몽둥이로 쳤다
저년과 붙어봐
장모의 옷도 다 벗겨졌다
저년과 붙어봐 이새끼야
몽둥이로 쳤다
놀라운 일이었다
사위 김백철의 성기가 일어났다
장모를 몽둥이로 쳤다 장모와 사위가 붙어버렸다
장모의 꼬인 두 다리가 풀렸다
몽둥이를 쳤다
장모와 사위가 숨가쁘게 진행했다
이윽고
장모와 사위가 절정을 이루었다
멍든 등짝
핏물 튀긴 엉덩이 들썩이며
절정을 이루었다
강대장 담뱃불을 비벼 껐다
이런 짐승은 살려둘 수 없어
그의 총탄이
눈 감은 장모와
눈 감은 사위 김백철에게 박혔다
강대장은
다음 빨갱이 어미와
빨갱이 아들을 불러냈다
또 몽둥이 찜질이 벌어졌다
비명은 차츰 줄어들었다
비명이 그쳤다 너무 쉽게 죽어버렸다
강대장 화가 났다
이새끼들
왜 이렇게 빨리 뒈져 썅!
춘삼월
슬픔 뒤의 기쁨 있어라
그 포성
그 총성
그 폭탄 터지는 소리
그 아비규환 중에도
겨울 눈 내린다
봄이 온다
망한 땅에 제비들 온다
아버지 잃은 여수옥 스무살
1년상 차린 뒤
처음으로 환한 웃음 웃는다
빨래 걷은 빨랫줄 제비 한쌍 보고
서면 주막
번지 없는 주막이 있다
이름 없는 주막이 있다
초량동 나무다리
고개 숙여 들어가는
주막
이미 죽은 자 5백만 따위 잊어버리자
아니 산 자 30만 이상 상이군인
30만 이상 전쟁미망인
10만 이상 전쟁고아 따위 잊어버리자
주막
술꾼 일곱명
세 패거리였다
한 패거리에서 키에르케고르가 나왔다
한 패거리에서
등대다방 긴자꾸 미스 박 미스 허가 나왔다
또 한 패거리에서
지유당과 정일권과 신라회가 나왔다
술에는 담배연기가 있어야 했다
주모는 꾸벅꾸벅 존다
저러다
술 취한 자들 술값 안 내고 그냥 가면 어쩌지
해인사 인민위원
1950년 8월
첩첩산중 가야산 해인사에도 인민군이 나타났다
해방 후 송광사 조실에서
해인사 조실로 옮겨온 효봉선사
그를 해인사 인민위원장을 시켰다
그는
자격 없다고 사양했다
병이 있다고 사양했다
9월 인천상륙 이후
해인사에서도 인민군이 떠나야 했다
해인사 대장경각을 불지르자 했다
효봉선사가 결사반대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유산이라 반대했다
그들 해인사 인민위원 다섯명이 찬반을 부쳤다
1표가 많았다
그래서
장경각은 타지 않았다
그러기 전 미군은 가야산 인민군을 제거하기 위해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국 공군의 한 비행장교가 그 명령을 거부했다
그래서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남았다
아슬아슬히 고려시대가 아직 남아 있다
이일웅
인공의 여름 7월
의용군 초모사업
한 도에서 2만 내지 3만여 명 모았다
의용군이라는 징용 징병
여자도 3천명 정도 모았다
첫째 보도연맹 출신이 최우선으로 징발되었다
변절한 죄를 피로 씻으라고
둘째 무상분배 토지를 분배받은
소작농 빈농이나 머슴들이나
그 자녀들이 인민에게 보은하라고 징발되었다
셋째 지방유지 부농 자작농 반동분자 자제들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지원하는 형식으로 징발되었다
씨족사회
오랜 농경의 혈연사회에서
저 하나로 가족을 보장받는 것
그 지원형식도 팽개치고
뒤에 가면 1개면 50명 70명 할당해서
강제모병을 강행했다
전북 익산군 왕궁면 소부자네 머슴 이일웅은
민청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날리다가
제2차 의용군에 끌려갔다
낫 놓고 기역자 몰라서
군당에 가서
한글을 배웠으나
가갸거겨를
외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의용군 행렬
경비대원이 되어
도망병 감시
병자 처리를 맡았다
한 동네 살던
민대복이 도망친 것을 잡아다가
총대로 두들겨서 죽였다
7월에는 몇천명씩 북으로 보내어 훈련시켰다
8월부터는
전세 불리로 병력이 격감되자
군복을 입혀
3일간 격발기 조작만 가르쳐
대구 교외 팔공산 전투에 투입했다
총알받이로
풀썩풀썩 총 맞아 쓰러졌다
이일웅
총알받이 뒤에 있던 이일웅
그도 총 맞아 쓰러졌다
백년 뒤에는
가장 유치한 병정놀이겠지만
지금은 가장 처절한 전투였다
벌써 이일웅의 핏자국 마른 주검에
파리 내려앉았다
장명구
어이없더니라
작은 섬, 물안개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섬에도
좌익이 있고
우익이 있었더니라
저 서부 다도해 끝
임자도는 물론이거니와
스물한 가호의 작은 섬마을에도
인민위원장이 있고
잡혀갈 반동이 있다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고기잡이 동료들인데
한 사람은
투전을 몰라 좀 잘살았고
한 사람은
투전으로 살림 망쳤는데
망친 사람이 위원장이 되었다
국민학교도 없는 섬의 배 수선소 구석방이
감옥이었다
그 감옥에 장명구가 갇혔다 불려나가
한밤중
내무분서에서 건너온 자에게 조사를 받았다
억지로 꾸민 조서에 지장 찍었다
9월 10일
위원장 황창길이 말했다
상부에서
자네 때려죽이라 했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이렇게 보내겠네 하고
벼랑 위로 데려가
밀어버렸다
저 아래 파도 속에
한 생명이 잠겼다
( 만인보 19권에서 사적 감명이 깊은 시편들을 초록하여 시를 아는 여러 문우들과 함께 감상하고자
2008년 1월 29일 안동일우 열락연재에서 양백산인 박희용이 올립니다)